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지난 6일 총선 이후 정부 구성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러다가 국가부도 사태로 가거나 유로존에서 이탈할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을 휩쓸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스 정치권은 현재 특정 정당이 주도한 연립정부 구성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제 대통령이 모든 정파를 한자리에 불러 최후의 협상에 나서기는 했지만, 정작 다시 총선을 치르면 제1당이 될 것으로 유력한 정당이 협상 도중 거부 의사를 밝히고 퇴장해 실패로 끝났다.
▲ 그리스 총선으로 1당이 된 신민당의 안토니오 사마라스 대표가 14일(현지시간) 대통령이 주재한 제정파 협상도 결렬되자 허탈한 표정으로 대통령 궁을 빠져 나오고 있다. ⓒAP=연합 |
결국 이번 총선으로 정부를 구성한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 그리스 정부는 헌법 규정에 따라 6월 17일쯤 재선거를 치를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현재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가장 높은 정당이 이번 총선에서 2당으로 급부상한 급진좌파연합이며, 이 당은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국제사회가 요구한 긴축정책이 너무 가혹하다며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급진좌파연합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이유는 일종의 '벼랑끝 전술'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리스는 2차 구제금융 협상 과정에서 절반 이상의 부채를 탕감받았다. 사실상 부분 디폴트는 이미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절반을 탕감해줘도 나머지 빚도 현재의 조건으로는 그리스가 갚을 능력이 없는 것도 시장에서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급진좌파연합은 "허리띠를 너무 졸라매지도 않고, 빚도 갚을 수 있게 다시 전면 재조정해달라"는 입장이다. 그리스 국민의 여론도 대체로 "유로존 탈퇴도 원하지 않고, 긴축안도 하기는 하겠지만 희망이 보일 정도로 조건을 완화해달라"는 것이다.
이때문에 구제금융을 주기로 한 쪽에서조차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공공연히 거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긴축안을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구제금융도 없다는 게 공식적 입장인데, 그리스도 약속을 지킬 생각이나 능력이 없다면 그리스는 디폴트를 맞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결국 그리스는 자력갱생을 위해서라도 유로존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스 유로존 탈퇴해도 괜찮다"고 큰소리 치지만...
독일 등 사실상 구제금융을 주도한 쪽에서는 그리스의 '벼랑 끝 전술'에 맞서 "이제는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해도 감당할 준비가 돼있다"며 큰소리치고 있다.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이 그리스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유럽은행들을 구하기 위해 최대한 그리스의 무질서한 디폴트에 따르는 충격을 줄이기 위한 '시간벌기'였다는 지적을 떠올리게 하는 반응이다.
그동안 구제금융이 긴축안 이행을 절대조건으로 해서 이뤄지지도 않았다. 그리스가 1차 구제금융 때도 긴축안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1차 구제금융에 대한 긴축안도 그리스 정치권이 이행하지 않았는데, 2차 구제금융을 주기로 한 것도 원래부터 구제금융이 그리스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2차 구제금융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이미 민간투자자들도 부채를 절반 정도 안받기로 했기 때문에, 또한 그리스는 경제규모 자체가 작기 때문에 이제는 디폴트로 가도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는 얘기를 흘리고 있다. 'Grexit(Greece exit)'라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의미하는 신조어까지 공공연히 등장하고 있다.
'뱅크런 도미노' 현상으로 유로존 자체가 붕괴할 수도
하지만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유로존 전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사실 요즘 전개되는 위기는 사상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에 누구도 경험이 없다. 그래서 전문가들조차 소설 쓰듯이 얘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회원국들이 주권을 유지한 채 공동의 통화를 쓰기로 한 형태의 단일통화동맹도 유로존이 사상 처음이고, 여기서 회원국이 이탈한다면 이것 또한 초유의 사태가 된다. 그래서 그 파장이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그리스가 유로존을 이탈해도 그 자체로 충격을 흡수해서 수습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유로존 자체가 붕괴하는 신호탄이 된다는 경고도 그럴 듯하게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당대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경제학자라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이런 경고를 하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면 시장은 구제금융설이 나돌 만큼 재정위기에 빠진 유로존 중심국 스페인·이탈리아도 유로화를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뱅크런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견해에 서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러 '뱅크런 자금'은 결국 독일로 갈 것이며,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 독일이 시장의 공포를 진정시킬 특단의 보장을 하지 않는 한 '유로화의 종언'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이런 가공할 시나리오는 바로 6월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융커 "유로존은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 만장일치로 원해"
만일 그리스의 디폴트나 유로존 이탈에 따르는 충격이 이렇게 크고, 이를 감당할 준비가 안돼있다면 그리스의 '벼랑 끝 전술'은 다시 통할 수밖에 없다.
장 클로드 융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회의) 의장이 이날 6시간에 걸친 유로그룹 회의를 마친 후 "유로존은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만장일치로 원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때문이다.
최근 일각에서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해도 문제 없다는 유럽 지도자들의 공개적 발언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 융커 의장은 "선전의 일환이며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나아가 융커 의장은 그리스가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과 약속했던 구제금융 조건을 존중하는 선에서 일부 긴축 목표 시한을 연장하는 논의 등은 가능할 수도 있다며 다소 유연한 입장도 보였다.
이미 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스페인의 10년 만기국채 금리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리스의 디폴트나 유로존 탈퇴는 그리스도 원하지 않지만, '구제금융으로도 구제할 수 없는' 스페인 등 유로존 중심국들 문제까지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만장일치로 원하고 있다"는 융커 의장의 말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이미 그리스에 대한 '제3차 구제금융' 시나리오도 존재한다는 사실도 드러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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