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가격이 급등해서 사회적인 현안이 될 때는 전세가격의 급격한 상승을 막아서 세입자들의 주거안정을 도모하고자 하는 여러 의견들이 제시되고, 입법개선 활동도 활발해진다. 그러나 막상 세입자들의 계약갱신청구권 보장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제시하면(그렇지 않아도 전세 값이 계속 상승하고 있는데) 전세 가격 급등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반발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현재와 같이 전세 값 상승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많은 세입자들이 전세 가격 폭등을 걱정하는 시점이야말로 임대차제도 개선방향을 논의하기 좋은 시기이다.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이미 2003년경 100%를 넘었지만 주택보급률과는 별개로 2010년 기준 자가소유 비율이 61%, 공공임대주택 거주 비율이 4.2%에 불과하니, 나머지 35% 상당의 가구는 민간임대차시장을 통해 주거를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민간임대차시장을 규율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하 주임법)이 세입자들의 안정적인 주거권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다.
주임법은 1981년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제정한 법률로, 제정 당시에는 보호되는 계약기간이 1년에 불과했다. 1989년 전셋값 상승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지자 임대차 존속기간을 2년으로 연장하기는 했지만,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각 3년, 평균 거주기간이 3.5년 이상인 현실을 고려하면 여전히 터무니없이 짧은 기간이다.
이에 비해 일본과 유럽의 여러 나라는 모두 안정적인 임대차관계의 존속을 위한 제도를 갖추고 있다. 임대차 존속을 보장해 주는 방법으로는, 최단존속기간을 법으로 정하고 최소한 위 기간 이상의 거주를 보장해 주는 방식과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약정한 기간과 무관하게 일단 계약이 성립되면 종료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해 계약해지를 어렵게 만드는 방식이 있다.
독일에서는 임대차기간을 정하지 않은 경우, 임대인이 정당한 사유로 계약을 해지하더라도 임차인에게 가혹한 것일 때에는 임차인은 해지에 대한 이의권과 임대차관계 계속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기간을 정한 경우라 하더라도, 기간 종료시 임대인 등이 직접 주거로 사용할 목적이나 주택을 수리하는 경우, 임대인의 피고용자에게 임대하려는 경우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임차인은 임대차계약 연장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같이 최단존속기간을 법으로 정하고 있지만 그 기간이 3년에 달한다. 위 기간이 만료되더라도 임대인은 기간 만료 전에 주택을 회수해야 할 사정 등을 임차인에게 확인시켜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3년간 더 존속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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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주임법은 2년이 지나면 임대인이 아무런 제한없이 임대료를 인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4.2%에 불과해 민간임대차시장의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는데 효과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법적 규율의 미비는 반복되는 임대료 상승의 문제를 낳고 있다. 일본에서는 임대인이 임대료 상승을 위해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임대료를 인상할 때 그 비율이 상당한지 여부를 법원에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임대료 급등으로 세입자들의 주거안정이 위협받는 일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 18대 국회에서는 우선 2년에 불과한 계약기간을 1회에 한해 연장할 수 있는 권리(계약갱신청구권)를 세입자에게 부여해 계약갱신이 가능하도록 하고, 위와 같이 계약이 갱신되는 경우에도 5%의 범위 내에서 인상률을 제한(전월세 인상률 상한제)하자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전세문제가 주요 민생사안이었으므로, 여야사이에서 깊이 있는 논의도 진행되었다.
2011년 초 참여연대와 야5당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세입자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88%, 전월세 상한제 도입에는 72% 이상이 찬성하는 등 대다수의 국민이 전월세 제도 개선을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국민여론과 전월세 가격 급등의 심각성으로 인해 위 법안은 국회 해당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정부는 전월세 상한제가 가격통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반시장적'이라거나, 세입자들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인정할 경우 임대인의 재산권이 침해된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경제지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의 반대도 이어졌다. 다만 여당에서는 따가운 여론을 의식해 임대료가 급등한 일부 지역에 한정해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취지의 법률을 발의하기도 했으나, 결국 어떠한 결론도 내지 못한 채 18대 국회를 마무리하고 말았다. 세입자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아주 기본적인 제도의 도입마저 '반시장적'이라는 근거 없는 비난에 막혀 좌절된 것이다.
현재는 2년의 계약기간 동안만 임대료 인상이 5%로 제한되는데, 1회에 한해 계약갱신청구권을 인정하면서 갱신 시에도 위와 같은 인상률을 제한하자고 하는 것이 과연 정부비판대로 '반시장적'이라는 이유로 시행되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주거의 안정은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전제인데,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기본권 실현을 위해 일부 불가피하게 인상률을 제한하고 임대인 권리도 보호하기 위해 주택에 직접 거주하려고 하는 경우나 세입자의 의무위반 시에는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도록 보완한다면, 위와 같은 제도도입은 기본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의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이유로 세계 각국에서 임대차 존속을 보장하고,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제도가 많은 국민들의 지지 속에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임대차제도를 선진화하고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안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계약갱신청구권, 임대료 인상률 상한제 도입에서 더 나아가 임대차등록제 및 공정임대료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지금 당장 전세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손 놓고 있다가는 취약한 우리 임대차 법제로 인해 전셋값 급등은 언제든지 재현가능한 일이다. 이에 19대 국회는 개원 즉시 이미 18대 때 충분히 검토되고 논의된 주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주임법이 제정되고 존속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되었다. 2012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1회에 한한 계약갱신청구와 임대료 인상률 상한제가 도입되지 못한다면, 서민 주거 안정에 관한 한 군부독재정권만도 못하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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