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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적인 기독교에 깨달음을"…어느 10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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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적인 기독교에 깨달음을"…어느 10대의 죽음

[내 혼은 꽃비 되어·①] 10년 흘렀건만…학교는 여전히 '아비규환'

2003년 4월, 청소년 성 소수자 육우당이 '아비규환 같은 세상이 싫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0년이 지났다. 성 소수자 유명인들이 공중파 방송에서 게이 토크를 하고, 동성애를 소재로 한 드라마도 몇 편 방영됐다. 동성애가 하나의 문화 코드로는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동성애 이해해'라는 관용적인 발언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문화 코드가 형성됐다고 해서, 또 동성애를 '관용'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해서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란 단어를 학생인권조례와 차별금지법에서 통으로 오려내고 싶어 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하나님과 성경'의 이름으로 행하는 바, 두려울 것이 없는 이들은 거침없이 실명을 드러내며 전국적인 차별금지법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역시 '조례를 수정하지 않으면 학교에 동성애가 확산된다'는 흑색선전으로 또다시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프레시안>은 육우당 10주기를 맞아, 청소년 성 소수자와 학생인권조례, 그리고 보수 기독교계와 차별금지법을 다룬 기획을
마련했다. 육우당이 살았던 때에 비해 2013년 한국의 청소년 성 소수자들은 조금은 더 안전한 학교에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국제 사회가 수차례 제정을 권고한 차별금지법을 그토록 반대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무엇을 위해 '동성애에 맞선 전쟁'을 선포했을까. <편집자>

술, 담배, 수면제, 파운데이션, 녹차, 묵주. 그에게는 이렇게 여섯 가지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육우당(六友堂)'이라 불렀다. 글쓰기를 좋아했고, 또 잘 썼다.

"난 내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른손잡이가 있으면 왼손잡이가 있는 것이고, 이런 길이 있으면 저런 길도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가장 많이 다니는 길'을 걷는다면, 난 단지 '인적이 드문 길'을 걷고 있는 것뿐이다." (2002.10.8 육우당이 쓴 일기)

"내 혼은 꽃비 되어 당신 곁에 내리는데 / 당신은 이런 나를 못 느끼고 계시군요. / 임이여! 내 속삭임에 귀 기울여 보아요." (육우당의 시 <환생>)

육우당은 성 소수자라는 사실이 학교에 알려진 후 따돌림을 당한 끝에 2002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학교를 그만뒀다. 그러다 2003년 3월,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상근 활동을 시작했다. 어른들은 경악할 학교 울타리 밖 활동이었지만, 그는 당당했고 쾌활했다.

일기와 시에 꾹꾹 눌러 담곤 했던 담대한 용기는 그해 4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성 소수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내던진 저주 섞인 성명 앞에서 중심을 잃고 흐트러졌다.

당시 한기총은 청소년보호법에서 동성애자 차별 조항을 삭제하란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동성애는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심판해야 한다"고 했고, "동성애는 창조 질서에 도전하고 에이즈를 퍼뜨린다"고 했다. 이에 발맞춰 <국민일보> 등은 동성애에 대한 혐오 정서를 부추기는 기사를 연이어 쏟아내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묵주를 항상 가방에 넣어 다닐 만큼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육우당은 끝없는 절망을 느꼈다. 그는 그해 4월 25일 자주색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채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향년 19세.

6장에 달하는 유서에 그는 썼다.

"홀가분해요. 죽은 뒤엔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 '◯◯◯는 동성애자다'라고요."

"내 한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 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죽은 게 아깝지 않다고 봐요."

이렇게 육우당은 청소년 성 소수자 인권 운동의 상징이 됐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매년 이맘때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어 왔다. 올해는 10주기다. 22일 '내 혼은 꽃비 되어 무지개 봄꽃을 피우네'란 이름의 육우당 추모 주간이 시작된다.

▲ 육우당 추모집 <내 혼은 꽃비 되어>의 표지 그림. ⓒ동성애자인권연대 제공

10년 흘렀건만…학교는 여전히 '아비규환'

10년은 제법 긴 시간이다. 10년 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웠을 퀴어 조크(queer joke, 동성애 농담)가 공중파 방송에서 버젓이 나오고,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들에게 관련 정책을 공개 질의하는 성 소수자 단체도 생겨났다. "우리, 여기 있다"는 성 소수자들의 질긴 외침은 더디긴 하지만 미약하게나마 사회 변화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그 후광을 가장 적게, 그리고 느리게 받는 쪽은 청소년 성 소수자다. 다소 달라졌다고는 하나, 성 소수자에 대한 광범위한 혐오 인식은 그대로인데다, 청소년은 생활 전 분야에 걸쳐 당연히 성인의 지배·간섭을 받아야 하는 종속적인 존재라는 인식도 달라진 게 없다. 이중의 낙인 속에 서 있다는 얘기다.

특히 성 소수자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낮은 한국의 교육 현장은, 육우당이 빗댔던 것처럼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편견과 몰이해로 가득한 발언을 농담처럼 쉽게 하는 교사들부터,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학생에게 '그러다 지옥 간다'고 진지하게 조언하는 교사들까지. 그리고 그런 사회와 학교에서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적 인식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또래 친구들의 아웃팅(당사자의 뜻과 상관없이 성 정체성이 드러나게 하는 것)과 따돌림 등은 청소년 성 소수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아울러 성 소수자에 대한 이와 같은 편견과 차별은, 곧 전통적인 여성성 또는 남성성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는 10대들에게도 연쇄적으로 가해진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여기서 성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학교 현장에서 '게이'라는 표현은 '이상하다'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다른 남학생들에 비해 체구가 작고 말랐었다는 대학생 ㄷ씨는 "내가 게이라는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음에도, 게이라는 놀림과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당했다"라며 "진짜 게이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현재 고등학생 3학년인 ㄹ씨는 "얼굴에 여드름이 많고 수줍음이 많은 편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그래서인지 항상 놀림의 대상이 된다. 어느 날 학교에 가보니 사물함에 넣어둔 교과서에 누군가 전부 '나는 게이'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짧은 머리를 하거나 치마가 아닌 교복 바지를 입은 여학생은 선도의 대상이 된다고 말하는 10대들도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인 ㅁ씨는 "숏커트(짧은) 머리를 하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러서 '반항하는 거냐'고 따져 물었다"며 "옆자리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조롱하듯 웃으며 '제 레즈래요'라고 말해 당황했다"고 말했다.

문용린, 또 다른 '육우당' 만들 셈인가?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성적 지향에 따른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임신·출산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 등의 조항이 담긴 학생인권조례가 최근 1~2년 사이 경기도·광주시·서울시교육청에서 잇따라 공포됨으로써 청소년 성 소수자들의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이게 될 것이라 기대가 생겼다.

국제 사회도 반겼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중동아주국의 메걸리 대표는 지난해 1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공식 서한을 서울시의회 허광태 당시 의장과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이대영 서울시교육청 당시 부교육감에게 보냈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는 아직 현장에 제대로 뿌리내리고 있지 못하다. 한국 근대 교육의 역사에서 좀처럼 존재한 적이 없었던 '학생 인권'이란 가치가, 조례 하나로 현장에서 싹틀 거란 기대는 애초부터 금물이긴 했다. 다른 지역도 이런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표적인 쪽은 아무래도 문용린 교육감의 서울시교육청이다.

지난달 27일 취임 100일을 맞은 문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지속해서 표명해 왔다. 표면적인 이유는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학생 생활 지도가 어렵게 됐다는 점이었지만, 그와 함께 '성적 지향'과 '임신·출산'에 관련된 문구를 삭제하겠다는 의사도 문 교육감은 숨기지 않아 왔다. 문 교육감은 지난해 12월 서울시의회 정책 질의에서 "성 정체성 조항은 (학생인권)조례에는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연내 의회 통과를 목표로 한다던 교육청 측의 조례 수정안이 이미 완성돼 돌아다니고 있다는 소문도 퍼지고 있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은 15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이처럼 밝히며 "조례 제정권은 100퍼센트 의회에 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육의원은 "선거 과정에서는 진보·보수를 아우르겠다고 공언하신 분(문용린 교육감)이 이제 와 동성애 혐오 정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보수 진영 논리에 이끌려 학교에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 소수자 단체 등 시민·사회 진영의 비판도 거세다.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덕현(30) 씨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성적 지향' 문구는 조례 찬성 측과 반대 측의 협상 도구가 돼 왔다"며 "이를 뚫고 어렵게 포함된 성적 지향 문구가 조례에서 삭제된다면, 이는 '있던 것을 삭제했다'는 의미에서 더 큰 차별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 소수자들은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아주 일차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학생인권조례에 '성적 지향에 따라 차별받지 않을 권리'라는 문항이 적혀 있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도 풀이했다.

"동성애는 정신병"이라 거침없이 말하는 교사들

지난해 7월부터 8월까지 '성 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 행동'이 20세 미만 청소년 성 소수자 22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학교에서 성적 지향 또는 성별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이 '매우 심하다' 또는 '심하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120명(54.3퍼센트)으로 절반을 넘었다. '차별이 없다'고 답한 청소년은 3.6퍼센트에 불과했다.

자신이 겪어본 괴롭힘의 종류(복수 응답)로는 응답자의 61.5퍼센트(136명)가 학생들의 편견에 치우친 비하 발언을 꼽았고, 39.8퍼센트(88명)가 교사의 편견에 치우친 비하 발언을 들었다. 이 외에도 아웃팅이 29.4퍼센트(65명), 동의 없이 신체를 만지거나 희롱하는 일이 5.4퍼센트(12명)를 차지했다.

주관식 문항에 적힌 차별 사례들을 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더욱 체감할 수 있다.

서울 지역 A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 ㄱ씨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콘돔이 여성을 해방시켰다'고 한참 얘기하다가, 갑자기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레즈라고 하나? 동성애자? 지들끼리 사랑해서 무슨 정자 은행 가가지고 애 하나 낳거나, 무슨 예쁘장한 애 입양해서 산다느니 꿈도 꾸지 마라. 그 애가 얼마나 불쌍하냐. 저는 엄마도 여자고 아빠도 여자예요는 좀 웃기잖아?"라더니 마구 웃었다고 전했다.

고등학생 ㄴ씨는 "비디오 하나 틀어주는 걸로 성교육을 대신하던 선생님이, 게이는 더럽다고 했다. 심지어 내가 성 소수자라는 걸 학년 전체에 소문내서 며칠간 전화나 문자로 친구들에게 테러를 당했다"고 밝혔다.

그 외에도 설문에 응답한 청소년들은 '동성애는 정신병이다', '미친 거다. 너희 중에는 그런 사람 없지?', '에이즈 발병 원인은 동성 간 성관계', '이상한 애들은 알고 보면 꼭 게이더라' 등의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발언을 하는 교사를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청소년 성 소수자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를 하거나, 심한 경우 자살로 내몰리는 안타까운 상황 한가운데에는 교사들이 있다. 성 소수자에 대한 몰이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런 발언들은 10대 문화에 그대로 녹아든다. 성 소수자 친구를 '비정상'으로 낙인찍고 학교 폭력의 '당연한' 피해자로 만드는 적대 논리들을 교사들이 직접 나서 공급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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