곧바로 이집트의 군최고위원회(SCAF)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이제 입법권은 우리에게 있다는 의미"라고 발표했다. 새 의회가 만든 법률들은 모두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초 이른바 '아랍의 봄'이라는 민주혁명으로 이집트에서도 40여년간 철권통치를 휘둘러온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퇴진했으나, 무바라크 정권을 떠받친 군부가 여전히 실세를 쥐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군부 배후 사법 쿠데타'에 해당한다.
▲ 14일(현지시간) 이집트 헌법재판소가 의회 해산 명령을 내리자 시민들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격렬한 시위에 나섰다. ⓒAP=연합 |
군최고위원회로 대표되는 강력한 군부세력은 무바라크 퇴진 이후 사실상 과도정부 역할을 해왔으며, 사법부 역시 군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14일(현지시각) 중동의 <알자리라>에 따르면 이집트 헌법재판소는 지난 총선에서 하원 의원 3분의 1이 불법적으로 당선됐으며, 이에 따른 의회 구성 자체가 헌법에 어긋나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하원 의원 3분의 1이 불법적으로 당선됐다는 판결은 앞서 이집트 법원에서 나온 것이고,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불법적으로 선출된 의원들이 3분의 1이나 되는 의회는 위헌적 구성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이집트 법원은 총선을 앞두고 의석의 3분의 2는 개별 선거구 투표로 뽑고, 3분의 1은 정당명부로 선출하도록 개정한 선거법은,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의 피선거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에 위헌에 해당한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알자지라>는 "무바라크 출신 인사들의 개별적인 진출을 막기 위해 야권이 밀어부친 선거법이 오히려 역풍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총선에서 최대 이슬람 조직 무슬림형제단의 자유정의당과 이슬람 근본주의 정당인 알누르당 등 이슬람 정당들이 3분의 2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지만, 이번 헌법재판소 판결로 총선 자체가 원래 없었던 것처럼 돼버렸다.
'정치적 격리법', 시행 직후부터 무력화
이집트 헌법재판소는 이집트의 대선 결선투표에 진출한 후보 자격에 관한 결정도 내렸다. 불과 이틀 뒤인 16~17일 민주혁명 이후 이집트 대통령이 최종 결정되는 결선투표에는 무라바크 정권에서 마지막 총리를 지낸 아흐메드 샤피크와 자유정의당의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가 맞붙게 된다.
문제는 총선으로 구성된 의회에서 혁명 이전의 독재정권과 연계된 고위급 인사는 향후 10년 동안 공직을 맡을 자격을 박탈하는 '정치적 격리법'을 지난 4월 제정했는데, 헌법재판소가 이 법을 무력화시킨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앞서 샤피크는 지난 4월 이집트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정치적 격리법'을 근거로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당했지만, 선관위가 하룻만에 결정을 번복해 대선에 참여할 수 있었다. 즉 선관위 자체가 군부의 영향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 이미 '정치적 격리법'은 발효 즉시 무력화된 것이다. 이번 헌법재판소는 선관위의 결정을 추인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으로 '아랍의 봄'이라는 민주혁명 세력은 허탈감에 빠졌다. 이로 인해 이집트는 대선 이후 또다시 혼돈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선 이후 혼란에 빠질 우려"
총선이 무효화되기는 했지만, 당초부터 민주혁명 진영은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 종교 진영에 정치적 세력에서 밀렸고, 대선에도 한 명은 독재정권 출신이고 또 한 명은 이슬람율법에 기초한 종교국가 건설을 목표로하는 정당 후보라는 점에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때문에 영국의 <BBC>방송은 "샤피크가 당선되면 다시 대규모 시위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민주혁명 이후 불만이 컸던 시민사회가 다시 결집해 거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대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혼돈은 피할 수 없다는 경고도 나온다. 샤피크가 당선되면 다시 치러질 총선에서 의회까지 군부세력이 장악하려고 나설 것이고, 무르시가 당선되면 군부가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혼란을 부추길 것이라는 것이다.
이미 이집트 군최고위원회는 이날부터 군인에게 민간인을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다시 부여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에 총선을 구성된 의회가 없앴던 권한을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이집트 '아랍의 봄'이 다시 수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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