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의가 단지 위선적일 뿐일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비롯해 40여 나라 정상들이 모여 한가롭게 잡담이나 하려고 이런 회의를 여는 것일까? 10년에 걸친 중동 전쟁에서 완전히 실패하고 경제 위기로 국제적 위신이 크게 추락한 미국이 이제는 일방주의 외교에서 벗어나 세계 평화에 기여하려는 것일까?
핵 테러 예방이 진정한 목적인가?
사실 오바마가 내세우는 '핵 테러 예방'은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연상시킨다.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 선언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듯이, '핵 테러' 예방은 실제로는 핵물질을 유출시킬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의 첫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는 부시 정부 시절부터 국방장관을 지내던 인물인데 그는 2008년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국가로부터 테러리스트들에게 무기가 흘러들어갈 가능성은 여전하며, 9·11 이후 (…) 우리는 테러리스트와 이들을 지원하는 국가 사이에 아무런 차이를 두지 않을 것이다."(로버트 게이츠,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연설문, 2008. 10. 28)
국내 연구자들도 '핵안보'가 실제로는 기존의 비확산 정책과 마찬가지로 '국가행위자'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핵무기를 이용한 테러는 (…) 사전에 방지되기 어렵고, 그렇다고 예방전쟁을 통한 위협 제거는 국제사회로부터 정당성을 확보받기가 매우 힘들며 더욱이 이라크 공격의 실패로 미국의 지도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 따라서 테러 수단을 제공하는 국가에 대한 보복으로 전략이 바뀐 것이다."(장노순, '핵테러와 미국 억지전략의 발전', 《국가전략>, 2009년 제15권 3호)
게다가 2010년 열린 워싱턴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작업 문서'를 보면 핵테러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수단으로서 유엔 안보리결의안 1540호의 "전면적인 이행"을 촉구했다. 유엔 안보리결의안 1540호는 2004년 미국 부시 정부가 만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국제법적 지위를 부여하려고 통과시킨 결의안이다.
PSI의 핵심 내용은 핵물질 등을 운반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배의 이동을 공해상에서 가로막고 검열을 하는 것인데, 대다수 국제법 학자들은 이를 사실상 전쟁 행위로 해석하고 있다. 검문을 하는 나라와 그 대상이 되는 나라 사이의 협약이 아니라 마음 맞는 나라들끼리 아무나 붙잡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2월 말부터 4월까지 대규모 한미 합동군사훈련(키리졸브 훈련, 쌍룡 훈련 등)이 연이어 실시될 예정이고 미국의 이란 제재 강화와 이에 대한 이란의 반발로 중동 지역의 긴장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는 핵안보는커녕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구실을 할 것이다.
이 회의가 진정으로 겨냥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한국 정부 당국자들도 애써 숨기지 않는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북핵 문제가 공식 의제는 아니라면서도 "핵안보정상회의가 북핵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전달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까지 "대량파괴무기 비확산과 핵 테러 방지를 위해 금융 제재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노골적으로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공동성명은 지금까지 북한이 자행한 핵확산 활동을 비난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따라서 세계 평화는커녕 동북아에서 군사적 긴장만 높일 핵안보정상회의에 반대해야 한다.
▲ 2010년 워싱턴에서 열린 1차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한미 정상들의 대화 ⓒ청와대 |
미국의 대북압박과 북핵, 그리고 핵발전소 수출
북한 핵을 문제삼는 건 필요한 일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듯하다. 공정하게 평가하자면 북한의 핵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압박이 낳은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국이 북한에 대한 '핵선제공격론'까지 들먹이자, 북한은 핵 무장을 통해 안전을 도모하려 한 것이다.
더욱이 미국의 압박에 핵 개발로 대응하는 나라는 북한만이 아니다. 이라크 전쟁 당시 반전 운동을 벌인 영국 하원의원 조지 갤러웨이는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해 있고 사찰까지 받은 이란을 공격하려 한 미국을 비난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도는 NPT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인도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2006년 3월 핵 개발과 관련해 미국의 협력을 보장받았다. 이 모든 사실들이 이란 정부에 보내는 신호는 분명하다. 그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만약 우리가 조약 회원국이라는 이유로 이 모든 위협을 받고 있다면, 조약에서 탈퇴한 다음에 핵 개발을 지속하면 될 것 아닌가?'"
이처럼 NPT를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킨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따라서 미국 등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핵무기에 우선해서 반대해야 하고, 이란·북한에 대한 강대국들의 위선적·패권적 압박에 동조해선 안 된다.
물론 그렇다고 북한의 핵 개발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핵 보유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핵무기는 미국의 전쟁광들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민중의 목숨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미국의 위선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압력에 단호하고 일관되게 맞서 싸우면서 모든 핵에 반대하는 견지에 서야 한다.
또한 핵안보정상회의 1주일 앞서 서울에서 열리는 핵산업계 회의에는 핵관련 국제기구 담당자들과 핵산업계 인사들이 대거 참가한다. 핵산업계 회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김종신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이 회의에 대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떨어진 원자력에 대한 신뢰 회복"과 "원자력 산업의 입지 강화"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 핵 재앙을 보고도 이 '죽음의 발전'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세계 각국에 핵발전을 수출하는 데에도 핵안보정상회의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G20 회의처럼 이 회의를 치적으로 삼으려는 듯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계엄령 수준의 경호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또 총선을 앞두고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과 핵안보정상회의 반대 운동을 탄압하는 등 안보 정국을 조성하려 한다. 탈북자 북송 문제나 이어도 문제 등도 우파 결집의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진보진영은 이런 시도에 맞선 광범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 '핵안보정상회의 대항행동'과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릴레이 기고 네 번째 글입니다.
1. '핵안보'는 과연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까? (수열 사회진보연대 반전팀장)
2. 서울서 인천 가는데, 베이징으로 돌아서 가려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3. 구럼비 깨면서 '더 평화롭고 안전한 회의'?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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