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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제-반원전 공약하면 '진보'인가?

[진단]기존 정치 환멸 틈탄 '하시모토 열풍'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basic income)을 준다는 '기본소득제'는 국내에서도 19일 통합하기로 한 진보신당과 사회당 등 가장 좌파성향이 강한 정당들이 '보편적 복지'의 정책으로 거론하지만, 아직 '담론' 수준에 머물 정도로 파격적인 정책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 '최고 인기의 극우파 정치인'이 기본소득제를 공약으로 내걸겠다고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소식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물론 국내의 좌파 진영에서도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일본 기존 정당들을 떨게 만들고 있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로이터=뉴시스
최강의 '보편적 복지정책' 공약 검토하는 극우 정치인

화제의 정치인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다. 하시모토는 요즘 일본 정계에서는 젊은층이나 여성들에게 연예계 톱스타처럼 열광적인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지방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말 민주당과 자민당 등 일본의 주류 정당들이 하시모토의 당선을 막기 위해 연합전선을 펴고 현직 시장을 지원했는데도 압승을 거두며 오사카시장에 취임했다.

또한 그가 만든 지역정당 '오사카유신회'를 통해 향후 총선에서 200~300석의 의원을 배출하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단숨에 단독 집권당이 될 수 있는 의석을 차지하겠다는 포부다.

현재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지지율이 취임 6개월도 안돼 20% 중반으로 떨어지고, 앞서 총리들이 모두 지지율이 20%도 안되는 '20% 룰'에 걸려 취임 1년도 안돼 낙마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하시모토는 "총리를 국민이 직접 선출해야 한다"면서 공세를 펴고 있다.

여기에 하시모토는 총선 공약으로 전국민에게 최소한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제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념적으로 볼 때 보수진영은 능력 있는 자나 게으른 자에게 왜 시혜를 베푸느냐는 식으로, 복지정책은 어디까지나 선별적으로 하자는 발상을 하는데, 하시모토는 이것을 깨는 발상을 내놓은 것.

"재원 마련? 공무원들의 예산 낭비 줄이면 돼!"

하시모토는 기본적으로는 일본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며 군국주의 부활을 주장하고, 공무원들은 '세금을 갉아먹는 흰개미'라면서 거의 모두를 숙청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작은정부를 주장하는 극우파다.

그런데 진보좌파 진영에서도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문으로 논란이 많은 최강의 보편적 복지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겠다고 나선 것이다.

'기본소득제'는 재산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관계없이 모든 개인에게 최소생활비를 지급하는 '보편적 복지정책'의 전형이지만, 아직은 브라질에서 입법화되고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일부 지역에서 실험적으로 시행되고, 천연자원 채굴로 재원이 풍부한 미국의 알래스카나 본격 시행되는 등 실제 현실화돈 곳은 극히 드물다.

하시모토가 내놓은 기본소득제는 그 방법에 있어서, 철저하게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극우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즉, 온갖 복지정책이라는 게 사실은 그 업무를 복잡하게 만들어 공무원을 늘리고 세금이나 축내는 제도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누가 복지대상인지 가려내는 선별작업 자체가 복잡하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최소한 일본의 현실을 보면, 선별적인 복지 업무 자체가 엉망인 것으로 여러차례 드러나서 하시모토의 주장이 주목을 받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무려 5000만여 명이 넘는 국민연금 기록이 유실되는가 하면, 실업자가 아닌데도 실업수당을 받는 식으로 수급자격 심사도 엉터리로 이뤄지는 경우가 잇따라 폭로되기도 했다.

기본소득제가 실현 가능한 정책이냐는 의문은 결국 재원 조달이 가능하냐의 문제다. 이에 대해 하시모토는 '선별적 복지정책'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 나눠먹기식 재정지출만 줄여도 재원 조달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시모토는 정부가 각종 복지정책을 위해 공무원들이나 늘리고, 일자리 창출을 한다며 불필요한 공공사업을 많이 벌여왔다고 비판한다.이런 방식의 복지정책이나 공공지출은 비효율적인 낭비라는 것이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일정한 생활비를 지급하면 수급 자격심사 업무가 생략되는 만큼 관련 분야 공무원을 줄여 그 인건비를 재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절전 정책은 원전 필요성 여론 조성 의도"

하시모토는 원전 정책에서도 진보좌파 진영이 무색할 정도로 반원전 운동에 나서고 있다. 심지어 전국적인 절전 시책에 대해 "원전의 필요성을 높이려는 술책"이라면서 오사카시는 절전 시책을 거부하겠다고 맞섰다.

마치 국내에서 9.15 정전대란 당시 "이명박 정부가 원전 증설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일부러 정전사태를 유도한 것이 아니냐"는 진보좌파 진영 일각에서 제기된 의혹을 일본에서는 '극우파' 인사인 하시모토가 적극 제기한 것이다.

이런 파격적인 주장들로 그의 인기는 계속 치솟아 일본에서는'하시모토 현상'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일본 보수성향 산케이 신문이 올해 신년 기획으로 조사한 차기 총리 후보 순위에서 하시모토 도루는 압도적인 1위(21.4%)를 차지했다. 극우 망언으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2위, 9.6%)를 크게 앞섰다.

이상적인 지도자 랭킹에서는 역사적인 인물까지 통틀어도 5위에 꼽혔다. 근대 일본을 만들었다는 메이지유신 기획자 사카모토 료마같은 역사적 인물이나 은퇴한 인물을 빼면 현역 중 1위다.

진보성향의 아사히 신문의 조사에서도 총리에 걸맞는 인물 2위에 올랐다. 게다가 그는 노인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일본 정계에서는 거의 청년에 속한다. 1969년생으로 올해 43세에 불과하다.

하시모토 도루는 성장 배경이나 경력도 거의 소설 같다. 부친은 최하층 천민집단 출신의 야쿠자로 일찍 자살해버려, 하시모토는 홀어미 밑에서 자라 고학으로 명문대(와세다)에 입학했고, 대학 때 현재의 부인과 동거해 일찍 아버지가 됐다.

1994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공중파에 고정 출연하며 전국적인 지명도를 쌓았는데,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기존질서에 순응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과감한 발언들 뿐 아니라, 7남매 가장으로 서민의 생활에도 대해서도 피부에 와닿는 비유를 구사하는 언변도 그의 인기에 크게 작용했다.

2007년 하시모토는 고향 오사카 정계에 투신, 곧바로 오사카부 지사에 당선됐고, 중복 행정에 따른 낭비를 없애야 한다면서 지난해말에는 오사카를 도쿄도처럼 '도'로 승격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지사직을 던지고 '급'이 낮은 오사카 시장에 도전하는 등 파격적인 정치행보를 보였다.

자치단체장 인기 몰이, 나라 맡겨도 될까

하지만 기존 정계에서는 '하시모토 현상'에 대한 경계감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 "무기력한 정치를 바꾸고 싶다는 일본 국민들의 좌절감을 교묘하게 파고도는 포퓰리즘"이라거나 "지금의 정치판을 바꾸기 위해서는 독재에 가까운 힘이 필요하다"는 하시모토의 발언을 거론하면서 "하시모토 파시즘, 이른바 '하시즘'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문제는 하시모토가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라는 기존 패러다임을 넘나들면서 기성 정당들에 대한 절망감과 '새로운 정치'를 염원하는 유권자들을 파고드는 공약을 쏟아내면서 '옥석 가리기'가 더욱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2008년 오사카부 지사로 취임한 지 2년만에 공무원 임금 삭감 등 격렬한 반발을 일으키는 정책으로 만년 적자에 허덕이던 오사카부의 재정을 흑자로 돌려놓은 하시모토가, 멋진 공약을 내걸어 일본이라는 한 나라를 이끌 자리에 오르면, 역사가 보여주듯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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