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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각장애인 반체제 인사, '기적의 탈주'"

[분석] "톈안먼 사태 이후 미 · 중 관계 최대 시험대"

오랜 가택연금 상태였던 중국의 반체제 인사가 극적으로 탈출해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관에 피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과 중국의 외교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29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들에 따르면, 이 반체제 인사는 천광청(陳光誠)이라는 이름의 인권변호사로 국제적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인권운동가 중 한 명으로 꼽혀온 인물이다.

천광청은 낙태·불임수술 등 중국의 폭력적인 산아제한 정책과 관료들의 부정부패 실태를 국제적으로 고발해 지난 2006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상을 바꾼 100인'에 뽑혔고 이듬해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기도 했다.

▲ 중국의 시각장애인 인권변호사 천광청. 사진은 천광청이 가택연금에서 탈출한 뒤 유튜브에 올려진 고발 동영상에서 캡처한 것이다. ⓒAP=연합
당국, 철저한 보안 속 사실 확인 전면 거부

천광청은 폭로의 대가로 4년여의 징역살이를 하고 지난 2010년 10월부터 가택연금 상태였다. 그는 지난주 20여 시간에 걸친 탈주 끝에 미국 공관으로 피신했으며, 이 공관은 베이징에 있는 미 대사관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 중이다. 미국 관료들은 이번 사건이 "시기가 나빠도 이렇게 나쁠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졌다"고 할 만큼 당혹해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5월 3일 전략경제대화(SED)라는 양국간 중요한 회의를 위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가이트너 재무장관 등 미국의 고위관료들이 중국 방문을 앞두고 있었다. 또한 중국은 현재 내부 권력투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어서 자국 문제가 국제적으로 노출되는 것에 어느 때보다 민감한 입장이다.

미국도 북핵, 시리아, 이란 문제 등에서 중국의 협조가 필요해 인권 문제만 앞세워 신속하게 대응하기도 어렵다. 이때문에 미국이나 중국 당국 모두 이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아무것도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당국은 철저한 보안 속에, 확인 취재에 전면적인 거부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탈옥 영화 같은 '미션 임파서블'한 탈주

천광청의 탈출 과정 자체도 "기적 그 자체"라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드라마 <프리즌브레이크>나 <쇼생크 탈출>이 연상될 만큼 '미션 임파서블'한 탈주였다는 것이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천광청은 눈도 거의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며, 사방에 CCTV가 설치되고,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는 가택연금 상태에서 중국 동부 산둥성에서 무려 480km 떨어진 베이징까지 이동했다는 것.

따라서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며, 외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사를 걸고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천광청은 가택감금 상태에서 외부에서 집을 감시하던 요원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를 노렸다. 그는 불과 10초의 시간에 다른 방으로 몸을 옮긴 뒤 뒷담을 넘어 탈출고, 당국이 며칠 동안 탈출 자체를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이 탈출 자체를 뒤늦게 안 이유는 천광청이 오랫동안 아프다면서 온종일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침대에서 생활해 1주일 이상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도록 두문불출하면서 방심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천광청이 혼자서 반경 5㎞의 감시망을 뚫고 마을 밖으로 나오기는 불가능했다. 이렇게 탈주하기까지는 형과 조카를 비롯해, 외부의 인권운동가들이 릴레이식으로 천광청을 베이징까지 빼돌려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관련 검색어 차단과 관련자 대대적 체포

중국 당국은 인터넷과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대한 통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이 사건의 파문 확산 차단에 주력하고 있다. 웨이보에서는 'CGC(천 변호사의 영문 이니셜)' '시각장애인(blind mana)' '대사관(embassy)' 등 천광청을 연상시킬 수 있는 단어의 검색을 차단하고, 이번 사건과 관련된 관련자들을 모조리 체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중국 당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배경에는 중국의 내부사정 탓이 크다. 중국은 오는 10월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공산당 대회를 연기해야 할지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내부가 혼란스러운 상태다. 권력의 핵심에 진입하기 직전에 돌연 낙마한 보시라이라는 인물을 둘러싸고 공산당 내부의 권력투쟁설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베이징에서 쿠데타까지 일어났었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실제로 현재 권력을 쥔 계파와 갈등을 빚어온 보시라이를 비롯한 반대파들이 쿠데타까지 준비했었다는 정황마저 전해지고 있을 정도다. 이 상황에서 중국과 아킬레스건이라는 인권 문제까지 터지면서 중국의 내부 상황이 국제적으로 더욱 주목을 받는 상황이 되자 중국 당국이 파문 확산에 강경하게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2의 팡리즈' 사건되나

이번 사건을 두고 '제2의 팡리즈(方勵之)' 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직 천광청이 미국에 망명을 신청했는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중국 반체제 인사가 주중 미국 공관을 통해 망명한 사례는 최근 사망한 팡리즈를 빼놓고는 알려진 사례가 없다.

팡리즈는 '중국의 사하로프'로 불리는 반체제 물리학자로 지난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직후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했다가, 1년이 넘는 미국과 중국의 비밀협상 끝에 망명이 허용된 이레적인 사건이었다. 따라서 천광청이 미 대사관으로 피신한 것이 사실이고, 망명까지 신청하게 된다면 팡리즈 사건처럼 매우 민감하고 폭발력이 있는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도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에 빠졌다. <로이터> 통신은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재선을 노리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천광청 사건에서 인권을 옹호하는 편에 서지 않으면 자유와 법의 수호자로서의 신뢰를 잃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월 보시라이 사건과 관련해 보시라이의 측근 왕리쥔이 미국 공관으로 피신해 망명을 신청했으나, 오바마 정부는 망명을 거부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중국의 눈치를 너무 본다는 공화당 등 반대파의 공격을 받아 왔다.

일단 오바마 정부는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를 일정보다 앞당겨 중국에 급파했다. <알자지라>는 "캠벨 차관보는 29일 베이징에 도착했으나, 방문 목적을 묻는 질분에 답변하지 않아 천광청이 대사관에 피신했다는 의혹을 부추겼다"고 전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중국 전문가로 최근 퇴직한 크리스터퍼 존슨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톈안먼 사태 이후 미.중 양국관계를 시험대에 올릴 최대 사건이 일어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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