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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국유화 조치는 부적절한 시기의 패착"

[분석]"고갈된 유전 국유화 이후 새 가스전 개발에 암운"

아르헨티나 정부가 스페인의 다국적 에너지기업 렙솔이 소유한 아르헨티나 최대 석유업체 YPF를 국유화하는 조치로 스페인 기업들의 신용등급과 스페인 증시가 충격을 받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9일(현지시간) 렙솔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 등급 중 제일 낮은 등급인 'BBB-'로 한 등급 추가 강등하면서 투기등급으로 떨어뜨릴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렙솔은 아르헨티나 정부에 YPF 국유화의 대가로 105억 달러(약 12조 원)의 보상금을 요구했지만, 아르헨티나 정부는 기업가치를 재평가부터 해야 한다면서 거부했다. 렙솔이 보상도 제대로 신속히 받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자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도 렙솔을 부정적 관찰대상에 올렸다.

게다가 아르헨티나 정부는 렙솔이 최대 주주로 있는 별도 법인 YPF가스도 국유화 조치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스페인 에너지기업 국유화 조치로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실패로 끝날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AP=연합
렙솔, 소유 기업들 잇따른 국유화 조치로 휘청

<AFP> 통신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관보를 통해 YPF가스 주식의 51%를 정부가 확보키로 했다고 발표했다"면서 "YPF가스는 YPF그룹에 소속되지 않은 별개의 기업이지만 , 렙솔이 8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르헨티나의 전격적인 외국 기업들의 국유화 정책은 '극단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일단 스페인 증시가 혼란에 빠지고 있다.

스페인의 대표 증시 지수인 IBEX의 시가총액의 절반에 달하는 렙솔 등 4대 기업들이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렙솔처럼 아르헨티나에 진출한 통신기업 텔레포니카, 최대 은행 방코산탄데르와 BBVA까지 이번 국유화 파문의 불똥이 튄 것이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는 아르헨티나 역시 이번 국유화 조치로 낭패를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의 편집 부국장 존 개퍼는 아르헨타나의 국유화 조치는 '부적절한 시기에 단행한 패착'이라고 분석했다.

"국유화 조치에도 때가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외국 기업의 국유화 조치는 종종 있는 일이다. 1937년 볼리비아가 스탠더드오일을 국유화한 이후 남미에서 외국기업을 국유화하는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엉망이고, 사회적인 불만도 큰 상황에서 이번 국유화 조치는 서민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그만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하지만 개퍼는 "이번 조치는 실패로 끝날 것이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국유화 조치 자체가 잘못됐다기보다는 무엇보다 시기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개퍼의 분석에 따르면, 외국기업을 국유화할 때의 적기는 투자와 탐사 등 개발 사업의 힘든 단계가 끝나 국유화한 뒤 본격적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을 때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의 현재 상황은 심각한 재정난에 국제 자본시장에서 자금 조달을 위한 신뢰를 상실한 상태이며, 외자 유치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YPF는 1992년 민영화되기 전에도 "석유기업으로서 적자를 내는, 세계에서 최악의 경영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1999년 렙솔에 넘어간 이후 지난 13년 동안에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투자를 등한시해서 에너지 수입을 하게 만들었다"고 불만을 제기할 만하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이제 새로 발견된 거대 가스전을 석유메이저의 자본과 기술도 없이 개발하게 생겼다. 서방권에서는 아르헨티나에 앞으로 누가 투자하겠느냐면서, 무리한 국유화 조치가 전반적인 투자 위축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는 "국유화 조치 자체가 이런 문제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 세상에 이익이 된다면 몰려들 투자자나 기업들은 널려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스페인 정부나 렙솔이 꺼내들 마땅한 '보복조치' 수단도 별로 없다.

가뜩이나 재정위기로 구제금융설에 휩싸인 스페인 정부는 아르헨티나의 국유화 조치에 '외교 단절'까지 거론했지만, 갈수록 수위를 낮추고 있다.

선진국들도 에너지 기업과 계약 파기

YPF의 국유화가 2000년 초 러시아에서 에너지기업 유코스를 국유화한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하지만 그 자체가 특별한 것도 아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2003년~2008년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에콰도르가 국제계약을 무시한 경우가 예전에도 있었고,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단일지역으로는 세계 최대 유전지대인 오리노코 강 유전에서 모든 다국적 석유메이저들을 내쫓고 국유화했다.

G7국가들도 국유화까지는 아니지만 다국적 석유기업들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조치를 해왔다. 영국의 2005년 북해 유전에 대해 세금을 물리고, 캐나다 앨버타 주는 2009년 오일 샌드 개발 수입에서 가져가는 몫을 올렸다.

그런데 이런 조치들은 아직 석유 가격이 낮고 개발탐사 비용이 많이 들어간 상태에서 이제 수익을 본격적으로 올릴 수 있을 때 전격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루이스 웰스 하바드대 교수는 "통상 30년짜리 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이런 계약이 그대로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베네수엘라 오리노코 유전의 사례에서도 엑손모빌과 코노코필립스는 국유화 조치에 반발했지만 프랑스의 토탈, 영국 BP, 미국의 셰브론은 국유화 조치를 받아들였다. 이탈리아의 에니는 보상을 요구하다가 2010년 베네수엘라의 국영에너지기업 PDVSA와 다시 계약을 새로 맺었다.

"단물 빠진 국유화로 새로운 투자 리스크만 높여"

반면 <파이낸셜타임스>는 아르헨티나의 이번 조치는 "너무 극단적이고 시기적으로 부적절하고, 렙솔이 아르헨티나에서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명분도 받쳐주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아르헨티나의 유전은 1907년에 발견돼 이미 고갈 단계에 들어갔다. 또한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남편이자 전임 대통령으로 재작년 사망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2003년 집권한 이후, 아르헨티나는 내수용 연료 가격 상한제를 실시하고 YPF에게 국제가격 이하의 대금을 지불하는 정책을 썼기 때문에 외국 석유기업이 투자를 늘릴 유인도 적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아르헨티나는 이제 시노펙 같은 중국 기업을 끌어들여야 할 처지가 됐지만, 다국적 기업들이 투자의 대가로 요구하는 항목에 정치적 리스크도 크게 반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퍼는 "자원 국유화를 하려면, 최소한 효과적일 때 해야 하는데,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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