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안보국방정책을 하나의 범주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안보정책은 국가안보에 관한 정책이며, 대상 기간중 안전과 평화의 현실적 유지 여부, 즉 효과성(effectiveness)이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이에 비해 국방정책은 국가안보를 현재 및 미래에 달성하기 위한 방책으로서 국방 부문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기능했는가에 더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재구축되었는가 하는 점, 즉 효율성(efficiency)이 또 하나의 잣대가 된다.
2009년 3월 이명박정부는 《성숙한 세계국가》를 외교안보 비전으로 제시한 바 있다. 2004년 3월 참여정부에서 사상 최초로 제시한 안보정책 문서인 《평화번영과 국가안보》의 개정판 격인 이 책은 비록 국가이익과 국가안보전략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지 않지만, 적어도 '창조적 실용주의' 원칙하에 국가안보를 굳건히 할 것을 도모한 것으로 판단된다. 창조적 실용주의란 ① 주변 환경에 대한 냉철하고 치밀한 평가 하에 ② 실천 가능한 목표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세워 ③ 투입한 노력과 비용에 대한 최대의 성과를 거두는 행동 규범이다.
그런데, 정부의 이와 같은 정책목표에도 불구하고 지난 4년간 우리 안보가 확고하게 유지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당장 2010년 3월의 천안함 사건과 11월의 연평도 사태는 최근에 발생한 가장 심각한 안보불안 사태였다. 천안함 사건은 발생 초기부터 정부의 위기대응에 문제가 있음을 노정했고, 그 결과 상황 발생간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뿐더러 상황 종료후에도 사후 수습과 원인 규명,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국내외적 노력 모두에서 일정한 한계를 보여 주었다. 이 사건에서 발생한 해군장병 희생자수는 사실상 남북이 전쟁 상태였던 1960년대말 이래 가장 큰 규모였다.
연평도 사태는 더 충격적이었다. 휴전 이후 최초로 북한이 남한 지역을 포격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위기예방 조치는 극히 미흡했다. 북한이 대응사격을 운운하는 동안에도 특별한 경계조치가 미비된 채 사격훈련이 행해졌고, 북한의 포격이 감행되면서 현지 부대의 응사만 이루어졌을 뿐 공습 등 과감한 대응은 제한됐다. 연평도 주민의 소개 등 비상대비 태세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 부각됐다. 해병 장병과 민간인 희생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으나, 남북 접경지대의 교전 가능성이 커지면서 안보 위기감은 증폭됐다.
두 사건은 대상기간 동안 진행된 안보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위협이 커지는 만큼 대응 수단도 강화됐지만, 안보 불안이 지속됐다. 이명박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점차 악화되면서 위협은 점차 고조되고 현실화됐다. 2008년 7월 금강산관광객 피격사망 사건은 우발적이었지만, 그 뒤 북한은 남한으로부터의 대북 심리전에 대한 강경 대응을 경고해 왔다. 2009년 11월 대청해전과 이듬해 천안함 및 연평도 사태는 그동안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해 오던 서해 북방한계선(NLL) 근처뿐 아니라 서해 5도에도 공격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건 후 정부의 단호한 태도는 일단 평가할 만하다. 청와대 위기관리체제는 재정비됐고,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한 한미의 대응태세도 강화됐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 이후 한미의 서해해상훈련에 대한 중국의 반발이 거셌고, 연평도 사태 뒤 한국의 재사격을 둘러싸고는 유엔 안보리에서 긴급 회의가 개최되는 등 국제적 반향이 있었다. 북한의 공격을 국제적으로 규탄하고 공동의 인식을 모색하는 데 한계가 나타나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외부 개입 분위기도 나타났다. 2011년 1월 미중정상회담에서의 한반도 평화 합의는 상황 안정에 기여했지만, 남북한간 적대행위에 대한 주변국 영향력의 공동 행사라는 차원에서 부담을 주었다.
일련의 안보불안 사태는 국방 부문의 재구축을 서두르는 계기가 됐다. 사실 전 정부 기간 내내 진행된 한미동맹 재조정과 국방개혁은 개혁 피로감의 일부 조정을 제외하고는 정책적으로 선택할 부분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2008년초 미국의 제의로 주한미군의 추가 감축이 동결되고 2010년 천안함 사건의 여파로 한국군의 전작권 환수가 2012년에서 2015년으로 연기되면서 국방개혁의 시간표에 한시적 여유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 결과 2006년 법제화 이후 매 3년 단위로 재검토하기로 하여 작성된 〈국방개혁기본계획('09~'20)〉에는 전투부대의 완전성 보장, 비전투 분야의 효율성 제고, 예비군 정예화, 북한위협 대응전력 보완 등 제한된 조치만 포함된 결과를 낳았다.
천안함 사건은 다소 느슨하던 국방 부문 재구축을 서두르는 계기가 됐다. 위협이 현실화되면서 시급한 대응이 필요해졌다. 2010년 출범한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는 천안함 이후 국가안보총괄점검기구와 함께 국방개혁 대안 마련에 주력했고, 2011년 3월 〈국방개혁 307계획〉을 확정했다. 이는 상부지휘구조 개편, 전력증강 우선순위 조정,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창설 및 특수전 부대 재편성, 국방인력 제도 및 국방교육체계 개선, 장성 숫자 감축 등 73개 개혁과제를 포함하고 있다. 국방부는 이 계획을 반영하여 과거 2020년까지의 국방개혁 시한을 10년 늦춘 〈국방개혁기본계획('11~'30)〉을 재수립했다.
국방개혁 조정안은 기존 국방개혁안에 더해 상정할 수 있는 개혁 과제를 추가로 망라한 것으로서, 당면한 안보불안 사태를 고려하여 단기적 처방에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전체 과제중 1~2년 안에 완료할 단기 과제가 37개로 51%이고, 나머지 중기('12~'15년) 과제가 20개로 27%, 장기('16~'30년) 과제가 16개로 22%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한 당면 과제로 해병대사령관이 지휘하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하고 북한의 국지도발과 비대칭 위협에 대비하여 잠수함 및 장사정포 대응전력을 우선 구비하도록 했다.
그동안 개혁의 숙원 사업으로서 합동성을 강화하는 과제도 포함됐다. 각군대학을 통합하여 합동군사대학을 창설하고 3군사관학교 생도를 일부 통합 교육하는 방안이 시행되기에 이른 것이다. 또한 과거 818계획을 통해 합참의 기능이 부분적으로 강화된 이후의 획기적 조치로서 합참의장에게 제한된 군정기능을 부여하는 것과 동시에 각군 참모총장을 작전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포함하였다. 합참의장은 각군 총장을 작전지휘하는 데 필요한 인사, 군수, 교육 기능 등 제한적인 군정기능을 행사할 수 있게 됐고, 각군 총장은 각군 작전사령부를 통합한 각 작전본부장과 작전지원본부장을 지휘하게 됐다.
이명박정부의 국방개혁안은 제한된 국방비 여건을 반영한 것이다. 참여정부 5년 동안 국방예산의 평균 증가율이 8.8%였는데, 현 정부는 2009년 7.1%, 2010년 3.6%, 2011년 6.2%(당초 5.8%), 2012년 5.0%로 4년간 단순평균 5.4%를 배분하였다. 이는 2008년 국제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국가재원이 위축된 데다가 국방을 경영 효율화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대상기간 동안 경상운영비 지출이 크게 제한되는 결과를 낳았지만 역설적으로 국방 효율화를 증진하는 효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북한 위협의 증대로 시급한 전력증강 소요가 대두하면서 차세대 전투기(F-X) 및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대형 공격헬기(AH-X), 해상 작전헬기, 장거리 공대지유도탄, 합동직격탄(JDAM) 등 해외도입 무기체계의 비중이 급증하게 된 점이 특기할 만하다. 전 정부에서는 소요 무기체계에 대해 안정적인 전력 건설 및 유지는 물론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국내개발을 확대해 나간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현 정부는 방위산업의 수출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이를 위해 민군간 기술교류 확대와 더불어 선진국과의 공동개발을 적극 추진한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국산 기동헬기의 공격헬기 전용이나 한국형 전투기 개발 등 국내 방산기반 확충을 위해서는 여전히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
전력소요의 조정으로 주로 지상 및 공중전력의 보강이 예정된 가운데 진행된 상부지휘구조 개편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됨으로써 국방개혁법 개정안 통과가 18대 국회에서 사실상 무산됐다. 이 개편안에 대해 정부는 군령과 군정의 획일적 구분에 따른 비효율성을 해소하고 유사시 대응 가능한 합동작전 지휘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고, 일부 군과 군사전문가들은 헌법상 문민통제 원칙 위배, 각군의 특수성 무시, 3군 균형발전 및 균형인사 도외시 등을 이유로 강력히 반발했고, 임기말 국회는 논쟁적 사안의 처리를 회피했다.
이상으로 이명박정부의 안보국방정책을 개괄적으로 평가해 보았다. 남북 충돌과 긴장 격화로 국가안보의 안정적 유지에 일단 한계를 노정했고, 그 대응으로써 한미 대응태세의 강화 역시 중국 등의 반발을 초래하는 등 난점이 컸던 것으로 판단된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의 결과 재점화된 국방개혁 노력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다. 당면 위협에 우선 대응하면서 지상전력이 재강조되고 무기 해외도입이 늘게 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상부지휘구조 개편안의 무산도 다음 국회에서의 재논의 등 과제로 남게 됐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2년 3·4월호(제17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이명박 정부 4년 : 외교‧안보‧대북정책 평가'입니다. (☞전체보기)
* 원제 : 이명박정부의 안보‧국방정책 평가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