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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준비한 일, 김정은이 준비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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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준비한 일, 김정은이 준비할 일

[미래연 주간논평]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빠른 속도로 권력승계를 마무리하고 있다. 장례식 직후 최고사령관에 취임하더니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를 잇따라 열고 당정의 수령 직책을 거머쥐었다. 총비서를 영원히 비워두고 제1비서가 되었지만 효성과 예우와 겸손을 내세우면서 '사실상' 총비서와 다름없는 권력을 행사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최고사령관과 당중앙군사위원장을 확보한 그가 국방위원장을 맡는 것은 오히려 형식적 통과절차의 성격이 강하다. 이로써 김정일 사후 100여일 만에 김정은은 공식적 권력승계를 완료했다. 김정일 사후 미국과의 협상을 주도하고 강성대국 진입을 과시하는 인공위성 발사를 강행하는 것도 김정은 체제의 대외적 안정성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안정적으로 권력승계를 마무리하고 있는 김정은은 정치적 리더쉽 확보뿐 아니라 권력엘리트의 재편과 단합을 과시하면서 당정군의 핵심 실세들을 신속하게 장악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은 적어도 권력정치 차원에서는 확고부동해 보인다.

짧은 후계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권력승계 과정이 이처럼 안정적일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의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이다. 돌이켜 복귀해보면 김정일 위원장은 2008년 8월 건강이상 이후 아들로의 원만한 권력승계를 준비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수령 사망과 후계자 권력승계를 직접 경험해봤고 스스로 수령제 시스템을 고안하고 작동해본 사람으로서 김정일 위원장은 권력정치 차원에서 챙겨야 할 내용들을 심혈을 다해 부지런히 준비해낸 것이다.

2008년 겨울부터 이미 김정은을 대동하고 현지지도를 다닌 것이 사후에 확인되었고 그 해 12.24일 천리마연합기업소를 시발로 제2의 천리마대진군을 주창했을 때도 노동신문에 강조된 청년의 나이 '25세'는 김정은을 암시한 것이 분명했다. 2009년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위원장의 권한을 명시했고 장성택, 우동측, 김정각 등 김정은 체제의 실세들을 미리 국방위원회에 진입시켰다. 그해 4월 미사일 발사와 5월 핵실험 역시 단순히 대미 겨냥뿐 아니라 후계체제 구축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2010년엔 장성택을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승진시키고 내각도 후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최영림 총리 체제로 전면 개편했다. 그리고 9.28 당대표자회를 개최해서 김정은을 명실상부한 후계자로 등장시키고 후계용 당직 인선을 완료했다. 후계자의 등장을 위해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자리를 신설해서 앉혔다.

아버지의 노력은 당정군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1년 사이에 중국을 세 차례나 방문해서 북중사이의 관계를 돈독히 한 것 역시 사실은 김정은 후계체제를 안착시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었다. 노구를 이끌고 수천킬로를 달려 중국을 종횡무진한 것은 오직 후계자의 권력 토대를 확고히 하기 위한 일념에서였다. 2011년 러시아 방문 역시 아버지 김정일의 피눈물나는 노력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다.

김정은 체제의 권력승계를 탄탄히 하기 위한 아버지의 노력은 죽음에 임박해서도 나타났다. 장례식 직후 당 정치국회의에서 김정은을 최고사령관에 추대하도록 10.8일 김정일은 미리 지시해놓았다. 그리고 10.8일은 자신이 아버지 3년상을 치르고 노동당 총비서에 추대된 날이었다. 이번의 제1비서 추대도 김정일의 '유훈'에 따라 짜여진 기획이었다. 권력승계 절차와 방식 및 시기 등을 아버지 김정일은 죽기 전에 심혈을 다해 준비하고 지시해 놓았다. 지금 김정은의 안정적 정치권력은 결국 아버지가 치밀하게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해 놓은 결과인 셈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준비해놓은 것은 여기까지다. 급히 서둘러 권력정치 차원에만 집중하기도 빠듯한 기간이었다. 따라서 권력 토대는 탈없이 만들어놓았지만 정작 김정은 체제가 내걸어야 할 비전과 정책은 아들에게 가르칠 여유가 없었다. 워낙 짧은 기간이어서 김정은 체제가 앞세울 만한 독자적 브랜드를 고민하고 정리해주질 못한 것이다. 김일성 주석의 '주체'와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에 버금가는 김정은의 깃발은 그래서 아직 여백으로 남아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영원한 수령으로 모셨지만 정작 현재 수령 김정은의 비전과 노선은 이제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김정은 체제의 깃발이 아직 미확정인 것은 오히려 우리에겐 기회로 다가온다. 권력정치의 안정성에 더하여 이제 김정은 체제는 자신의 깃발과 비전을 만들어내야 한다. 아버지가 미처 준비해주지 못한 정책기조를 이제부터 김정은은 만들어가야 하고 이 여백의 가능성에서 남북관계는 긍정적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스스로 준비해가야 할 김정은 체제의 비전이 경제를 앞세우고 인민생활을 우선하는 방향이 되도록 우리의 대북정책은 작동해야 한다.

대북 압박은 북한을 더욱 움츠리도록 할 뿐이다. 대북 강경은 북한으로 하여금 더욱 강경한 입장을 강화시킬 뿐이다. 화해협력의 남북관계를 통해 북한 스스로 개혁개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우호적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아버지 김정일이 만들어 준 권력정치의 안정성 위에 아들 김정은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남북관계는 개입할 수 있어야 하고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시기 대북포용정책의 정당성이 또 다시 강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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