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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과 박근혜의 공통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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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과 박근혜의 공통점은?

[이철희 칼럼] 한국 정치권 뒤덮은 '오만'의 장막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정치다. 아쉽지만 그렇다. 대체로 뜻 있는 자(the willed)가 정치를 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지만으로 술술 풀리지 않는 것이 정치라는 말이다. 때문에 누구라도 차이와 이견을 누르고 자신의 뜻대로만 하려 할 경우, 그것은 오만이 된다. 그 오만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형태의 오만에 대해 반대한다." 샤츠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의 지적이다.

오만의 전형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자신이 옳다는 오만에 빠져 자신이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지르는지 모른다. 정말 못된 바보다. 그런데 그 오만이 그만의 몫이 아닌 것 같아 걱정이다. 일컬어 '오만의 엄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만과 편견이 우리 정치권을 검은 장막처럼 뒤덮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예는 통합진보당이다. 통합진보당의 일부는 사실에 눈 감고, 비판에 귀 닫고, 아예 마음의 문마저 폐쇄한 듯하다. 갑갑하고, 답답하다.

주지하듯이 패배나 혼란을 수습하는 첩경은 실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패인과 치부를 온전하게 드러낼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 어차피 사람도 그렇듯이 정당도 영욕의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다. 요즘 총선 승리를 만끽하고 있는 새누리당도 과거 차떼기 정당이란 '오명의 쓰나미' 앞에 무력하기만 했다. 그들 스스로 죄과를 커밍아웃(coming out) 하지 않고, 검찰에 의해 까발려진(outing) 것이기에 더욱 견디기 힘든 치욕이었을 것이다. 더 소급하면, 군사독재의 잔당임에도 그 자신의 모태인 독재를 딛고 탄생한 민주시대에도 버젓이 살아남았다.

이렇듯 옳고 그름의 문제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 정치다. 정치를 윤리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사실 통합진보당의 선거부정도 바로 이런 생각에서 비롯됐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니 옳고 그름 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부차적인 것이 된다. 선악 프레임에서는 수단과 절차가 무시될 논리적 틈이 없지 않다. 진영논리란 것도 선악 프레임의 변종에 다름 아니다. 이런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때 민주주의는 살아 움직이고, 보통 사람들의 삶을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기능할 것이다.

최근 눈에 띄게 오만을 표출하는 또 다른 이는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이다. 그는 민생과 정쟁을 대립시키는 프레임(frame)으로 당내의 도전을 일축하고, 야당의 운신 폭을 좁히고 있다. 사실 민생 대 정쟁의 프레임은 독재정권이나 대통령이 반대를 누를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쓰던 전통의 수업이다. 자신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봤기 때문이려나. 박 위원장은 이 프레임으로 당내 대선주자들 간의 경쟁을 일거에 몹쓸 정쟁으로 치부해버렸다.

뿐인가. 심지어 원내대표와 당대표를 뽑는 선거마저 우스운 꼴로 만들어버렸다. 헌법기관이라고 하는 국회의원들이 박 위원장의 눈치를 살피느라 불출마를 앞 다투는 살풍경마저 연출됐다. 새누리당은 인적 없는 고택처럼 적막하다. 이들의 졸병 근성도 문제지만 공당이라면 의당 있어야 할 정치적 경쟁을 정쟁으로 매도하는 것은 오만 중에서도 매우 위험한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MB보다 더 하지 않을까 싶어 문득 한기가 든다면 소심한 기우일까.

흔히 대선후보로서의 박근혜에 대해 대세론이란 딱지를 붙인다. 그런가? 대세라고 할 수 있으려면 지지율에서 50% 이상을 안정적으로 보이거나, 누구와 붙어도 이기는 것으로 나와야 한다. 여기에 잠재적 불안요인이 없어야 한다는 단서도 붙여져야 모름지기 대세 운운할 수 있다. 현재 박근혜에겐 이런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다만 그가 압도적으로 앞서는 지지율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강한 우세 또는 준(準)대세라는 표현은 가능하다.

박 위원장이 명실상부한 대세를 구가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특유의 독선적 오만을 버려야 한다. 당이 펄펄 뛰는 생선처럼 살아 있는 실체로 기능할 수 있도록 일체의 경쟁도 억압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경쟁이 선을 넘지 않아야 하지만, 그 선을 그어 주는 것도 박 위원장의 몫은 아니다. 정치의 시작과 끝은 정당이다. 당을 믿고, 당에게 맡겨야 한다. 인명진 목사가 말한 그대로 당에 자율성을 전적으로 부여해야 한다. 새누리당이 박제화되면 될수록 안 그래도 어긋나 있는 20~30대와 더 크고 깊은 불화를 겪게 될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다른 하나는 당을 수도권 정당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당시 한나라당은 영남당에서 수도권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전체 153석 중에서 81석이 수도권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수도권 정당이 되는 데 실패했다. 수도권 정당이 되려면 중도 성향의 수도권 거주 20~40대의 지지를 기축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보수와 영남, 고연령층이란 오랜 축에 기대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박근혜 위원장도 당의 여러 고비마다 수도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쇄신파들과 전면 결합하지 못하고 제한적으로, 또 일시적으로 손잡는 것에 그쳤다. 이러니 19대 총선에서 박 위원장의 전면 등장에도 홍사덕·김선동 의원 등 친박의 중진과 신예들이 수도권에서 낙선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43석을 얻는 데 그쳤다. 반면에 지난 18대 총선에서 46석에 그쳤던 영남권에서의 의석은 이번에 63석으로 늘어났다. 총선 결과에서 수도권이 자치하는 비중은 18대 52.9%에서 19대 28.3%로 줄어들었다. 영남은 18대 30.1%에서 19대 41.4%로 늘어났다. 당이 얻은 전체 의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영남이 수도권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영락없이 '도로 영남당'이다.

정치인은 자신을 찍어준 유권자의 뜻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람이 그 지지자의 뜻과 정서에 반하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고, 옳지도 않다. 이런 점에서 새누리당은 다시 영남당으로서의 성격을 더 강하게 띠게 됐다. 18대에서 보였던 소장파의 목소리도 이제 수가 작아져 잦아들 수밖에 없다. 그럼 점에서 박 위원장이 총선 전까지 펼쳐왔던 개혁적 보수로의 좌클릭이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남과 보수라는 큰 덩어리가 수도권과 중도의 목소리를 압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른바 '박근혜 대세론'은 허망하게 끝날 수 있다. 관건은 박 위원장이 어떤 리더십을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다. 본인이 정쟁이 아니라 민생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은 좋다. 그러나 민생/정쟁 프레임이 당의 역동성을 없애고 있다는 점에서 소탐대실이 될 수도 있다. 수도권 20~30대의 지지를 담아낼 수 없는 '그저 그런 보수 인사'를 친박이 당 대표로 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박 위원장의 리더십은 변화가 아니라 안정을 지향하는 듯하다. 야당에겐 고마운 것이겠지만, 스스로에겐 위험한 선택이다.

오만한 모습은 민주통합당에서도 보인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이 민주통합당의 변화를 옥죄고 있다. 좌로 갈지, 우로 갈지 몰라 어영부영하더니 이젠 아예 뒤로 가고 있다. 현재의 민주당이 보여주는 그림은 간명하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성에 안 차거나 못 미더워도 새로운 사람이 등장할 수 있게 자유경쟁의 무대를 만들고, 이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야 역동성이 생기고, 변화가 일어난다. 문제는 시대흐름이지 선수(選數)나 경험이 아니다.

췌언이지만 참 아쉬운 게 있다.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민주통합당의 56명 초선의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민주당이 변화해야 대선에서 이긴다면, 어쩌면 그 성패는 이들에게 달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생텍쥐페리의 <우연한 여행자>에 나오는 구절을 전한다. 아프게 들으면 좋겠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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