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에서도) 평화체제를 하겠다, 남북연합을 임기 내 건설하지는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겠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나와야 할 것입니다. '평화, 민주, 복지' 같은 다 근사한 얘기로만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충격적인 정책을 들고 나와야 합니다."
<2013년 체제 만들기>라는 책을 펴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14일 한반도평화포럼 주최로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북 토크쇼'에서 올해 치러질 선거의 결과로 시작될 내년부터의 시기를 역사적 전환의 시발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줄곧 강조했다.
'2013년 체제'란 이 전환의 내용에 대한 백 교수의 명명이다. 그는 "2013년은 정부가 바뀌는 시기인데, 단순히 대통령·정권이 바뀌는 정도로 만족할 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를 획기적으로 바꿨으면 좋겠다"면서 6월항쟁 이후 '87년 체제'가 성립했을 당시의 전환 폭에 맞먹을 정도의 큰 변화를 통해 "새 시대를 마련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백 교수 외에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패널로 참여했다. 이종석 전 장관은 2013년을 앞둔 변화의 진폭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이만큼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회적 반성이 공유된 때가 없었다"아렴서 "여당조차 경제 민주화, 재벌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초유의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청년층의 정치참여 등의 새로운 정치현상이 반영된 첫 정권이 바로 2013년 들어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14일 서울 연세대 김대중도사관에서 열린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근간 <2013년 체제 만들기> 북콘서트 현장. ⓒ프레시안(최형락) |
"남북관계가 한국 정치 권력투쟁의 핵심"
백낙청 교수의 '2013년 체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제시된 세 단어는 민주, 평화, 복지다. 하지만 백 교수가 그간 '분단 체제'의 극복을 강조해 온데 비춰볼 때, '평화가 없이는 민주도 복지도 어렵다'는 면에서 2013년 체제의 핵심은 평화체제로 읽힌다.
백 교수는 1953년 휴전협정으로 이뤄진 분단체제인 '53년 체제'가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87년 체제조차 53년 체제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분단이 시작된 1945년이 아니라 1953년을 체제 성립의 시점으로 보는 까닭에 대해서는 강대국들에 의해 이뤄진 분단이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국민들 내부에서도 '그래도 전쟁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분단에 대한 내부적 동의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남북관계가 정치권력의 핵심 문제라는 것을 수구세력이 알고 정치화해 왔다는 면에서 수구세력이 진보주의자들보다 훨씬 예리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평화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연평도 사태가 다시 나와서는 안된다'는 차원이 아니라 (평화가) 민주와 복지, 국내적 쇄신의 핵심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중은 물론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분들도 전쟁방지, 민족화해, 교류협력, 경제적 이득 같은 차원에서만 생각했지 한국의 권력·정치지형에서 얼마나 핵심적인 문제인지 수구세력만큼 깊이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옳은 방향으로 정치화하는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평화체제가 중요한 것은 그 자체의 의미도 크지만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만 바뀌면 그때부터는 수구세력이 꺾여 버린다"는 설명이다. 그는 올해 대선에서 진보진영의 후보라면 "천안함에 대해서도 용기있고 패기있는 주장을 들고나와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의 차별성을 명백히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종석 전 장관도 "그간 민주주의가 역진하는 계기는 다 남북관계에서 주어졌다"면서 동감을 표시했다. 이 전 장관은 "천안함 사태가 났을 때 보수언론은 '북한 어뢰가 햇볕정책을 침몰시켰다'고 했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2년 넘게 '비핵·개방·3000'을 해놓았으니 사실 침몰된 건 햇볕정책이 아닌 비핵·개방·3000"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논리적으로 간단한 거지만 지배적 담론들의 허위공세에 다 넘어갔다.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면서 '쌀을 퍼줬더니 핵무기로 돌아왔다'와 같은 보수언론의 공격에 대응할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2013년 체제의 대북정책, '햇볕정책 ver. 2.0'
백낙청 교수는 2013년 체제하에서의 대북정책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을 '업그레이드'한 '포용정책 2.0'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다만 "포용정책은 잘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무엇이 모자랐는지 진지한 반성에 기초해 대안을 내놔야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종석 전 장관은 "부족한 것, 보완할 것도 많다"면서 예를 들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논의 과정에서) 북한에 어마어마한 모래가 있으니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한강 하구의 모래를 같이 '퍼먹자'고 제안했었는데, 그건 우리의 생태나 환경을 생각하지 않은 짧은 견해였다고 생각한다"라며 성찰적인 견해를 내놨다.
백 교수는 '포용정책 2.0'의 주요 내용은 첫째, 시민참여 하의 통일과 둘째, 남북연합 건설을 목표로 설정한다는 두 가지라고 설명했다.
남북연합 건설에 대해 백 교수는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이자 결손국가다. 헌법에 명시된 영토의 절반에 대해 주권 행사를 못해본 것이 결손국가가 아니면 뭔가"라면서 "수구세력은 북방한계선(NLL)만 가지고도 해양영토 문제라며 윽박지르고 '친북좌파냐? 적화통일하자는 거냐?'고 하는데 그런 공식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10.4 선언에서 합의한 내용을 이명박 대통령이 시행했다면 이 정부 임기 내에도 남북연합을 선포할 수 있었다고 본다"면서 "진정한 보수 정부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꼬집었다. 그는 "(남북관계가) 지금 난항을 겪고 있지만 그 대가로 시민들이 각성하고 있기 때문에 2013년 체제 하에서는 남북연합이 가능하리라 본다"고 기대를 내비쳤다.
"시민참여,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없어…MB정권 심판부터가 출발"
다음으로 한반도의 통일이 '시민 참여형' 모델로 이뤄져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 백 교수는 "남북관계에 시민이 얼마나 끼어들 수 있나 하지만 꼭 시민이 모든 것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시민 참여의 첫째 과제는 포용정책을 망가뜨린 정부, 많은 전문가들의 비판·충고·제언에도 끄떡도 하지 않는 정부를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를 국민의 힘으로 뒤집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이로써 "북한에 화해협력 정책이 지속가능하다는 보장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2013년 체제를 건설한다면 지금같이 보수도 아닌 망나니 정권은 못 들어온다고 봐야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서 "정부를 갈아치우는 것이 시민 참여의 첫째 과제이고, 둘째로는 다음 정부에서는 통일 관련 부분을 민·관 협치기구에 상당히 이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설치돼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나 노사정위원회 같은 민·관 협치기구가 있어야 "통일 문제를 정쟁의 차원이나 사회비판의 차원에서 떼내어 올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또 시민참여와 남북연합이라는 두 가지 내용은 각자 따로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연합이) 아무리 권한이 제한돼 있어도 생기는 순간 남북 양쪽 정부 모두 권력을 뺏기게 된다"면서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놓을 정부는 없다. 시민들이 압력을 가해서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결과, 4월 총선에서 이미 판가름날 것"
ⓒ프레시안(최형락) |
하지만 야권이 승리해 19대 국회가 여소야대가 된다면 국면이 달라질 것이라고 봤다. 그는 "19대 국회가 여소야대가 되면 이는 우리 정치사에 없던 상황"이라며 "정권 말기 레임덕 현상이 있는 상화에서 '야대'가 되기 때문에 힘있는 국회가 되게 돼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민주통합당이든 통합진보당이든 모두 냉정하고 겸허할 필요가 있다"면서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 세(勢)도 얼마 안 되니 '쟤들 없어도 이길수 있다'는 자세를 버려야 하고, 통합진보당도 과도한 요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또 "선거 과정에서 할 일과 이후에 할 일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면서 "통합진보당의 최대 목표가 20석을 확보해 원내교섭단체를 만들겠다는 건데, 의석수가 많을수록 좋기는 하겠지만 20석이 돼야 원내교섭단체를 만든다는 것은 헌법 규정도 아니고 국회법만 고치면 간단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20석을 확보할 만한 양보를 얻어내는 것도 해볼만 하지만 그게 안 되면 교섭단체 의석 수를 15석으로 한다든가, 20대 총선에서 진보정당이 더 진출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고친다든지 이런 합의를 전제로 (선거 연대를) 할 수 있는 거라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벌개혁이야 말로 '친시장적' 조치"
진보진영에 대해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백 교수는 "경제 민주화를 얘기하고 있지만 진보 쪽에서는 성장 담론이 부족한 것 같다"면서 '뭘 먹고 살 건지'에 대한 고민이 좀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분배가 성장에 이바지하지만, 성장은 저절로 되니 분배만 잘하면 된다는 것은…(아니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경제의 위기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한국은 그간 가계부채도 많아지고 국가재정도 악화됐다. 특히 공식 국가재정이 아닌 공기업 부채는 4대강 사업을 수자원공사에 떠맡겨 빚을 내게 하는 등 많이 악화됐다"면서 "이처럼 이명박 정부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들어설 새 정부가 뭘 가지고 국민을 먹여살릴 건지 토론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재벌개혁에 대해서도 "그간 재벌이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견인해 왔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 않다는 차원에서 재벌개혁을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면서 그는 "정상적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재벌의 엄청난 이득이 하청 기업에도 일반 국민에게도 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예컨대 스마트폰 분야에서 'IT 강국'이었던 한국이 낙후된 까닭이 재벌 대기업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있지 않았냐면서 "이미 (재벌) 저거는 동력이 아니다. (…) 재벌개혁도 사회정의 차원이 아니라 친시장적이고 성장 동력을 키우는 작업이라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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