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런 말 한다고 내가 나치는 아니잖아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런 말 한다고 내가 나치는 아니잖아요!"

[정치경영연구소 유럽르포]<6> 독일의 '외국인 연쇄 살인' 배후엔…

'정치경영연구소의 유럽르포'는 우리 시민들로 하여금 유럽의 정치사회와 경제사회에 친밀감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연재물입니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해방 후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로 미국 편향적인 모델을 지향해왔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시점에 즈음하여 우리 시민들도 이제 새로운 모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것이 그 증거입니다.

경쟁과 성장 그리고 효율성의 가치만을 강요해온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연대와 분배 그리고 형평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경영연구소는 우리 시민들이 이제 미국이 아닌 유럽사회를 유심히 관찰해보길 원합니다. 특히 유럽의 합의제 민주주의와 조정시장경제가 어떻게 그곳 시민들의 삶을 그토록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길 바랍니다.

'유럽르포'의 작성자들은 현재 유럽의 여러 대학원에 유학 중인 정치경영연구소의 객원 연구원들입니다. 투철한 문제의식으로 유럽을 배우러 간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고하는 생생한 현지의 일상 생활을 <프레시안>의 글을 통해 경험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유러피언 드림'을 같이 꾸길 염원합니다. 필자 주

과거에 대한 반성과 일상의 극우화 사이에서

2012년 2월 23일, 네오나치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위한 추도식에서 메르켈 총리가 애도사를 읽어 내려간다. '부끄러움', '독일국민의 수치'와 같은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이는 네오나치에 의해 자행된 연쇄살인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후 발표된 의회의 공식 성명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츠비카우(독일 작센주의 도시) 3인조 테러단'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3명의 극우주의자들은 독일에 거주하는 터키인 8명과 그리스인 1명, 그리고 경찰관 1명을 치밀한 계획을 세워 살해했다. 희생된 이들의 대부분은 수십 년간 독일에서 생활기반을 닦은 외국인 자영업자들이었다.

독일 전역을 무대로 6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일어난 살인사건이라고는 하지만 범행 수법이 유사하다는 점과 경찰관 1명을 제외한 희생자가 모두 외국인 자영업자라는 점을 고려할 때 수사당국은 사건들 간의 연계 가능성에 주목했어야 했다. 이 사건은 독일의 한 주요 방송사가 미해결 범죄사건을 재구성해 보여주고 시청자들의 제보를 기대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한 TV 프로그램에서도 다루어졌다. 여기에서 극우주의자 및 극우단체의 범행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재수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11년 11월, '츠비카우 3인조 테러단'의 경찰관 살해사건을 계기로 수사망이 좁혀 들어오자 용의자 3명 중 2명은 주거용 캠핑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나머지 1명은 범행과 관련된 증거물을 없애기 위해 자신이 살던 집을 폭파시켰다. 이 두 사건은 겉으로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였지만 사망한 두 남자와 폭파된 집에 세 들어 살던 여자의 인적 사항이 확인되면서 그 연관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 독일연방형사청이 배포한 '츠비카우 3인조 테러단' 수배전단지. 사진 왼쪽과 중앙은 자살한 두 용의자, 맨 오른쪽의 여자 용의자는 2013년 4월 재판을 앞두고 있다. ⓒpfalz-express.de

3인조 테러단은 튀링겐(독일 중부에 있는 구(舊) 동독지역의 주)의 헌법수호지방청(Verfassungsschutz)에는 이미 잘 알려진 인물들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이들이 종전부터 다양한 극우 비밀지하단체에서 활동해왔음이 밝혀졌다. 또 그들의 범행을 적극 지원해 온 배후 세력 가운데에는 합법적인 정당으로 두 곳의 지방의회에까지 진출한 극우 민족민주당(Nation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이하 약칭 NPD)의 당원들도 포함돼 있었다.

2차대전 이후 다양한 제도정당 내에 흩어져 있던 극우세력들은 1964년에 공동의 극우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정치를 펼치겠다는 목표 아래 극우 민족민주당(NPD)을 창당했다. 전후 독일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침체국면으로 접어들면서 60년대 신좌파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에 대항하여 극우세력이 결집한 것이다. 그러나 창당 이후 당내 다양한 스펙트럼 사이에 주도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이 첨예화 되면서 NPD는 정치무대에서 급속히 영향력을 상실했다. 그러다가 통독 직후 90년대부터 심화된 동서 간 격차를 계기로 다시 세를 얻기 시작했다. 이들은 민족적 인종적 동질성을 핵심으로 하는 자민족 우선주의 이데올로기에 입각해 난민법(Asylrecht) 철폐, 독일에 거주하는 외국인 추방, 독일의 나토 및 유럽연합으로부터의 탈퇴, 독일 마르크 화의 재도입(유로화 권에서의 탈퇴) 등을 구체적 정치목표로 내세운다. 현재, 유럽의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 힘입어 그들의 선동 정치가 미약하나마 순풍을 타고 있다.

NPD는 극우폭력주의에서 민족적 사회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당내 분파를 아우를 내부적 과제를 안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당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당의 민주적 정당성을 끊임없이 입증해야만 할 처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적 정치체제 내에서 허용되지 않는 폭력적 수단을 선호하는 NPD 내 분파는 지하조직으로 숨어들어 외국인에 대한 방화와 살인과 같은 테러를 저질러 왔다. NPD는 그때마다 당의 존립을 위해 극우 지하조직과의 연계가능성을 전면부인해왔다. 그러나 극우적 동기에 따는 범죄전과가 있는 자가 NPD 당내 중책을 역임하거나 지방 및 연방의회 선거에 출마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극우 범죄사건이 터질 때마다 NPD인사가 수사망에 놓이고 그에 따라 당의 적법성 여부가 거론되곤 한다. 그러면 NPD는 선수를 치는 격으로 NPD가 헌법정신을 존중하는 민주적 정당이라는 점을 보증 받고자 헌번재판소에 여러 차례 보증청원서를 제출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이 연쇄살인에 직간접으로 연계된 극우주의자 만해도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사건에 개입된 이들의 인적사항이 밝혀지면서 테러사건에 연루된 NPD 인사가 적지 않게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극우 지하조직과 극우정당 간의 연계에 대한 구체적 수사결과는 조만간 열릴(2013년 4월) 1차 공판의 진행을 기다려 봐야 할 것이다.

극우단체에 대한 제도적 감시와 그 실패, 극우 정당금지가 최상의 해결책인가?

이 테러사건을 계기로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 '헌법수호 연방청 (Bundesamt für Verfassungsschutz -BfV)' 은 독일의 3대 정보기관 중의 하나로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해치는 반사회적 행위를 감시할 임무를 맡는다.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헌법수호 연방청은 감찰대상 조직의 내부 인사를 정보원으로 활용해 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사과정에 따르면 극우진영의 정보원들은 헌법수호청의 감시임무에 협조하는 척하며 돈만 챙겼을 뿐이지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함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돈을 주고 정보를 사들이는 방식은 정보원의 자율적 의지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고, 그들이 임의로 털어놓는 거짓 정보들은 극우조직에 대한 상황파악을 더 어렵게 만들기까지 했다.

2003년에는 입수된 정보를 토대로 정부 차원에서 극우적 민족민주당(NPD)의 활동을 법적으로 금지하기 위한 헌법소원을 냈지만 해당 정보의 신빙성 문제로 좌절되었다. 내부 정보원이 제공한 정보가 사실에 부합하는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재판소 판사들의 기각 사유였다. 극우정당을 불법화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몇 년 동안 잊혔던 문제가 다시 여론의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것은 충격적인 외국인 연쇄 살인사건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사건의 전모와 함께 감시기관과 수사기관의 조직 및 활동상의 문제점이 수개월에 걸친 조사와 의회 차원의 수사청문회를 통해 속속들이 드러났다. 수사상의 문제점과 실수의 책임 소재가 밝혀짐에 따라 해당 조직의 수장들은 책임을 지고 사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대다수 국민의 여론에 힘입어 정치권에서는 2003년에 1차로 제기하였다가 실패한 'NPD금지 헌법소원'을 다시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지난 2012년 12월 3일, 독일 16개 주 정부의 내무장관들이 모여 NPD금지 법제화 2차 추진에 합의했고, 이어 12월 14일에는 독일 상원에서도 이에 대한 찬성안이 통과되었다. 이 헌법소원을 추진하는 정치인들은 헌법재판소에 제출할 증거자료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문제가 해당 조직의 내부 인사를 정보원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포기하고 공개적으로 확보된 NPD 관련 자료를 통해 이 정당의 반민주적 성격을 입증하는데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2013년 연초에 메르켈 총리를 주축으로 하는 연방정부는 상원의 NPD금지 헌법소원 추진에 동참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금지 하지 않고 그냥 두어도 정당 내 재정운영의 불투명성 때문에 큰 재정위기에 처한 NPD가 이번 계기로 약화될 거라는 낙관적 전망이 있다. 하지만 이번 헌법소원으로 여론의 관심이 모아지면 올해 9월에 있을 총선에서 극우파의 득세에 불을 지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기도 하다.

독일에서 극우파 민족민주당의 활동을 금지시키려는 1차와 2차 헌법소원 추진은 그 진행과정에서 유사성을 보여준다. 1차는 구(舊) 소련에서 독일로 이주한 유대인 9명이 NPD 동조자로 추정되는 극우주의자들이 설치한 폭발물에 희생된 사건이 계기였고, 2차는 앞에서 본 9명의 외국인이 살해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독일의 정치 지도자들은 사회 곳곳에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극우 폭력 및 테러사건에 무관심하다가 여러 명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연방 차원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헌법소원을 통해 극우정당을 불법화하려는 시도가 독일사회 내 극우파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일 수 있을까?

일상으로 파고드는 극우의 풀뿌리전략

독일에서는 해마다 돌아오는 노동절, 통독기념일 등에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시위를 벌이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는데, 네오나치도 여기에 빠지지 않고 세를 과시하며 시가행진을 벌이고 있다. 네오나치의 시위가 허가되었다는 정보가 입수되면 반(反)파시스트 사회단체와 좌파운동단체, 노조, 그리고 사민당과 녹색당 당원들까지 참여하는 반(反)나치 시위대가 조직된다. 이때 경찰은 두 진영의 중간에 자리 잡아 두 진영의 충돌을 방지하려 한다. 경찰을 가운데에 두고 네오나치 세력과 반나치 세력이 기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벌어진 이런 종류의 시위에서는 수적으로 열세인 네오나치들에게 수적으로 우세한 반나치 시위대와 이에 동조하는 시민들이 각종 소음도구를 동원해 야유를 퍼붓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시위장면은 여러 매체를 통해 전파되어 독일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는데 이는 한편으로 건강한 시민사회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시위대 간의 대치라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다수의 반나치 세력이 네오나치들에게 충분히 모멸감을 주었다. 또한 그들을 사회적으로 격리시켰다는 식의 섣부른 낙관론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극우세력을 반민주적이며 시대착오적인 무식한 소인배 정도로 낙인찍어 평가절하해 버리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네오나치의 사회적응 양태를 더 이상 진지하게 다루지 않게 될 위험이 있다.

독일 내 극우 세력은 더 이상 빡빡머리와 검은 군화라는 상징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되지도 않아 원조 나치들은 나치정권 당시 청소년연맹을 대표했던 '히틀러 유겐트'가 금지되고 난 직후에 '독일소녀동맹(Bund Deutscher Mädel)', '애향 청소년 동맹(Bund Heimattreuer Jugend)'과 같은 조직을 결성해 후세 양성에 착수했다. 최근까지 독일에는 지역별로 여러 개의 네오나치 후세대 교육을 위한 조직이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독일애향청소년단(Heimattreue Deutsche Jugend)'이다. 여기에서는 정기적으로 특별 캠프를 열어 7세∼29세의 단원들을 대상으로 이데올로기 교육을 실시하고 무력투쟁에 대비하여 체력도 단련시킨다. 미온적 감시 이외에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던 독일정부는 네오나치의 후세대 교육이 노골적으로 군사적 성격을 띠기 시작하고 나서야 이 조직의 활동을 법적으로 금지시켰다.

최근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약 3만 명 정도가 극우파 진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들 중 대다수는 여러 자녀를 두고 있으며 같은 극우 성향 지지자들과 함께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적지 않은 수의 네오나치들이 비교적 집값이 싸고, 외국인 거주 비율이 낮아 반파시스트 사회운동이 활발하지 않은 구 동독지역에 공동주거지역을 마련하는 추세이다.

NPD는 독일의 총 16개 주 가운데 2곳(Mecklenburg-Vorpommern 와 Sachsen) 의 지방의회에서 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독일 전역에 걸쳐 250여 개 지역자치체에 진출한 상태이다. 이를 두고 사회민주당(SPD)의 지도자 중 한명인 프란츠 뮌터페링은 "NPD 당선의 책임은 전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있다. 누구도 반발 심리에서 극우주의자를 뽑을 권리는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NPD가 정치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게 그야말로 기존 정치에 대한 염증이나 반발심리 때문인가?

2003년, NPD는 지역자치체에서 중앙정치체로 진출한다는 정치적 목표 아래 지역자치체에 선출된 당 소속의원들을 선도할 당 전략을 내놓았다. 이는 최소단위인 지역자치체로부터 출발하여 지방의회, 나아가 연방중앙의회까지 단계적으로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는 소위 '풀뿌리전략(Graswurzelstrategie)'으로 불리는데, 시민의 일상생활과 직접 맞닿아있는 지역사회 내의 교육, 문화, 스포츠 분야에서 무보수로 봉사하는 방식 등을 통해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는 것을 1차 목표로 한다. 지역축구회에서 아이들에게 축구기술을 가르쳐주는 친절한 코치선생의 몇 마디 말을 통해서도 극우 이데올로기는 일상으로 파고들 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런 말 한다고 내가 나치인 건 아니잖아요!"

독일 사회 곳곳에서 특히 구 동독의 중소도시에서 난민과 이민자에 대한 폭행사건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독일 내무부의 집계에 의하면 소위 극우적 동기에서 발생한 폭력사건만 해도 1년에 1000여 건에 달한다.

최근 뮌헨 지하철역의 정보스크린에 등장한 공익광고가 눈길을 끈다. 장소는 뮌헨의 명소인 영국공원. 화창한 날씨 아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며 흥취를 즐기고 있는데 피부색이 까무잡잡한 남자가 사람들 사이를 급히 지나가다가 앉아 있던 한 여자를 살짝 건드렸고, 이에 사과하는 뜻에서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바로 그 순간 그녀의 동행으로 보이는 남자가 벌떡 일어나 그 남자의 멱살을 잡고선 바로 주먹을 뻗는다. 각자의 흥취에 빠져 있던 다수의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두 남자에게로 쏠리고 여기서 화면은 정지된다.

▲ 공익광고 "뮌헨은 주시한다" 중 한 장면 ⓒpi-news.net

독일은 경제적으로 강력한 수출국의 지위를 꾸준히 유지하고, 정치적으로도 국제 사회와 유럽연합 내에서 주도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국제적 위상에 따른 자부심과는 별도로 독일 사회 내부에서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빈곤층이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철이 되면 기민련 소속의 일부 보수파 정치인들까지도 표를 얻기 위해 민족주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발언은 사회에 잠재해 있던 반외국인 정서에 불을 당겨 '복지국가를 축내는 놈팡이', 또는 '독일의 안보를 위협하는 배은망덕한 테러리스트' 등의 외국인에 대한 편견적 이미지가 표면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2010년에는 사회민주당 출신으로 오랫동안 베를린 시 정부의 재정위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던 틸로 사라친이라는 인물이 독일 내 이민자 문제를 다룬 저서로 몇 달 동안 독일 내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그는 경제전문가답게 소위 객관적이라는 통계를 근거로 이민자 집단을 '독일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부류'와 '복지 예산만 갉아먹고 독일사회에 동화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부류'로 나누었다. 그리고 인구학적으로 볼 때 후자에 속하는 집단이 대가족을 이루는 경향이 강하므로 결과적으로 "독일사회가 점차 퇴보하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의 저서는 부분적으로 생물학적 인종주의를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정도로 선정성이 심해 사민당 내부에서 제명 요구가 나올 정도였다. 무수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를 둘러싼 논의가 몇 달이 지나도록 언론에서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 그의 테제가 독일 사회의 뇌관을 건드린 것은 분명하다.

사라친이 불러온 사회적 파장은 내 이웃 사람들 사이에서도 활발한 대화거리가 되었다. 대부분은 사라친의 소위 인구학적 관점에서 본 독일사회 후퇴론이나 그의 이민자 집단 분류방식이 지나치게 배타적이라 문제가 있다는 데 동의하는 듯했다. 빙 둘러앉은 이웃 가운데 한 사람이 주제를 돌리듯 말문을 열었다. 그는 관청에 일을 보러 가 담당자의 사무실을 찾으려고 건물 입구에 붙은 공무원의 이름과 방 번호를 훑어 보았다고 했다. 약간 높아진 목소리 톤으로 그는 "아니 어찌 된 게 독일사람 이름을 찾기가 그리 어려워. 읽기도 어려운 외국이름 투성이더라구"라고 내뱉듯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수군수군하기 시작하더니 하나둘 거들 듯 의견을 내놓았다. "사실, 외국인이 너무 많기는 해. 거리 청소부도 거의 외국인들이잖아. 아니 왜 독일까지 와서 거리청소를 하나, 제 나라를 깨끗이 하며 먹고 사는 게 떳떳하고 더 낫지 않나", "터키인들은 육아보조금을 타 먹으려고 애들도 많이 낳잖아" 등등. 이런저런 인상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로의 의견에 수긍하던 사람들이 뒤늦게 내 존재를 알아차리고선 멋쩍어하며 주워섬겼다. "우리가 못마땅해하는 외국인 범주에 너는 속하지 않으니까 괜스레 오해하지는 말아." "그럼, 그럼! 독일에서 수학하는 외국학생들은 독일문화를 세계에 전파할 존재들이고 고급인력수급 면에서도 득이 되면 득이 됐지." 표정관리를 하는 게 쉽지 않은 순간이다.

전후의 독일 사회는 자국의 현대사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와 반성 작업을 통해 국제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주력하였고, 국내 정치의 극단화 경향을 감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운영해왔다.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민족전선(Front National)이나 오스트리아의 극우 자유당(Freiheitliche Partei Österreichs) 정도로 극우 세력이 독일의 정치 영역에서 기반을 다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일 사회에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빈곤층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자민족을 우선시하는 경제주의, 복지주의, 문화주의가 힘을 얻을 낌새를 보이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전통적 의미의 좌-우파 구도가 약화되고 거의 모든 정당이 성장위주의 경제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경제적 주변인에 속하는 다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정치권에서 지원세력을 얻는 게 더욱 어려워졌다.

게다가 2007년에 채택된 기민련(CDU/CSU)과 자유민주당(FDP) 간의 연정 합의서는 극우파와 극좌파 그리고 이슬람근본주의 단체에 대한 감시와 통제 정책을 한 데 묶어 '극단주의(Extremismus) 방지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제시하였는데, 그로 인해 극우세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 투입되던 재정의 규모가 대폭으로 줄어들었다.

외국인의 입지를 둘러싼 사회구조와 제도에 대한 근본적 고찰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네오나치를 상징적으로 퇴출시키는 방식으로만 진행되고 있는 독일사회의 반나치운동은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성급한 '정당금지론'으로 귀결되고 만다. 2013년으로 예정된 'NPD 금지 법제화를 위한 헌법소원'의 성공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최종 판결은 헌법재판소 판사들의 결정에 달려 있고 독일 국내 차원에서 금지 판결이 날 경우에도 NPD가 이 사안을 유럽연합재판소에 제소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NPD는 정당금지령에 대비해 이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고 이미 공언한 바 있다. 유럽연합법에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위협하는 정당이 해당 국가의 정권획득에 성공할 위험이 있을 경우에만 정당 금지 조처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NPD 금지는 유럽연합의 차원에서 뒤집어질 수도 있다. "NPD 활동이 법적으로 금지될 경우에 어떻게 대응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NPD 활동가는 이렇게 답하였다. "정치인들이 우리 정당을 불법화하려고 열 번이고 시도한다면, 우리는 열한 번이라도 다시 일어나 우리의 사명을 다할 것이다"라고.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