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시작하는 조건으로 미군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 중인 탈레반 지도자의 석방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테러 용의자들을 자국 법에 저촉받지 않고 무기한 구금·심문하기 위해 해외 미군기지 내에 만든 수감 시설이다.
▲ 수용소가 자리한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정문 ⓒAP=연합뉴스 |
미국-아프간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이 <가디언>에 밝힌 바에 따르면, 석방이 거론되고 있는 탈레반 지도자 중에는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를 장악했던 시절의 물라 카이르 코와 내무장관, 누룰라 누리 주지사 등이 포함된다. 이들보다 더 논쟁적인 인물은 물라 파즐 아쿤드 사령관으로 미국 정부는 그의 신병을 카타르 등 제3국으로 인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이 구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미군 병사 보 버그달(25) 병장의 석방도 협상 내용에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이같은 입장은 탈레반이 평화협상을 위한 연락사무소를 개설할 것이라고 밝힌데 대한 응답으로 보인다.
미국과 탈레반은 아프간전을 끝내기 위해 2009년부터 페르시아만 인근 국가들과 독일 등지에서 평화협상을 위한 접촉을 가졌었지만 양측 모두 정치적 문제로 인해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웹사이트와 이메일 성명 등을 통해 "카타르를 포함한 관련국들과 해외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기로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다. 무자히드 대변인은 연락사무소 개설은 '국제사회'와의 평화협상을 위한 것이라며 아프간 주둔 외국군의 철수와 지도자 석방 등을 요구했다. 사무소 개설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프간 평화협상의 미국 측 고문을 역임한 발리 나스르 터프츠대 교수는 사무소 개설에 대해 극적인 돌파구라고 평가하며, 과거 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 세력이 제도 정당으로 탈바꿈했듯 탈레반도 이런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기대를 피력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양 측 모두 양보할 필요가 있느니만큼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을 폈다.
하지만 나스르 교수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 중인 탈레반 지도자 석방 건에 대해서는 "이런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탈레반이 화답해 나올 것이라는 충분한 확신이 오바마 정부에 있어야 한다"면서 "정말로 위험할 수 있다. 관타나모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이슈"라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유럽연합(EU) 외교관 출신으로 가장 권위있는 아프간 전문가 중 하나로 꼽히는 마이클 셈플 하버드대 연구원은 수감자 몇 명을 석방하는 것은 대선이 있는 올해라고 해도 오바마 행정부에게 별 부담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막대한 돈이 드는 아프간전을 끝낸다는 전망은 오바마 행정부에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아직도 탈레반 고위관계자들과 연락을 주고 받는 것으로 알려진 셈플 연구원은 이번 협상의 의미를 평가하면서 최고지도자 물라 오마르 등 탈레반 수뇌부도 미국과의 평화협상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하나의 변수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끄는 반(反) 탈레반 성향의 아프간 정부가 어떤 입장을 보일지도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한 아프간 고위당국자는 모든 평화협상 과정을 아프간 정부가 확고히 통제해야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이미 연락사무소 개설에 카르자이 정부가 동의했다고 <가디언>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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