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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서방 군대가 저지른 실수는 파병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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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서방 군대가 저지른 실수는 파병 그 자체"

英 중동 전문기자 "영국, 미국에 잘 보이려 파병했다가…"

아프가니스탄에 가장 많은 군대를 보낸 나라는 어디일까? 물론 미국이다. 아프간 주둔 미군은 10만 명 규모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내년 여름까지 3만3000명의 병력을 철수시키겠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1위 자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견한 나라는 영국으로 9500명 정도이며 그 다음은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이다. 한국도 아프간 북부 파르완주(州)에 350명 규모의 지역재건팀(PRT) 경호병력을 운용하고 있다.

이같은 외국군의 존재는 아프간을 평화롭게 하기는커녕 혼돈의 땅으로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아프간인들의 외세에 대한 반감은 이미 1980년대 소련군의 발길을 돌리게 만든 바 있다. 한국군도 올해에만 무려 13차례의 로켓포 공격을 당했다. 9월에는 수도 카불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인근에도 로켓포가 떨어졌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중동 특파원 패트릭 콕번은 30일(현지시간) 칼럼을 통해 영국의 아프간과 이라크 파병을 강하게 비판했다. 콕번은 아프간의 반(反)외세 정서를 지적하며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군대를 파견한 제1목적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과시하기 위함이었다고 꼬집었다.

콕번은 오직 영국군 이야기만 하고 있지만 한국의 많은 독자들은 그의 글에서 어렵지 않게 아프간 주둔 한국군의 상황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무장한 외국군 병사를 아프간 촌로가 찡그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군대는 아프간-이라크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

19세기 중국 청나라 관료들은 군대의 거듭되는 패전을 황제에게 알려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곤란한 질문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패전을 승전으로 둔갑시켰다. 영국군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그와 비슷한 짓을 하고 있다. 자기만족적 신화가 만들어졌고, 모든 비난은 이길 수 없는 전장에 몰아넣은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미국을 향했다.

병력 수 부족이나 적절한 장비가 없는데 대한 책임은 장군들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책임이 됐고, 그 결과 순수한 군사적 실패에 대한 인식이 자취를 감췄다. 예를 들어 이라크 침공 4년 후인 지난 2007년에도 바스라에 있는 영국군은 시아파 반군이 도시를 지배하는 동안 외곽의 기지에 틀어박힌 채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영국군은 스스로를 지키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2006년 아프간 헬만드주에서 영국군이 저지른 실수는 더 짧은 기간 내에 이뤄졌다. 군 정보기관은 이 지역으로 진군하는 것의 위험을 과소평가했다. 암살부대는 탈레반을 잡겠다며 현지 주민을 적으로 돌렸고, 그 결과 탈레반의 신병모집 하수인처럼 행동했다. 외국군 점령에 대해 지역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조사되지도 않았다. 그 결과 죽음과 파괴만이 이어졌다.

영국군의 이런 기능 장애 문제는 이미 2003년 지적된 바 있다. 당시 6명의 영국군 헌병이 이라크의 알마자르 알카비르에서 숨졌다. 그곳 주민들은 후세인의 군대와 수십 년간 싸워 온 게릴라 전사들이자 밀수꾼들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영국군은 이 지역을 자유롭게 순찰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저항에 대한 염려 없이 사람들의 무장을 해제하려 했다.

지역민들의 의심이 깊은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왜 자신들을 무장해제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만약 영국과 미국이 이라크를 장기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반 후세인 세력의 무기를 왜 가져가려 하냐는 것이다. 영국군 지휘관은 이 사건을 우발적 사태로 묘사했지만 이는 아프간 및 이라크 전쟁이 영국에게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징후였다.

많은 기자와 외교관, 군인들은 이런 사태를 불러온 오해, 인식 부족, 구조적 실패 등의 요소들에 대해 단편적으로 알고 있다. <작은 패전들 :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영국군이 저지른 실수>의 저자 프랭크 래드위지는 15년 간 해군 정보장교로 근무하며 이라크와 아프간의 군사 문제에서 장기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008년 은퇴한 그는 작전이 어떻게 입안되고 실행되고 평가되는지 지켜봤다.

레드위지가 처음 헬만드에 간 것은 "승리할 수 있는 정당한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브리핑을 들은 그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영국군은 고작 병영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지역만을 통제하고 있으며, 포위당한 기지를 기관총으로 지키고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고 말했다.

이는 영국군이 이라크 바스라의 통제권을 잃었을 때의 상황과 판박이다. 2006~07년 영국군의 마지막 노력이었던 작전명 '신밧드'는 실패했다. 한 병사는 그의 대대가 전투를 거듭하며 도시로 진입해 들어가 미끄럼틀과 그네가 딸린 놀이터를 건설했지만 결국 또다시 전투를 통해 그 도시에서 빠져나와야 했던 과정을 묘사했다. 반군들은 놀이터를 분해하고 미끄럼틀만을 남겨 놓은 다음 철수하는 영국군들에게 로켓포를 쏘기 위한 발사대로 썼다.

현지 상황도 잘 모르면서 헬만드를 침공한 것은 명예 회복을 위한 의도였다. 미국인들의 눈에 영국군의 명성은 금이 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군 정보기관은 헬만드가 매우 위험한 곳이 될 수 있다는 아프간 주재 영국 대사관의 경고도 무시했다.

아프간 주둔 미군과 영국군은 헬만드주에 다수 거주하는 파슈툰족 문화의 핵심이 '외국인에 대한 증오'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한 파키스탄군 대령은 말했다.

레드위지는 아프간을 점령한 외국군의 존재가 이들을 쫓아내기 위한 정치‧군사적 대응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아프간 사회에서 이는 당연한 것이다. 아프간 체류 경험이 있는 한 국제기구 관계자는 "많은 군인들이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한다"면서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란 마을에 5000파운드짜리 폭탄을 떨어뜨리고 집을 습격하며 아내와 딸을 침대에서 끌어내는 것이다. 이는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영국군의 실패에는 또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병력 파견 기간도 너무 짧았고 지휘관들은 파병을 '경력'으로 여길 뿐이다. 경력의 일관성도 없다. 또 과거 인도를 식민지배했을 때 군사력을 최후의 수단으로만 여긴 것과는 달리 영국의 정책은 매우 군사화됐다. 말레이 반도와 북아일랜드의 봉기에 대응한 경험에서 자의적이고 잘못된 교훈들을 배웠기 때문이다. 말레이나 북아일랜드는 이라크나 아프간과는 완전히 다른 곳인데도 말이다.

영국군이 취약한 모습을 모이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영국이 아프간‧이라크전에 병력을 파견한 주된 이유가 '영국이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라는 것을 미국 정부에 과시하려 데 있었다는 것이다. 작전의 성공을 포함한 그 밖의 모든 것은 2차적인 목표일 뿐이었다.

블레어 전 총리나 데이비드 캐머런 현 총리 모두 영국군의 파병은 아프간에 민주적 정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구실을 댔다. 현실은? 아프간 정부의 대표자들은 도둑질, 부패, 타락에 물든 군벌들이며, 아프간 경찰은 돈을 훔치고 마약을 상용하며 자신들의 검문소를 지나가는 젊은 남녀를 강간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영국군이 헬만드에 도착한지 4년 후, 그 지역의 한 농부는 이렇게 말했다. "탈레반은 우리에게 빵을 줄 베이커리 하나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탈레반을 지지한다. 그 이유는 외국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나쁜 대우와 야간 공습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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