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동북아평화센터 김영호 이사장(단국대 석좌교수)이 지난 22일 흥부기행의 공식일정을 거진 마치며 한 말이다. 흥부기행은 매년 제비가 돌아오는 계절인 봄을 맞아, 한국 사회에 숨겨진 착한 경영인, 즉 현대판 '흥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올해로 열다섯 번째를 맞은 흥부 기행의 이번 주제는 '자립하는 마을, 살아나는 생태 환경'이었다. 60여 명의 기행단은 충남 서산과 홍성을 방문해 생태 환경을 보존하며 살아가는 자립 마을 공동체들을 방문했다. 특히 충남 홍성의 홍동 마을은 일찍이 1970년대 중반부터 환경 유기농업의 '메카'로 떠오른 곳이다.
김영호 이사장은 "환경 재해와 양극화가 날로 심각해지며,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며 "그런 만큼 친환경 정신과 이노베이션 정신, 나눔의 실천을 담은 흥부 정신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산수향 육쪽마늘 성공의 비결…'갈등' 아닌 '협동'
20일 흥부기행단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대산 농업협동조합이었다. 대산 농협은 최근 서산 지역 대표 상품인 '뜸부기 쌀'을 호주로 재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2010년 수출이 잠시 중단되고 3년 만이다.
'오빠 생각'이란 추억의 동요에 등장하는 뜸부기. 대산 농협은 "오염된 논에서는 살 수 없는 여름 철새인 뜸부기가 최근 서산 농업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농약과 비료로 오염된 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뜸부기 쌀은 농협과 전량 계약 재배를 통해, 1등급 이상의 벼만 선별해 품종별로 구분 저장한 뒤 가공된다. 미곡종합처리장의 최신 설비를 이용해 절미(금간 쌀), 싸라기, 상한 낟알 등을 95퍼센트 이상 걸러내 '완전 미'라 해도 무방하다.
▲ 뜸부기쌀이 거치는 대산 농업협동조합의 미곡종합처리장. ⓒ프레시안(최하얀) |
두 번째 방문지는 태안·서산 지역 대표 특산물인 '산수향(蒜秀香) 육쪽마늘'을 저장·가공하는 서산·태안 육쪽마늘 종합처리장이었다.
충남 서산과 태안은 예전부터 마늘 생산지로 유명한 지역이다. 따뜻한 해양성 기후와 비옥한 황토밭 덕택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서산과 태안 사이에 원조 마늘 논란이 불거졌다. 두 지자체 간 싸움은 두 지역 모두에서 마늘 산업의 발목을 잡았다.
마늘 생산 농가들과 지역 농협, 서산시와 태안군이 머리를 맞댄 것은 그즈음이었다. 함께 죽기보다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강구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 결과 지난 2008년 '서산·태안 육쪽마늘조합 공동사업법인'이 설립됐다. 공동법인은 서산과 태안에 각각 전시실과 선별장, 저장실 등을 갖춘 가공사업장을 설립하고 '산수향'이란 브랜드를 만들어 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갈등'을 버리고 '협동'을 택한 결과는 매출 신장과 더불어 산다는 기쁨이었다. 법인을 본격 가동한 첫 해인 2010년 산수향은 무려 12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재작년에는 향이 좋고 조직이 단단한 마늘만을 엄선해 발효·숙성시킨 흑마늘도 개발됐다. 값은 다른 마늘에 비해 약간 비싸지만, 산수향은 중간 상인의 폭리가 제거된 제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수질개선업체 워싱코리아의 김규리 연구소장이 수질개선제 SM-P가 더러운 물을 정화하는 과정을 시현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
흥부기행단은 세 번째로 만난 흥부는 수질개선업체 '워싱코리아' 대표단이었다. 이 업체는 최근 효과적인 수질 개선제 에스엠피(SM-P)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제품은 기존의 화학제품들과는 달리 미생물 등의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며 오염된 물을 정화한다고 김규리 워싱코리아 연구소장은 밝혔다.
김규리 소장 등은 오염된 물을 단시간 안에 정화해내는 과정을 흥부기행단 앞에서 직접 시현했다. 적조, 녹조 등으로 오염된 물이 담긴 비커에 SM-P를 넣자, 빠른 속도로 오염 물질이 침전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김규리 소장은 "물 공부를 하기 위해 건너간 미국에서 아프리카 코트디브아르의 작은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교회를 다녔다"며 "더러운 흙탕물을 그대로 마실 수밖에 없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현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 동남아시아 등 가난한 나라에 SM-P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출해, 이 지역의 아이들이 깨끗한 물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더불어 사는 평민'…홍성 생태 농업마을
▲ 홍성 생태 마을에 있는 '밝맑도서관'. ⓒ프레시안(최하얀) |
21일 흥부기행단은 홍성군 홍동면 생태농업마을 탐방에 나섰다. 4700여 명 주민이 더불어 살아가는 이 마을에는 특별한 부농도, 수억 원의 돈을 들인 건물도 없다. 주민들은 자립·자생하는 생태 공동체를 꾸리기 위해 오리 농법 등의 유기농업과 축산을 실천하고 있었다.
홍성 생태마을의 시발점은 1958년 개교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이하 풀무학교)였다. '더불어 사는 평민'을 교훈으로 삼는 이 학교의 학생들은 1학년 때는 채소를, 2학년 때는 과수와 원예를, 3학년 때는 벼농사와 축산 과목을 수강한다. 빵 만들기, 옷 만들기, 농기계, 도예, 공예, 목공, 친환경 자재(비누, 효소) 등으로 세분된 선택 과목도 있다.
풀뿌리 2년제 지역 대학인 '전공부 생태농업과'는 풀무학교 정신의 '완성'을 위해 지난 2001년 문을 열었다. 전공부는 시장 경제와 경쟁, 과소비를 대체할 새로운 세계관으로 생태계 보편 법칙인 다양성, 상호의존성, 순환, 개체 속 전체, 자발성, 조화 등을 꼽는다. 이를 가장 잘 실현하는 산업은 '농업'이다.
2010년 9월 준공된 '밝맑도서관'도 기행단의 눈길을 끌었다. 면 단위의 마을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도서관.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만든 밝맑도서관은 상설 전시와 공연이 열리는 회랑과 북카페, 열람실, 전자 도서실, 농민강좌실, 지역문화연구소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밝맑'은 풀무학교 개교를 주도한 평북 정주 출신의 선각적 지식인 이찬갑 선생(1904-1974년)의 호다. 도서관 반경 300미터 내에는 여성농업인센터, 어린이집, 유기 농업 연구소, 그물코 출판사 등이 있기도 하다.
홍성 생태마을은 무공해 유기 쌀을 생산하는 '오리 농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2000년 12월, 오리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3년 동안 모은 기금으로 3000평에 달하는 땅을 공동 구입하고, 이 부지에 환경농업교육관과 농업 유물관, 전통가옥 체험장, 찜질방 등을 지었다. 마을을 찾는 손님들에게 농업과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 사용하기 위함이다.
▲ 홍성 생태마을 내에 위치한 농업 유물관. 나무와 황토로 지은 유물관에는 농촌에서 사용해온 생활 용품과 농기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후손에게 농업과 우리 것의 중요성을 전하기 위함이다. ⓒ프레시안(최하얀) |
김영호 이사장은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줬던 흥부처럼, 자연과 생태의 가치를 알고 이를 지키기 위해 실천하는 흥부들을 만나 기쁘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도, 모든 것을 맡기는 순종자도 아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공존과 협동의 정신이 오늘날 절실하다"며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을 넘어 널리 자연을 이롭게 하는 '홍익 자연'의 정신을 갖추자"라고 말했다.
경제학자인 그는 "나는 평생 아담 스미스가 창시한 경제학으로 먹고 산 사람이다. 하지만 아담 스미스가 간과한 것이 있다"라며 "인간의 이기심을 바탕에 둔 경쟁이 더 높은 품질과 낮은 가격을 만들어 풍요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아담 스미스의 논리는, 흥부의 '이타심'을 간과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15차 흥부기행을 통해 만나게 된 흥부들에게서 배울 수 있었듯, 이타심과 협동은 이기심을 이기고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경제를 만든다"며 "우리 시대의 숨겨진 흥부를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20일 밤 홍성 농업교육관에서 흥부기행단이 착한 경영, 자립하는 마을, 생태와 공존 등에 관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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