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탈퇴를 허용하는 문제는 독일 연립정부 내에서 그동안 논의조차 금기 사항으로 여겨져왔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공개적으로 그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핵심국가들로 더욱 강력한 '유로존 2.0'을 창설해야한다는 주장이 마침내 정강으로 채택된 것이다.
▲ 메르켈 독일 총리가 14일(현지시각) 집권 기독교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가장 힘든 시기를 맞고 있다면서 유로존을 지킬 것을 호소하고 있다 . 하지만 이날 회원국의 유로존 탈회를 허용하는 정강이 채택됐다. ⓒAP=연합 |
정강이 독일 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연립 정부내 자유민주당(FDP)과 기독교사회당(CSU)의 지지를 얻어야 하며, 독일에서 이 정강이 채택되더라도 EU 모든 국가들이 유로존 탈퇴를 금지하고 있는 조약 변경을 승인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정강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유로존에서 누군가 탈퇴해야만 유로존 붕괴를 피할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우리는 아무도 내치지 않는다. 그리스 등 모든 국가가 남기를 바란다"며 정강 채택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도 "하지만 만약 한 국가가 무거운 짐을 질 수 없거나 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해당 국가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최근호에서 '독일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대비하고 있다'는 기사에서 "독일 정부는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왔는데, 이 경우 그리스는 수십년간 지속될 경기침체의 악순환에 빠져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슈피겔>에 따르면,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는 그리스의 새 정부가 이미 합의된 긴축 프로그램을 지속하지 않기로 하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반면 기본 시나리오는 상황이 그렇게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제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기본 시나리오에 따르면,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초기에는 혼란이 초래될지라도 오히려 유로존은 장기적으로 튼튼해진다.
이 시나리오는 유로존은 너무 부실한 회원국을 빼면 보다 안정적인 통화동맹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깔고 있다. 여기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그리스보다 훨씬 덩치 큰 유로존 국가들도 부채위기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리스의 위기가 추가적인 타격을 주지 않는다면 위기를 극복할 능력이 있다는 전제로 포함된다.
"그리스 탈퇴, 부정적 효과가 압도"
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집중 공격대상이 되면서 국채 금리가 치솟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럽 공동의 구제금융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가 확대돼야 한다. 가능한 한 신속하게 1조 유로 정도로 확대돼야 한다. 하지만 레버리지에 의한 EFSF는 그 자체가 부실채권이라는 회의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리스가 유로를 버리고 새로운 화폐를 쓰게 되면 급격하게 유로 대비 가치가 하락하게 된다. 이런 변화는 수출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 그리스의 부채는 여전히 유로 표시 자산이기 때문에 빚부담이 가중된다. 그리스 정부나 기업, 은행들의 신용등급은 더 추락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기업들의 파산이 이어지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내수 기반도 붕괴대 경기침체가 악화된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수십년이 걸릴 수 있다. 다른 나라들도 이런 소용돌이에 말려들 수 있다.
독일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기본 시나리오보다 높은 것으로 보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발 쇼크에 이어 이날 스페인 국채 금리가 3개월여만에 다시 6%대로 올라섰다. 또 이틀간 내림세를 보였던 이탈리아 국채 금리도 오름세로 돌아섰다.
스페인 국채금리, ECB가 사주는데도 6% 넘어서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스페인의 국채 금리가 6%대를 넘어선 것은 유럽중앙은행(ECB)이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국채 매입을 시작한 지난 8월8일 이후 처음이다.
10년물 국채 금리와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의 차이(스프레드)도 4%포인트를 넘었다. 위기가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2거래일 동안 내림세를 나타냈던 이탈리아 국채 금리도 0.15%포인트 오른 6.60%를 나타냈다.
이탈리아의 국채 금리는 지난 9일 이탈리아 위기가 고조되면서 7.48%까지 치솟았다. 이후 마리오 몬티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이 이끌 새 정부 출범이 가시화하면서 내림세를 나타냈으나 약발이 금세 사라졌다. 이탈리아 국채와 독일 국채의 스프레드도 0.27%포인트 오른 4.83%포인트로 확대됐다.
유럽 주요 증시도 이탈리아와 그리스 새 정부의 개혁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 전날의 급등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밀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증시의 DAX 30 지수는 1.18% 내린 5985.02로 다시 6,000선을 내주면서 끝났다. 또 프랑스 파리증시의 CAC 40 지수도 1.2% 떨어진 3108.32로 장을 마쳤다.
뉴욕 증시도 거래량이 올들어 일평균 대비 30% 이상 줄어든 가운데 유럽 증시처럼 부채위기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며 약세로 마감했다.
이제 시장에서는 그리스,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부채위기가 독일과 함께 유럽통화동맹(EMU)의 핵심인 프랑스로 전이되는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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