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Left After 2011)
'좌파'를 어떻게 정의하건 2011년은 어쨌든 세계 좌파(world left)들에게 좋은 해였다. 기본적으로는 세계를 괴롭히고 있는 부정적인 경제 조건 때문이다. 실업률은 높았고 지금도 높아지고 있다. 많은 나라의 정부가 높은 부채를 안게 됐고 세수는 줄어들었다. 그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국민들에 대한 긴축 조치였고 동시에 은행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월스트리트 점령'(OWS) 운동이 '99%'라고 부르는 이들의 전세계적 저항이었다. 저항은 극심한 부(富)의 양극화와 부패한 정부, 또 다당제를 갖췄든 그렇지 않든 정부의 본질적인 비민주성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OWS나 '아랍의 봄', 스페인의 '분노하라' 시위대는 바라는 모든 것을 성취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적인 담론을 신자유주의가 설파하는 이데올로기적 주문(呪文)에서 불평등과 부정의, 탈식민주의 같은 주제들로 변화시켰다. 참으로 오랜만에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체제의 속성에 대해 토론했다. 그들은 더 이상 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는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참으로 오랜만에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체제의 속성에 대해 토론"하게 됐다는 점을 들었다. ⓒ김지연 |
지금 세계 좌파들의 숙제는 어떻게 전진할 것인가, 처음이었던 담론상의 성공을 어떻게 정치적 전환으로 바꿀 것인가 등이다. 질문은 매우 단순해질 수 있다. 즉, 경제적 조건으로 볼 때 아주 작은 집단(1%)과 아주 큰 집단(99%) 사이에 명백하고 점증하는 균열이 있는데, 이게 곧 정치적 균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도 우파 세력이 여전히 세계 인구의 반, 또는 최소한 정치적으로 활동적인 세력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세계의 좌파들에게 전례없는 수준의 정치적 단결이 필요하다. 사실 좌파 내에는 장기적 목표와 단기적 전술 모두에서 심각한 불일치가 존재한다. 이런 이슈들이 토론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격렬히 토론됐다. 그러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진전은 거의 없었다.
이런 분열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풀기 쉬운 문제도 아니다. 좌파 내에는 두 가지 커다란 대립이 있다. 첫째, 선거에 대한 것이다. 선거에 대해서는 두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선거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가지는 그룹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효과가 없을 뿐더러 현존하는 세계 체제의 정당성만 강화시켜 줄 뿐이라고 주장한다.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룹도 둘로 나뉜다. 그 중 한 갈래는 실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내부에서부터 시작하기를 원한다. 다당제 시스템에서는 주류 중도좌파 정당 내에서, 의회에서의 정권 교체가 허용되지 않을 경우는 사실상의 단일 정당 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차악'을 선택하는 이런 노선을 비판하는 갈래도 있다. 이들은 주요한 대안 정당들은 별 차이가 없으며 '선명한'(genuinely) 좌파 정당에 투표할 것을 지지한다.
우리 모두는 이런 논쟁에 친숙하며 세 가지 주장을 듣고 또 들어 왔다. 그러나 이 세 그룹이 선거 전술에 대해 단합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세계 좌파들이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우세를 점할 기회는 많지 않으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명백해 보인다.
필자는 조화를 이루는 방식이 있다고 믿는다. 단기적 전술과 장기적 전략을 구분하는 것이다. 필자는 국가 권력을 잡는 것이 세계체제의 장기적 전환과는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전환의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데에 매우 동의한다. 국가 권력 장악은 전환의 전략으로 여러 번 시도됐지만 실패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기적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시간낭비라고만 할 수는 없다. '99%' 중 매우 많은 사람들이 당장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이것이 그들의 주된 근심거리다. 그들은 살아 남으려고, 또 가족과 친구들을 살아남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만약 정부를 사회 변화를 이끌 잠재적 집행자가 아니라 즉각적인 정책 결정을 통해 단기적인 고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하나의 '구조'로 생각한다면, 세계 좌파들은 그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의무적으로 해야한다.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선거 참여가 요구된다. 그렇다면 '차악'을 선택할 것이냐 선명 좌파정당을 지지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어떨까? 이는 각 나라별 전술에 따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선택은 국가의 크기, 공식적인 정치 구조, 인구 구성, 지정학적 위치, 정치의 역사 등 많은 요소들에 따라 달라진다. 모범 답안은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 2012년의 답이 2014년 혹은 2016년의 답이 될 수도 없다. 이는 적어도 필자에게는 원칙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각국의 변화하는 전술적 상황에 대한 문제다.
세계 좌파의 두번째 대립 지점은 이른바 '발전주의'(developmentalism)를 택하느냐, 아니면 문명적 변화를 우선시하느냐에 대한 입장의 차이다. 우리는 이런 토론을 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예를 들어 볼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등지에서는 좌파 정부와 원주민 운동 사이에 열띤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북아메리카와 유럽에서는 고용을 유지·확장하는 데에 우선순위를 두는 노동조합과 환경론자·녹색주의자들 사이에서 토론이 벌어진다.
좌파 정부건 노동조합이건 '발전주의적' 주장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일정한 경제적 성장이 없다면 국가 내의 양극화나 국가 간 양극화 등 오늘날 세계의 경제적 불균형을 교정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그룹은 좌파 내 반대파에 대해 의도적으로 또는 최소한 사실상으로 우파들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비난한다.
반면 반(反)발전주의적 대안의 지지자들은 경제 성장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두 가지 이유로 틀렸다고 말한다. 발전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나쁜 특성들이 계속되게 하는 정책이며, 생태적·사회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들 간의 분열은 선거 참여에 대한 것보다 더욱 격렬하다. 유일한 해결 방법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대처한다는 기본 원칙을 가지고 타협을 통해 풀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양자 모두가 다른 한 쪽의 신념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좌파들 간의 이런 분열이 5~10년 내로 극복될 수 있을까? 확실치 않다. 하지만 분열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졌을 때(이는 확실하다) 그 다음의 체제를 놓고 벌어질 20~40년 동안의 싸움에서 세계 좌파들이 승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월러스틴의 '논평'>은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매달 1일과 15일 발표하는 국제문제 칼럼을 전문번역한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글을 배급하는 <에이전스글로벌>과 협약을 맺고 월러스틴 교수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월 1일 논평 원문보기) * 저작권 관련 알림: 이 글의 저작권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에게 있으며, 배포권은 <에이전스 글로벌>에 있습니다. 번역과 비영리사이트 게재 등에 필요한 권리와 승인을 받으려면 rights@agenceglobal.com으로 연락하십시오. 승인을 받으면 다운로드하거나 전자 문서로 전달하거나 이메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단 글을 수정해서는 안 되며 저작권 표시를 해야 합니다. 저자의 연락처는 immanuel.wallerstein@yale.edu입니다. 월러스틴은 매월 2회 발행되는 논평을 통해 당대의 국제 문제를 단기적인 시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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