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당국은 '외국으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미국 고위 당국자의 친아들을 포함한 미국인 19명과 독일, 세르비아 등 기타 국적의 외국인 24명에 대한 재판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고 5일(현지시간) 주요 외신들이 전했다.
이집트 군부는 외국에서 흘러들어온 자금이 반군부 시위의 배후에 있다면서 외국 단체들을 비난해 왔다. 군부는 지난달 이같은 이유에서 10개 NGO 단체를 압수수색하고 활동가들에게는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미국은 거듭 우려를 표명하며 이집트에 경고를 보냈지만 먹혀들지 않고 있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재판 추진 소식이 전해진 후 "매우 우려하고 있으며, 이집트 정부의 분명한 해명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앞서 자국 활동가들에 대한 출국금지 해제를 요구한 바 있다.
지난 4일에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이들에 대한 재판을 계속 추진한다면 이집트에 대한 원조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은 올해 이집트에 군사 원조 13억 달러, 경제 원조 2억5000만 달러를 제공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재판 소식이 전해지면서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미 국내에서 일고 있다.
군부, '무리수' 재판 왜 밀어붙이나
이같은 미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추진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반군부 시위의 배후에 외세가 개입해 있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해 반군부 여론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이집트 인권운동가 바히 에딘 하산은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군부가 자신들의 계속된 실패를 가릴 희생양을 찾고 있다"고 말했고,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도 <BBC> 방송에 "군부가 반대 의견을 침묵시키려는 전술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로 자유주의 정파가 주축이 된 반군부 시위대는 군이 적절한 개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면서 조속한 민정 이양을 요구해 오고 있었다. 특히 지난해 말 경찰이 반군부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의 옷을 잡아당겨 상반신을 속옷 차림으로 만든 상태에서 발과 몽둥이로 구타하는 장면이 널리 퍼지면서 군부의 도덕성에는 큰 타격이 가해지기도 했다.
최근에도 축구 팬들의 난동으로 최소 74명이 사망하는 유혈사태가 발생하면서 군부와 경찰의 무능한 대처를 비판하는 시위가 반군부 시위로 발전하는 등 군부 입장에서는 악재가 겹쳐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자 중동 민중들 사이에 퍼져 있는 반미 감정을 이용해 시위대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 하는 게 군부의 의도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집트 혁명을 이끈 세력들 가운데서도 이 사건에 대해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최대 이슬람주의 정파 무슬림형제단 계열인 자유정의당의 모하메드 사드 알카타트니 신임 국회의장은 지난 1일 미국의 자국 활동가들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 해제 요청에 대해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했다.
이같은 상황은 지난달 31일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이 반군부 시위대의 국회 앞 행진을 가로막는 일이 발생하는 등 총선 이후 이슬람주의 정파와 자유주의 정파 간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일어나 더욱 주목되고 있다.
▲ 카이로의 내무부 청사 인근에서 5일(현지시간) 한 시위 참가자가 최루탄을 발사하는 경찰 병력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 70여 명의 사망자를 낳은 이집트의 축구장 유혈사태는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임시 군사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반(反)군부 시위로 번졌다. ⓒ로이터=뉴시스 |
'축구장 유혈사태' 비판 시위 격화
한편 지난 1일 축구장 유혈사태에 대해 경찰과 군이 무능한 대처를 보였다는 비판 시위가 격화되면서 사상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시위 나흘째를 맞은 5일에는 수도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등 각지에서 시위가 이어졌다. 사망자 수는 최소 12명으로 늘어났다.
이날 이집트 국영 TV는 카이로의 세무서 건물이 화염에 휩싸인 모습을 방영했고 내무부 근처의 건물 일부도 불에 탔다. <알자지라> 방송은 시위대가 무장 차량과 건물에 불을 지르고 진압 병력에 돌을 던졌으며, 경찰은 최루탄과 새 사냥용 산탄을 발사하며 해산을 시도했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당초 축구장에서 난동이 나도 경찰과 군이 무능한 대응을 보여 유혈사태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비판을 앞세웠지만, 최근에는 한 발 더 나아가 군부의 퇴진과 조기 대선 실시를 요구하는 반군부 시위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시위대 일부는 유혈 사태에서 숨진 대부분의 희생자가 '알아흘리' 팀의 응원단이라면서 이는 군과 경찰이 의도적으로 이들을 사망하도록 놔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카이로를 연고지로 하는 알아흘의 응원단 '울트라스'는 무바라크를 몰아낸 시민혁명 과정에 적극 참여했고 때문에 군과 보안 당국의 미움을 사 복수를 당한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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