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민주당, 넓게는 야권연대가 봉착하고 있는 위기의 내면에 '논리의 상실과 담론의 붕괴'가 있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갖고 있다. 아울러 아직 공식적으로 등원도 못한 그들로서는 억울한 노릇이지만 그 책임의 일각이 시민정치를 내걸고 19대 국회에 입문한 학계를 비롯한 시민단체 인사들과 486 정치인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언어의 상실과 사회적 공론화가 왜곡되었던 최근의 분명한 사례는 이해찬-박지원 밀약설이었다. 필자는 두 정치인의 역할 분담에 대한 합의가 구태의연한 담합정치라거나 친노와 호남세력의 야합이라는 비판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대선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19대 전반기 의회 전략을 강력하게 이끌 원내대표로서 박지원 의원의 경륜은 돌아온 저격수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지난 18대 의회에서 여실히 입증된 바 있다. 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제 정당과 시민단체의 다양한 이해를 중재하는 조절 능력과 반MB 투쟁의 기획능력에서 이해찬 의원만큼 검증된 대표 후보도 찾기 어렵다.
박지원-이해찬 합의가 갖는 문제의 본질은 합리적 논리 체계의 상실에 있었다. 그들은 야합, 밀실거래, 카르텔, 담합이라는 당내외의 격렬한 비판과 조롱에 대해 왜 자신들의 합의가 의미 있는 것인지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응수하지 못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내건 타협과 합의의 정치는 당내 역학에만 의존하는 정략적 산술정치로 변질되었다. 나아가 합의의 당사자인 그들이 안팎의 비판에 침묵과 무대응으로 일관함으로써 민주당은 대선을 앞둔 제1 야당의 원내대표와 당 대표의 바람직한 역할과 위상에 대한 정치적 공론화의 계기를 놓쳐버렸다.
▲지난 3월 21일 민주당 총선 선대위 출범식에서 박지원 최고위원과 이해찬 상임고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
이 국면에서 곱씹어보아야 하는 것은 국회에 새로 진입한 10여 명의 시민단체 인사들과 486 정치인들의 행보였다. 그들은 이해관계자들의 편협한 찬반논리를 넘어선 새로운 관점도 제시하지 못하였고 공동의 자세도 취하지도 못하였다. 그럼으로써 개별적 판단에 의지하는 수동적 투표자가 되었고, 무엇보다도 신진 세력으로서 당의 역동성을 강화할 모처럼의 소중한 기회를 날려 버렸다.
또 하나 최근 민주당 주변에서 스멀거리는 우려스런 현상은 '중도 강화론'과 '야권연대 회의론'이다. 맥을 같이하고 있는 두 주장은 최근 통합진보당의 자기 분열 현상이 심화되면서 앞으로 더 거세게 대두될 전망이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민주당과 야권의 당론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중도파가 등을 돌렸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제기되었다.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중도, 나아가 야권 지지자들의 불안과 우려는 두 이슈에 대한 당론의 급진화가 아니라 비논리로 일관한 무책임성에 있었다. 한미 FTA는 원천 폐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일부 독소조항에 한해 재협상해야 하는가. 제주해군기지는 원점에서 백지화해야하나, 아니면 축소 건설인가, 그것도 아니면 아예 주민투표를 거쳐 제3의 지역으로 이전해야 하는가. 필자가 알기에 유권자, 아니 지지자들조차 이러한 합리적 의구심에 대해 아직까지도 민주당과 야권연대의 일관된 답변과 책임 있는 당론을 들은 바 없다.
처음으로 금배지를 달게 된 시민단체와 학계인사들, 그리고 486 정치인들의 중대한 책임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분야별 정책의 전문가가 아니라 온-오프라인에서 한국사회의 핵심 이슈에 대해 정치적 담론을 생산하고 사회적 공론화를 활성화시키는 정치적 기획가(political entrepreneur) 집단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비례의원이나 초선의원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특정 사회단체나 직능 이익을 대표하거나 분야별 정책의 전문성 발휘로 한정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러한 인식 탓에 원내대표나 당대표 선출, 한미 FTA나 강정마을, 연합정치와 같은 정치적 영역과 쟁점을 의도적으로 기피한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1차적 역할은 미시정책 전문가나 협소한 직능대표가 아니다. 그들은 각각의 전문성과 대표성을 통해 정책의 기조와 정당의 방향을 설정하는 정치적 조타수의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박영선 의원의 경우처럼 성공한 비례대표 정치인들은 자신도 유권자도 더 이상 전직에 연연하지 않는다. 국회에 간 이상 그들은 더 이상 시민단체나 노조의 활동가, 그리고 교수가 아니다. 말 그대로 생계를 건 직업 정치인이다. 그들이 연대와 소통의 '시민정치'의 기치 아래 단일 세력으로 성장하지 않는다면 이번 박지원-이해찬 합의 파문에서처럼 각개 격파되어 계파별로 분산 수용될 것이 분명하다.
끝으로 개원하기 전의 이 소중한 시간을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한미 FTA와 한중 FTA, 제주 강정마을,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논리와 대안 마련에 쏟아붓기를 진심으로 당부하고 싶다. 올 봄, 논리의 결핍은 이념의 과잉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정치적 교훈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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