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연구원의 '2012 동아시아, 정세 분석 및 전망' 시리즈를 전재합니다. 총6회로 진행되는 이 연재에서는 2012년 리더십 교체가 이뤄지는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중동의 정세를 전문가들의 눈으로 분석합니다.
코리아연구원(연구기획위원장 이정철 숭실대 교수)은 정치·외교, 경제·통상, 사회통합 분야의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네트워크형 싱크탱크입니다.(☞홈페이지 바로가기) <편집자>
2012년 김정은체제의 출범과 경제강국 건설 전망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한층 긴박해졌다. 북은 김 위원장의 사망이후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중심으로 장의절차를 진행하면서, 새로운 지도체계를 빠르게 구성하였다. 김 부위원장의 짧은 후계체제 준비 기간, 젊은 나이와 경험 미숙 그리고 '최악의 경제상황'(?) 등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국내외 분석과는 달리, 상당히 안정적·체계적으로 후계체제가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체제는 김 위원장 생존 시의 기존 노선과 정책을 승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김 위원장 사망 이후 '혁명전통의 계승'과 '유훈통치'를 강조하고 있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북측 지도부로서는 김 위원장 서거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변화보다는 기존 노선의 유지와 안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북의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과 함께 금년 중에 남측은 물론 주변 국가들의 정권교체가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새롭게 등장한 김정은체제의 정책방향과 북을 둘러싼 대외환경에 대한 세심한 분석과 전망이 절실히 요구된다. 본 글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이후 북에서 발표된 문건들을 중심으로 금년도 정책방향 및 정세를 살펴보고자 한다.
분석대상 문건은 △당 중앙위와 군사중앙위, 국방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내각 공동명의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2011. 12. 17),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 결정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강성국가건설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킬데 대하여"와 공동구호(2011. 12. 30), △2012년 신년공동사설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2012년을 강성부흥의 전성기가 펼쳐지는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이자"(2012. 1. 1) 등이다.
Ⅰ. 김정은 중심의 유일영도체계 확립과 권력구조 재편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북의 최대 과제는 역시 김정은체제의 조기 안정화라고 할 수 있다. 북은 김 위원장의 급서에도 불구하고 김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지도체제를 출범시키면서 빠르게 정치·사회적 안정을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측 당국은 김 위원장 사후 발표된 주요 문건이나 보도매체 등을 통해 김 부위원장을 '위대한 영도자', '당중앙위원회 수반', '주체혁명의 계승자' 등으로 격상시켰다.
또한 김 위원장에 대한 추도기간이 끝난 직후인 12월 30일에는 당 정치국회의를 열고 김정은을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선포하였다. 이와 같이 북이 김 위원장 사후 큰 혼란 없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은 2010년 9월의 당 대표자회의를 통해 사실상 후계체제의 가동에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김 위원장 유고에 대비한 위기관리 매뉴얼도 이미 마련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체제의 등장과 함께 주요 관심사는 집단지도체제의 출현 여부와 새로운 핵심권력을 차지할 인물들에 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한의 집단지도체제의 등장이나 장성택 또는 제3의 인물에 의한 섭정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북의 사상이론체계에 기초한 '수령-후계자론'은 단일지도체계(유일영도체계)에 기초한 것이다.
김 위원장 사후 발표된 정치국회의 결정서에서는 "김정은 동지를 우리 당의 통일단결과 령도의 유일중심으로 높이 받들고 정치사상적으로, 목숨으로 결사옹위"할 것을 강조하였다. 금년도 신년사설에서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는 선군조선의 승리와 영광의 기치이며 영원한 단결의 중심이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는 곧 위대한 김정일 동지"라고 언급하였다.
따라서 북은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유일영도체계 확립을 당과 국가, 군대의 조직사업에 있어 금년도 최우선과제로 추진할 것으로 보이며, 이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그룹이 핵심권력층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체제 하에서 권력핵심 인사들은 이번 김 위원장 장의기간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 우선 주목되는 인물은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과 장성택 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부부이다. 이들은 김 부위원장의 가장 가까운 친인척이며, 당·정의 주요 직책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후견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김경희는 백두혈통으로서 북측 내부에서 차지하고 있는 상징성이 매우 크며, 선대 빨치산 세대와 현재 지도그룹을 연결하고 이들에 대한 충성을 이끌어내는데 있어 중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장의기간 중 대장군복을 입고 나와 주목을 끈 장성택은 공안분야에 대한 당적 지도와 함께 외자유치, 평양시 현대화 등 다양한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과 비중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부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장성택의 섭정론이나 1인자 부상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장성택의 권위는 기본적으로 김경희로부터 비롯되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으며, 군부나 빨치산그룹으로부터의 충성을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체제 하에서 주목되는 두 번째 그룹은 군부 인사들이다. 이번 장의기간 중에 군부 서열은 리영호 총참모장, 김정각 총정치국 1부국장(총정치국장 공석),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등이다. 이들은 인민군의 3대 핵심직위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 부위원장의 군사분야 장악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주요 군부 인사로는 우동측 보위부 1부부장을 비롯하여, 김 부위원장의 연초 '류경수 제105탱크사단 현지방문을 수행한 현철해·박재경 인민군 대장, 황병서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등을 들 수 있다.
세 번째 그룹은 빨치산 2·3세대이다. 이들은 사실상 북 지도부 내의 핵심계층으로서 선대로부터 이어진 유대관계로 묶여진 그룹이다. 가장 대표적 인물이 최룡해 비서(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와 오일정 당 민방위부장(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을 들 수 있다. 김일성·김정일의 유일지도체계 형성에 빨치산 1세대 및 2세대가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것처럼, 이제 2·3세대가 김정은 중심의 유일지도체계 형성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네 번째 그룹은 당·정의 전문 관료그룹이다. 북측 당국을 형식적으로 대표하는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과 최영림 내각총리(이상 정치국 상무위원), 김기남·최태복 당 비서, 전병호 내각 정치국장(이상 정치국 위원) 등은 김일성시대에서부터 국정에 참여해 온 원로그룹으로 노세대와 김정은 부위원장 및 현재 지도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지난 당 대표자회의를 통해 부상한 문경덕 평양시당 책임비서, 박도춘·김영일 당 비서(이상 정치국 후보위원) 등도 김정은체제의 핵심인사로 볼 수 있다.
Ⅱ. 강성국가의 대문을 여는 해: '함남의 불길'과 '지식경제강국'
김정은체제의 등장으로 인해 북의 경제정책이 급변할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기존의 선군경제발전전략이 상당기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김 위원장 사후에 발표된 북의 주요 문건들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우선, 지난해 12월 30일 정치국회의에서 채택된 결정서에서는 "김정일 동지께서 지펴주신 새 세기 산업혁명의 불길, 함남의 불길이 온 나라에 세차게 타번지게 하여 사회주의경제강국건설에서 일대 앙양을 일으킬데 대해 언급하고 해당한 과업들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신년사설에서는 동일한 내용에 대해 김 위원장의 '강령적 유훈'이라고 강조하였다.
여기서 핵심은 '함남의 불길'과 '새 세기 산업혁명'이다. 신년사설에서는 함남의 불길에 대해 "당이 준 과업을 최단기간 내에 최상의 수준에서 해제끼는 완강한 공격전의 기상, 제힘으로 세계에 솟구쳐 오르려는 강한 민족자존의 정신, 자기 고장과 자기 일터에서 강성부흥의 대문을 남먼저 열어제끼려는 선구자의 기질 구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새 세기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최첨단 돌파전으로 우리 식의 지식경제강국을 일떠세우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이며 우리 당이 내세운 사회주의건설의 웅대한 전략적로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자력갱생 노선'과 '첨단과학기술'을 결합한 경제발전 전략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제정책 방향은 김 위원장 생존에 이미 확인되었다. 우선 지난해 10월 김 위원장의 함흥시에 대한 현지지도를 총화하여 "함남의 불길따라 2012년 위대한 승리를 위하여 총공격하자"는 구호가 <로동신문> 사설(2011. 10. 28일자)에 제시되었다. 또한 김 위원장의 지난해 10월 자강도 현지지도를 총화하여 "지식형 경제강국의 봉화가 온 나라에 타오르게 한 사변"이라는 <로동신문> 사설(2011. 11. 2일자)과 함께, 12월 17일자에서는 "새 세기 산업혁명"에 대한 사설도 게재되었다.
신년사설을 중심으로 금년도 경제정책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강성국가의 대문을 열기 위한 올해의 투쟁에서 빛나는 승리를 이룩함으로써 사회주의강성대국을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새로운 높은 단계에 들어서야 한다"고 하여 2012년에 '경제강국의 대문을 연다'는 기존의 목표를 재확인하였다. 또한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강성대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몇 개의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최근 북이 '강성대국' 대신 '강성국가'를 제시함으로써 경제적 목표달성이 힘든 북측 당국이 목표를 축소하였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목표 축소나 자신감 부족이라기보다는 강성대국 실현과정에 있어 중장기적 전망을 갖고 단계(강성국가 진입→강성국가 실현→강성대국 달성)를 구분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북이 강성국가 대문을 열기 위한 금년도 목표와 달성여부이다. 북이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연다'는 것은 지난 2007년 11월에 개최된 '전국지식인대회'에서 결정되어, 2008년 신년공동사설에서 공식 표명되었다. 특히, 2012년은 김일성 주석 출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김정은 후계체제와도 연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측 당국은 현 시기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것은 '경제강국의 대문을 여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산업 정상화와 인민생활 향상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속되어 온 식량과 생필품 부족 현상을 어느 정도 해소하여 인민들의 실생활을 개선함으로써 정치·사회적 안정과 후계체제의 조기 안정화를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금년도 신년사설에서 3년 연속 농업과 경공업을 주공전선으로 제시한 것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북측 당국이 농업과 경공업의 생산 확대를 통해 경제상황 개선의 효과를 주민들이 실감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거쳐 1998년부터 강성대국 건설노선을 제시하였지만 북측의 식량과 생필품 부족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4대 선행부문의 정상화에 주력하였지만, 일반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해당 부문의 정상화가 자신들의 실생활 개선과는 거리가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북측 당국은 강성대국 건설노선과 관련된 경제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지지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인민생활의 실질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공업과 농업부문의 정상화를 통한 식량과 생필품의 공급확대는 거시경제의 안정적 운용 및 계획경제 정상화의 관건이라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의 경제전문가 발언이나 문건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2012년 경제강국의 대문을 연다는 것은 1980년대 중후반의 경제수준 회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북은 현 시기 경제강국 건설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업은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과거의 최고 생산수준을 돌파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리기성은 <경제연구>(2009년 1호)에서 "우리가 도달해야 할 최고 생산수준은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위한 물질기술적 토대축성에서 커다란 진전이 이룩되었던 1980년 중엽의 생산수준"이라고 기술하였다. 북은 1987년과 1988년 당시의 생산수준이 최고연도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당시 생산관련 주요 지표로는 석탄 8,300만톤(1987년), 철강 690만톤(1987년), 비료 540만톤, 포(布) 8억 5,000 미터, 1인당 국민소득 2,500달러(1988년) 등이다.
경제강국의 대문을 여는 것은 이러한 생산지표와 함께 대규모 건설사업의 결과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기초건설(SOC)과 관련해서는 2012년 완공예정인 발전용량 15만kw의 희천발전소(2호)와 평양의 10만호 건설 공사, 영변의 경수로 발전소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따라서 북은 금년에 주요 생산지표가 1980년 중후반 수준에 근접 내지는 초과하거나, 대규모 기초건설 등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과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2012년 '경제강국의 대문을 연다'는 목표는 지난 시기의 경제력 회복 또는 '먹고 사는 문제의 기본적 해결 수준'의 낮은 경제적 단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1970년대 후반 덩샤오핑이 중국의 개혁·개방을 추진할 당시 제시한 원바오(溫飽)사회(1978년부터 2000년까지 빈곤해소를 통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사회)와 유사하다.
한편, 2012년 경제강국 목표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하는 것이 첨단과학기술부문과 대외경제협력부문이다. 첨단과학기술부문은 2000년대 경제발전에서 북 당국이 가장 중시하는 것으로, 첨단산업의 육성과 국방력 강화라는 두 가지 목표 달성을 위한 관건적 요소이다. 최근 몇 년간 북은 경제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핵심과제로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초한 첨단돌파'를 강조해왔다. 북의 주요 매체들도 △주체철 생산체계의 완성 △비날론의 생산정상화(주체섬유, 비료) △생산현장의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화 △우주항공기술 △핵관련 기술 △생물공학 등의 발전을 중시해왔다. 금년도 신년사설에서도 "새 세기 산업혁명은 최첨단 돌파전으로 우리식의 지식경제강국을 일떠세우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이며 우리 당이 내세운 사회주의건설의 웅대한 전략적 로선"이라고 재차 강조되었다.
또한 2009년 이후 북은 외자유치를 중심으로 한 대외경제협력 확대에 주력하였으며, 이 중에서도 북중경협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북은 2009년 10월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으로 양국간 경제협력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 이후 화폐개혁을 단행하고, 라선시에 대한 개방조치와 함께 해외자본 유치를 위한 기구(국가개발은행, 대풍그룹, 합영투자위원회 등)를 창설하였다.
특히, 2009년 인공위성 발사 및 2차 핵실험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되고,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에 따른 한국정부의 5·24 조치로 남북경협이 위축되면서 북의 대중국 의존도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최근 중국의 대북투자가 확대되고 있는데, 양국 정부는 접경지역(라선특구 및 황금평)의 공동 개발과 함께 경제협력의 물리적 연계성을 강화하는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금년에도 양국간 경제협력은 더욱 확대되고 그 성과도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북측 경제발전에 새로운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Ⅲ. 북미관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연계
금년도 북의 대외관계에서 가장 핵심적 사안은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다. 북은 오래전부터 미국과의 적대관계 종식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를 마련해야만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입장을 천명해왔다. 김 위원장 사후에도 이러한 입장과 원칙은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김 위원장 사망에 따른 위기의식으로 인해 북이 비핵화 협상과정에서 더욱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정치국 결정서에서는 김 위원장의 업적으로 '강위력한 핵보유국, 위성발사국으로 전변'을 강조하고 있는 점도 비핵화 협상에 임하는 북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북은 핵보유의 근본적인 원인인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전환되지 않는다면 핵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북이 한반도 비핵화와 미국의 적대시정책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연계한 것은 한미 양국이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협상에 대한 북측의 대응방안이라고 볼 수도 있다. 북측의 입장에서 볼 때 한반도 비핵화로 제공되는 대가(주로 경제적 대가)들은 자신들의 비핵화조치에 비해 대단히 '가역적'이고, 북측의 체제안전과 유지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체제와 북미관계 개선이 병행되는 것이 실제로 비핵화의 '되돌릴 수 없는' 대가이자, 핵보유의 근본적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핵문제' 해결이 아닌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미국과 북측의 적대관계 청산과정에서 해소될 문제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현재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은 2009년 북측의 인공위성 발사 이후 중단된 채 열리지 못하고 있다. 6자회담 재개에 대한 선결조건을 둘러싼 북과 한미 간의 입장차이로 인해 재개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북미 양측은 제네바에서 2차 북미대화를 통해 미국의 대북 '영양지원(nutrition assistance)'과 모니터링 강화, 우라늄 농축프로그램(UEP)의 셧다운 등에 대한 논의에서 일부 진전을 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2일경에 예정된 3차 북미대화가 김 위원장 사망으로 연기됨으로써 금년 상반기 이전 6자회담 재개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상반기 이후부터 남측은 물론 미국, 중국 등에서 선거와 정권교체 움직임이 본격화될 경우 6자회담 자체가 연내에 개최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금년도 6자회담을 통한 핵문제 해결은 북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연계 움직임과 관련국들의 정치일정 등으로 인해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Ⅳ. 남북관계, 키리졸브훈련 중단 여부와 남측의 선거 결과
금년도 남북관계는 어느 해보다 불확실성이 높다. 지난해 통일부장관 교체를 통해 우리 정부가 대북정책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천안함·연평도라는 근본적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조문허용 여부에 대한 남측 정부의 소극적 자세로 인해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북은 추도기간이 끝난 직후인 지난해 12월 30일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이명박 정부와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발표주체가 북의 최고영도기관이라는 점에서 남북대화 재개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년사설에서도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저해하고 대결을 격화시키는 역적패당의 반통일적인 동족적대정책을 짓부셔버리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북이 정치국회의 결정서와 신년사설에서 6.15 및 10.4 선언을 강조하고 남북대화를 언급한 것은 당국간 대화보다는 민간교류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 이명박정부와의 대화에 그리 연연할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금년도 남북관계 전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가 2월말에서 3월까지 열리는 한미 키리졸브훈련이다. 북이 신년사에서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무모한 군사적도발과 무력증강, 전쟁연습책동을 걸음마다 짓부셔버려야 한다...조선반도 평화보장의 기본 장애물인 미제침략군을 남조선에서 철수시켜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키리졸브훈련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북은 한미 합동으로 대규모 기동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북에 대한 위협행위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 군사적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측 당국으로서는 3월말에 대규모 국제행사인 핵안보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4월에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한 시점이다. 키리졸브훈련의 연기·취소는 물론, 기동훈련을 배제한 도상훈련으로 축소하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금년도 남북관계의 또 다른 변수는 4월의 총선과 12월의 대선 결과이다. 특히 총선 결과는 하반기 남북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수 내지는 1당을 유지할 경우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야권이 승리할 경우 정부의 대북정책 수정에 대한 국회의 압박이 한층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총선 이후 6.15선언 12주년과 10.4선언 5주년에 즈음하여 국회 차원에서 남북대화에 직접 나설 수도 있다. 이 경우 민간교류를 포함하여 정당·국회 등 비당국간 교류협력 활성화 움직임과 이를 제한하려는 정부 간에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임기 말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정책목표로 제시한 이명박정부라면 북을 자극하는 대규모 한미군사훈련 실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하고, 당국간 회담 재개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미 우리 정부가 밝힌 바와 같이 천안함·연평도 사과가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라면, 선제적으로 금강산·개성 관광사업의 재개를 위한 남북 당국회담을 제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5.24조치의 중단과 함께 식량을 포함한 인도적 지원 및 경제교류 재개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 동아시아 정세분석 전편 보기
<1> 미국 : "오바마 대북정책, 2월 '키리졸브 훈련'이 시험대"
<2> 중동 : 가열되는 미국-이란 '치킨게임', 전쟁으로 갈까
<3> 중국 : "성년 맞은 한중관계, '자기중심적 외교'로는 안 된다"
<4> 러시아 : 석유로 세운 '푸틴의 제국'에 놓인 만만찮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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