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미국, 프랑스와 함께 세계적인 원전대국인 일본에 후쿠시마 원전 사태 1년만에 모든 원자로가 가동이 중단되는 '원전 무가동 시대'에 돌입하게 됐다는 점에 놀라워 하고 있다.
8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는 "54기의 상업용 원자로 중 현재 불과 2기를 빼고 모두 가동이 중단됐고, 언제 재가동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면서 "나머지 2기의 원자로도 4월말까지 차례로 가동이 중단된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에 따라 일본은 전체 전력 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원전산업이 최소한 일정기간 문을 닫게 됐다"고 덧붙였다.
'원전산업 포기'라는 변화가 당장 뾰족한 대안도 없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일본 국민이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잘 보여준다.
▲ 지난 7일 유럽의회 일부 의원들이 '후쿠시마 1년'의 교훈을 되새기자며 원전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 |
일본 정부는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를 비롯해 대체적인 입장은, 엄밀한 안전기준을 세워 이 기준을 통과한 원자로들은 재가동하고, 몇 십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원전산업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다 총리도 여론의 반발을 우려해 "지자체의 동의가 없이는 원자로를 재가동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현재 원자로가 있는 지역의 주민과 지자체, 시민단체들은 어떤 경우에도 원자로의 재가동은 있을 수 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일본의 원자로들은 활성단층(언제든지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단층) 위에 지어진 경우가 많아 '핵폭탄을 끌어안고 사는 격'이라는 공포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최소한 몇 년 동안 일본에서 원자로가 재가동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전력 생산의 3분의 1를 차지하는 원전이 '셧다운'되는 되는 상황에서도 '정전대란'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놀라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절전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지역별로 순환 정전을 하는 것은 물론, 여름에도 에어컨의 가동을 중단하고, 관공서는 주간에 소등하는 등 고강도의 절전 조치들이 취해진 것이다.
절전 조치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수입이나 화력 발전 등으로 대체하느라고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피하지 못했다. 수출기업들은 엔고에 이어 에너지 비용이 급증하면서 경쟁력이 떨어져 30여년만에 '수출강국'으로 군림하던 일본이 30여년만에 처음으로 무역수지를 기록했다.
에너지 수입으로 비용이 늘어 수출 경쟁력도 크게 약화됐고, 여기에 엔고 현상과 재난에 의한 피해 때문에 자동차, 반도체 등 주요 수출 품목의 공정이 멈추는 등 타격을 받아 지난 1년 사이에 일본에서는 500여개 기업이 줄도산했다.
또한 일본의 전력 회사들은 원전 가동이 재개되지 않을 경우 10% 이상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면서 4월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을 17% 인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일본, 올 여름 더 심각한 에너지 위기 직면"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여름만 해도 19개의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올 여름에는 더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3.11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1년을 맞아 돌아보면,공식통계로만 사망.실종자 1만9000여 명, 재산 피해 규모 17억엔(약 232조 원)에 달하고, 10만 명 가까운 주민들이 아직도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넘어, 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의 변화는 일본 국민에게 '트라우마'가 깊이 자리잡게 됐다는 것이다.
3.11 대지진과 원전사고가 일본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 준 충격을 한 마디로 말하자, 일본의 안전신화'가 붕괴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후쿠시마 사태 이전에는 세계에서 일본만큼 지진과 원전운영에 있어서 철저하게 안전을 지키는 나라가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일본은 국민이 뼛속까지 안전에 철저한 문화를 가졌을 뿐 아니라, 기술 면에서도 세계 최고수준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3.11 사태로 이런 일본의 안전신화는 처절하게 무너졌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원전 사태도 지진에 의한 높은 쓰나미에 대한 충분한 대비를 하라는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적당히 대비한 채, 전원복구용 비상장비까지 해안가에 방치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일시에 망가져버려 대형사고로 확대된 인재로 나타났다.
또한 그동안 원전 운영에서 안전점검이나 노후 부품 수리 등이 허위보고로 이뤄진 사례가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폭로됐다. 이런 사정을 알고보면 일본에서도 지진과 쓰나미가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건 원자로가 대형사고를 일으킬지 모르는 상태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일본 국민은 지진이나 원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안전하다는 것은 기술만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특히 일본 국민은 다른 나라는 몰라도 일본의 지형상 원전 운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다.
지진 공포, 도쿄에서는 '면진 설계' 건설 붐
지진에 대해서는 거의 공포에 사로잡힌 분위기다. 최근 수도 도쿄에서는 내진 설계만으로도 불안해, 지진의 충격파를 흡수하는 '면진 설계'까지 추가된 건설 붐이 일고 있다. 향후 20층 이상 고층 빌딩에 대해서는 면진설계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정부 연구팀이 '수도권 직하형 지진'의 예상 강도가 더 커질 가능성을 경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진 공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전문가들은 일본 국민은 한때 자부했던 핵기술은 물론, 정부에 대한 신뢰를 '거의 전국적으로 잃어버렸다'고 묘사한다"고 전했다.
히토쓰바시대 에너지 관련 이코노미스트 키카와 다케오는 "3.11 사태는 전후 일본의 정체성을 뿌리채 흔들었다"고 말했다. 히로시마와 나카사키 원폭을 겪었어도 우수한 기술과 전문관료들이 경제성장을 위해 원자력을 잘 다뤄왔다는 자부심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은 '화장실 없는 집'"
이번 사고로 원자력 발전의 뒤처리도 만만치 않다는 점도 부각됐다. 원전의 뒤처리까지 감안하면 원전이 정말 '깨끗하고 안전하고, 값싼' 청정 에너지라는 3대 장점이 의문시된 것이다. 원자력 발전의 문제점을 간단히 표현하는 말이 '화장실 없는 집'이라는 것이다.
핵연료를 사용한 뒤 이것을 처리하는 방법이 비용도 엄청날 뿐 아니라, 사실상 방법도 없다는 지적이다.
이론적으로는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또 사용하고, 최종적으로 남는 고농도의 폐기물을 철저하게 밀봉처리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가 가능하다는 얘기를 '연금술로 금을 만들 수 있다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재처리 시설을 짓다가 사고가 나고 비용이 몇 배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재처리 과정도 방사능 배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도 재처리 시설을 예정된 계획대로 늘리지 못해 지금 몇 년 못가서 사용후 연료를 보관할 곳조차 없게 될 지경이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추가 원전 건설은 포기하고, 기존의 원자로 중 40년이 넘는 원자로들을 차례로 폐기한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하지만 원자로 하나 폐기하는데도 막대한 비용이 든다. 원자로 하나 폐기하는 비용을 3000억 원 정도로 잡아두고 있지만, 최근 연구결과 최소 3배인 1조 원 정도가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원전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국내에서도 8일 원자력산업계 주최로 열리기는 했지만 국제적인 유력인사들이 참여한 에너지 관련 국제세미나에서 원전에 대한 찬반 논란도 여전했다.
특히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현재 원자력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라며 "국제적인 규제를 강화해 원자력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이점을 최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라젠드라 파차우리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의장은 "원자력은 화석 연료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훨씬 적지만 기술적 한계도 있고 안전 관리나 폐기물 처리 등의 문제도 있다"며 "원자력 에너지의 비중은 이런 장점과 한계를 놓고 개별 국가가 결정해야 할 정책적 문제"라고 보다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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