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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북한을 극도로 불신…쉽게 안 나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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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북한을 극도로 불신…쉽게 안 나설 것"

[인터뷰] 문정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한국이 시동 걸어야"

지난 한 주 동안 한반도의 안보 위기는 다소 누그러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에 대화제의를 했고, 12일 한국을 방문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조건부이지만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현재의 소강 국면을 한반도 안보위기의 전환점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지난 14일 남한의 대화제의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며 사실상 대화 거부를 선언했다.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촉발된 한반도의 안보위기는 한미연합훈련인 독수리훈련이 끝나는 4월 말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안보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지고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는 위기 국면 속에 <프레시안>은 지난 14일 연세대학교 문정인 교수와 만나 북한의 위협과 도발의 의도를 진단하고 우리의 대응 전략을 들어봤다.

문정인 교수는 현재 북핵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뿐이라고 주장했다. 문 교수는 미국의 현지 분위기가 "북한과 협상해봐야 소용없다"는 비관주의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또 그는 케리 국무장관이 북한과 대화하고 수교하려면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된 가시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명분이 생긴다"며 "결국 한국이 시동을 걸지 않으면 북핵문제를 풀기에 상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문 교수는 결국 박 대통령이 후보 때부터 들고 나왔던 신뢰 프로세스를 어떻게 공고화, 구체화시켜 5월 방미 때 오바마에게 이를 설득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나름의 로드맵을 구체화시켜야 미국과 입장을 조율할 수 있고 이를 북핵문제를 푸는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양국 정상회담에서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되면 북핵문제를 풀기 곤란해진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북한 핵의 비핵화보다 비확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분석에 대해 문 교수는 "비핵화는 이미 물 건너갔고, 그래서 비확산에 역점을 둔다는 말인데 이거 난센스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비핵화가 되면 확산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며 "비확산은 비핵화 없이 불가능하다. 비핵화가 안 되면 언제든 확산에 대한 유혹을 갖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문정인 교수는 북한이 지난 3월 31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교수는 "북한은 외부에서 자본 유입이 있어야 경제가 움직인다"며 핵무기가 있는 상태에서 자본유입을 할 수 있다는 북한의 구상은 착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는 남한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며 "북한이 핵무장을 강화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경제지원, 교류협력을 할 수 있나. 북한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대담은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가 진행했다. 다음은 대담 전문이다.<편집자>


▲ 연세대학교 문정인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3월 초부터 고조되기 시작한 한반도 안보위기가 지난 8일 북한의 개성공단 잠정 폐쇄 조치로 최고조에 다다랐다. 다행히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에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12일 한국을 방문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원칙론이긴 하지만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위기국면이 끝나고 진정국면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볼 수 있나?

문정인 : 글쎄. 모든 대화나 협상, 신뢰구축은 쌍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미 연합 독수리 훈련이 이달 말까지 진행 중인데 이 기간에는 큰 반전이 이루어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는 5월 7일 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는데 여기서 오바마 대통령과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북한과 신뢰 구축을 위해 물밑대화를 할 것인지 등과 같이 앞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좀 지켜봐야 한다. 아직까지는 가변적인 변수가 많다.

프레시안 : 아직은 전환점(터닝포인트)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뜻인가?

문정인 : 터닝포인트는 박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제시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이에 대한 동의와 지지를 보일 때 비로소 마련될 수 있다. 그러면서 남북, 북미 대화가 이루어지고, 또 남·북·미·중 4자의 외교적 노력을 통해서 6자회담을 재개하든가 아니면 이에 상응한 대화채널을 만들어 나가는 움직임이 보이면서 북한이 안심해야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개성공단을 재개하는 문제인데, 북한이 쉽게 응하지는 않을 것 같다. 개성공단 재개와 금강산 관광을 패키지로 묶어서 접근해야 한다. 북한은 개성공단 재개하고 우리는 금강산 관광 재개하는 '패키지 딜'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게 박근혜 정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첫 단추가 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과 교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방미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현대아산과 더불어 대북 물밑교섭을 착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14일 조평통이 성명을 통해 남한의 대화제의가 '빈껍데기'라며 일단 남측의 대화 제의를 거부하는 반응이 나오면서 미사일 발사나 추가 핵실험 같은 북한의 추가적 긴장 고조 조치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문정인 : 북한의 긴장 고조 조치가 북한의 일방적 도발이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본다. 핵 공격이 가능한 전략무기를 동원해서 미국이 무력시위에 나서니까 이에 맞대응한 측면도 있다. 지금까지 과정을 보자. 지난 3월 19, 20일 미국의 전략폭격기인 B-52가 원주 필승 사격장에서 폭격 훈련에 나서고 핵 잠수함 사이언이 부산기지 입항하니까 북한 당국은 1호 근무태세 발동하고 3월 26일에는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차단했다. 뒤이어 3월 28일 B-2 스텔스 전략폭격기가 한반도로 공개 출격하니까 김정은은 작전회의 긴급소집하고 전략미사일 부대를 방문해서 사격대기 지시를 내리는 동시에 3월 30일에는 '남북관계 전시상황' 돌입을 발표했다. 그러다가 미국의 이지스함이 뜨면서 북한 미사일에 대한 요격 준비를 갖추니까 괌 타격을 준비하라고 맞대응한 것이다. 물론 원인 제공은 지난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한 북한에 있다. 또 지난해 12월 12일 장거리 로켓도 발사했고. 이것은 어쨌든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한 것이다. 그래서 한미일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지만 북한도 한미의 군사적 움직임에 맞대응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올해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이 예년에 비해 특이하긴 하다. 키리졸브 연습은 북한의 대규모 남침을 대비해 한미 연합전력이 어떻게 대응하느냐를 컴퓨터로 연습하는 일종의 시뮬레이션 훈련, 즉 도상훈련이고, 실제 병력이 동원되지는 않는다. 이게 끝나면 독수리훈련을 하는데 이것은 실제 무기와 병력이 동원되는 본격적인 군사훈련이다. 독수리훈련은 북한군이 한국 후방에 침투했을 때 한미 연합전력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훈련이다. 즉 북한의 국지전 도발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한미 연합훈련 성격이 강하다. 근데 올해는 B-52, B-2, F-22, 핵잠수함 등을 미국의 전략무기를 동원해 북한의 심장부를 타격할 수도 있다는 것을 과시하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 전략 무기 전개는 원래 계획된 것도 한국군이 요청한 것도 아니었다고 알고 있다.

이러한 전략무기 전개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첫째는 정몽준 의원을 비롯해 한국의 보수세력 일각에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론'을 제기하니까 이를 진정시키기 위함이라고 보인다.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제공하겠다는 핵우산이 찢어진 우산이라면서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든가 아니면 한국 스스로 핵무장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지 않았나? 그러다 보니 이러한 강경 대응 움직임을 무마시키기 위해 필요 이상의 과잉대응을 한 것 아닌가 한다. 두 번째로 북한에 대해 경고 메시지 성격도 있다. 북한이 도발하면 미국의 전략 무기를 이용해 강력 응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에 대한 메시지인데,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서 핵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만약에 중국이 제대로 해결 못하면 이런 전략적 자산을 전개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중 첫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미국이 강경 대응에 나서니까 오히려 북한의 위협 인식을 더 고조시켰다. 물론 북한도 작전계획이라는 것이 다 있을 것인데, 기본적으로 한미 연합전략이 어떤 수를 취할 것인지에 따라 대응하는 것이다. 미국이 전략 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할 경우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잘 보여준 것이다.

프레시안 : 결국 한반도 긴장 고조의 1차적 원인 제공은 북한이긴 하지만, 미국의 무력시위가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다는 얘기인가?

문정인 : 그렇다. 근데 독수리 훈련은 하루 이틀 한 것 아니다. 원래 이런 식의 훈련을 1961년부터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가 2006년에 지금처럼 북한의 국지전 침투에 대한 대응 훈련을 해 온 것이다. DJ, 노무현 때도 한미 연합훈련을 했지만 북한이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실질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전략 자산들이 움직이니까 더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 미국 스텔스 전략폭격기 B-2 ⓒ뉴시스

그 밑바탕에는 미국의 최첨단 전략 무기들이, 비록 훈련이긴 하지만 자신들을 향해 전개되는데 최고사령관인 김정은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판단도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위협에 직면해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야 자신의 카리스마도 살아나고 국내 정치적 지지도 살아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위기가 국내 권력 기반이 약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김정은이 외부 위협을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 '관계정상화'

프레시안 : 이번 위기가 북한이 미국의 오바마정부 2기, 한국의 박근혜 신(新)정부 출범을 겨냥해 의도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문정인 : 신정부 길들이기는 아니라고 본다.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내 걸고 대화에 나서겠다고 하는데 북한이 굳이 그렇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오바마 1기 정부 출범 직후인 2009년 4월 5일, 북한은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며 로켓을 발사했는데 한미가 이를 탄도미사일로 규정하고 안보리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그렇게 징벌적인 조치를 취하자 북한은 이에 4월에는 우라늄 농축을 시작한다고 선언했고 5월에는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의 행동패턴은 다분히 반사적이다. 미국이 좋게 나오면 선순환구조로 가고, 징벌적으로 나가면 꼭 이에 대해 강경 대응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악순환구조를 가져온다. 그 배경에는 북한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북한은 자신들이 미국에 약하게 보이면 이라크나 리비아처럼 미국의 군사적 침공을 당할 수 있다는 강한 위협인식을 갖고 있다. 이것이 하나의 전략적 독트린, 강령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다른 나라들은 미국이 강하게 나가면 꼬리를 내리는데 북한은 오히려 더 강하게 대응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그래서 북한의 행태는 미국이 어떤 대북전략을 쓰느냐에 따라 다른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 그럼 최근의 긴장 고조에서 북한이 원하는 것, 의도는 무엇인가?

문정인 : 북한이 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가안보와 체제안보다. 그런데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에 대한 적대적 의도와 정책을 버리지 않았다고 인식하면서 미국이 핵무기를 가지고 공격할 수도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핵무기 갖고 억지력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바로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해 제재하고 징벌하고 있다. 징벌이라는 것이 대부분 경제적 제재다. 제재는 북한 체제를 약화시키고 있다. 그 결과 북한은 국가안보와 체제 안보에 대한 위협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중적인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최근 북한이 밝힌 내용을 보면 '비핵화와 관련한 대화와 협상에는 참여 안 한다. 오로지 그것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연계됐을 때만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돼야 북한에 대한 위협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북한에 대한 위협이 없어지면 비핵화 안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고, 나아가 외부 세계와의 협력을 통해 경제적인 활성화도 이루어질 수 있지 않겠나. 따라서 체제 옹호를 위해, 경제적으로 더 큰 이득을 얻기 위해 핵을 갖는다는 것은 북한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 아닌가 한다.

프레시안 :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이 이란과 핵개발 협력 등 핵확산을 통해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려 한다는 분석이 있다. 이른바 '확산을 통한 협상' 전략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에 대해서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으니까, 중동지역 등에 대한 핵확산 위협을 통해 미국과의 협상을 성사시키려 한다는 분석인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문정인 : 지난해 북미 간 2.29 합의와 조지프 디트라니가 8월에 북한을 간 사례 등이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워싱턴의 생각은 북한이 먼저 좋은 행태, 즉 비핵화의 가시적인 진전을 보이면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완전히 비핵화하면 수교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행정부 차원에서 북한과 수교를 한다 해도 미 의회가 비준을 안 해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국내정치적 역동성을 감안할 때 북미 관계 정상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때문에 북한이 먼저 비핵화 등에 관해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미 핵무기 가졌다고 하는데 이를 어떻게 포기하게 하나? 쉽지 않다. 그럼 일단은 비확산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은 이스라엘 안보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북한과의 협력으로 이란이 핵무기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면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북미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올 것 아니냐는 건데 이것은 접근이 잘못됐다. 북한의 비핵화 없이 비확산은 담보하기 어렵다. 같이 가야 한다.

프레시안 : 실제로 북한과 이란의 핵 또는 미사일 협력은 어느 정도인가?

문정인 : 미사일 분야에서는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핵문제는 잘 모르겠다. 만약 이란과의 핵 협력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면 북한은 정말 어려워지고 미국은 전쟁도 감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북한도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로는 알 수 없지만.

미국에서는 연계가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를 비롯하여 서방과 일본 언론에 따르면 북한의 3차 핵실험 당시 이란의 핵무기 개발 총책임자와 다수의 이란인 과학자들이 참관했다고 한다. 확인할 길이 없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위험한 연계다. 북한이 자신의 안보를 스스로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다. 외화벌이를 위해, 또는 '불량국가들의 연대감' 때문에 이란과의 핵 협력에 나선다면 이는 곧 북한에 치명적인 자충수가 될 것이다.

북한 핵능력의 실체는?

프레시안 : 북한의 핵무기 능력, 정확히 어느 정도라고 봐야 하나? 지난주 북한이 핵탄두의 미사일 탑재 능력을 갖고 있다고 국방정보국(DIA)이 밝힌 데 대해 백악관이 곧바로 부인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것 같은데.

문정인 : 미국에는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해 15개 정보기관이 일종의 정보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 15개 정보기관이 특정 사안에 대해 협의를 하면서 몇 %가 여기에 동의 하느냐에 따라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한다. 가령 지난 2002년 10월에 평양을 방문한 켈리 당시 국무부 차관보가 우라늄 농축 문제를 제기해 결국 제네바합의를 파탄시킨 바 있다. 이때는 북한이 제네바합의에 따라 모든 핵 활동을 동결한 상태였는데, 당시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시도하고 있다는 데 대해 미 정보기관의 75% (moderately probable) 정도가 동의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그 정보가 객관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정책을 밀어붙이기 힘들다. 동의하는 비율이 90% 이상이 되어야 객관성이 있는 정보라고 보는 것이다.

핵무기 국가가 되려면 우선 핵탄두가 있어야 한다. 탄두에는 플루토늄과 우라늄의 두 종류가 있다. 지난 2월,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자신들의 핵무기가 '다종화' 됐다고 선전했는데, 이는 플루토늄 핵탄두와 우라늄 핵탄두 모두를 확보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많은 분석가들은 플루토늄 핵탄두는 확보했을지 몰라도 우라늄에 대해서는 지금 시작하는 단계라서 정말 탄두를 가졌는지는 회의적이다.

다음으로는 미사일이다. 미사일은 단거리, 중거리,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 있다. 그런데 미국에 대해 핵무기를 쏘려면 대륙간 탄도미사일이어야 한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경우 탄두의 무게가 1000 kg 이하로 경량화되어야 한다. 또한 대기권 재진입 시 고열과 충격에서 탄두를 보호할 수 있는 재진입체 기술도 확보해야 한다. 북한이 이런 기술까지 가졌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은 별로 없다. 북한이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에 성공했다는 주장에 대해 정보 당국자 간 이견이 많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북한이 플루토늄 핵탄두는 확실히 가졌고, 우라늄은 논란의 대상이다. 미사일의 경우 단거리, 중거리 미사일은 가졌지만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한 번 성공한 것에 불과하다(작년 12월 12일). 미국 기준으로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무기로서 정확도와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17차례의 지속적 실험에서 모두 성공을 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은 지금까지 지난해 12월 12일 한 차례 성공했을 뿐이다.

사실 핵실험도 좀 더 해야 한다. 이제까지 북한의 핵실험은 1차는 실패했고 2차는 어중간, 3차는 일단 성공으로 본다. 그러나 파키스탄 사례를 보면 5~6차례 정도 실험을 해야 제대로 된 핵탄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물론 핵무기 보유에 근접한 것은 사실이지만.

▲ 북한은 조선중앙TV를 통해 3차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연합뉴스

마지막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도록 핵탄두가 경량화, 소형화 됐느냐의 문제다. 북한은 이것이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최근 미 국방정보국 (DIA) 는 북한이 그런 핵 미사일 탑재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15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DNI (국가정보부)의 클래프 (Clapp) 부장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북한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핵무기 국가로 근접하고는 있지만 완전히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안보에는 설마가 없기 때문에 단 1%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를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DIA(국방정보국)의 평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것이라고 봐야 하나?

문정인 : DIA는 국방부 소속이지 않나. 북한이 미국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경우를 전제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그러자면 요격 미사일 예산을 확보해야 하지 않나. 그러면 그렇게 평가를 낼 수밖에 없겠지. 지금 워싱턴은 모든 것이 예산 정치다. 물론 객관적 근거는 있겠지만 DNI는 DIA와 다르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관료정치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프레시안 : 결국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북한의 체제 안전에 대한 보장을 해주는 동시에 비핵화를 추진하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라는 지적이 많은데.

문정인 : 북한이 원하는 것은 체제 안전 보장보다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적 의도와 정책을 중단하고 두 나라 관계를 정상화하자는 것이다. 북한의 체제보장은 북한 지도부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체제인정을 해달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입장은 미국이 자신들에 대한 적대적 의도와 정책을 펴지 말고 정상 국가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관계 개선도 하고. 위협도 없애고 이러한 것들을 해달라는 뜻이다. 결국 이를 북한에서 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적대적 의도와 정책을 해소하고 관계정상화해서 자신들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미국이 언제든 자신들을 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북한은 자신들이 핵무기를 갖고 있어야 미국의 위협에 대비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북핵 협상의 과정을 보면 북한은 미국이 판을 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이 판을 깨더라도 자신의 안보를 지키고 협상할 수 있는 카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협상이 중단되는 동안에는 자신의 핵 무장력을 키우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보자. 1994년 제네바합의가 타결된 이후 2002년 말까지 북한은 이 합의에 따라 핵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2002년 10월 켈리의 방북으로 제네바합의가 파탄 난 이후 북한은 우라늄농축을 비롯해 핵활동을 재개했다. 결국 2006년 1차 핵실험을 하지 않았나.

그런데 북한의 이러한 헤징전략에 대해 미국은 북한이 자신들을 속였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북핵 협상이 깨진 것은 북한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협상 파탄의 책임에 대해 미국과 북한의 판단은 전혀 다르다. 이런 상황이 오래 계속되다 보니 협상의 접점을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비관주의 팽배해

프레시안 : 이달 초 미국을 방문해 모튼 핼퍼린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 등 미국 측 인사들과 한반도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미국 현지의 반응은 어떤가?

문정인 : 한마디로 미국은 북한에 대해 '희망 없다(hopeless)' 고 본다. 대책 없고 속수무책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최후의 결단 이야기가 나오고 손봐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강경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 배후에는 '미국은 항상 옳은 접근을 했고 거짓말을 하고 판을 깬 것은 북한이었다' 인식이 깔려 있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북한으로부터 '같은 말(馬)을 두 번 사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나. 더 이상 북한에 속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이 한 번도 자기들의 말을 제대로 산 적이 없다고 한다. 제네바합의 파기에 대해서도 북한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깼다고 생각하고, 미국은 북한이 원인제공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오해와 불신의 연속, 이것이 북미 관계의 현실이다.

프레시안 : 클린턴 정부 때인 1999년, 윌리엄 페리 대북 특사가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를 작성해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선 바 있다. 당시 페리 특사는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 북한이 느끼는 안보위협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페리 프로세스가 상당히 진전됐었는데, 현재 미국에서는 북한이 느끼는 안보 위협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인가?

문정인 : 1999년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1999년은 제네바 합의로 북한의 모든 핵시설이 동결되어 있었다. 페리를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하고 평양으로 보냈던 가장 큰 이유는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발사가 아니라 북한이 금창리 지하동굴에 비밀 핵시설을 가동하고 있다는 이른바 금창리 의혹 때문이었다. 이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클린턴이 페리를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그래도 여유가 있었던 것이 당시 의혹의 초점은 탄도미사일이었다. 이것이 이란을 거쳐 시리아, 헤즈볼라 등으로 확산되면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핵활동은 동결됐으니까 미사일만 신경 쓰면 되는, 지금보다 훨씬 쉬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페리 특사 스스로 인정했듯이 페리 프로세스는 사실상 클린턴-김대중 프로세스, 임동원-페리 프로세스였다. 한국정부, 특히 임동원 장관이 아이디어를 많이 줬고, 그래서 북한과의 협상을 전제로 한 플랜A에는 사실상 김대중 정부 안이 많이 들어갔다. 이것이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가져오는 돌파구를 만들어줬고. 그런데 지금은 북한이 핵무기를 비롯해 거의 모든 것을 가졌고, 북핵 위기가 20년 이상 지속되면서 피로 증후군도 생긴 데다 북한에 대한 불신도 높아졌다. 그래서 현 상황에서 페리 프로세스를 가동하기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북한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며 미국의 관심을 끄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미국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긴데.

문정인 : 그동안 미국이 북한을 악마화 시키다 보니 미 행정부나 의회, 또는 이른바 전문가들 거의 모두가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 북한을 제대로 아는 지역전문가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정책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제네럴리스트들이 북한 전문가로 행세하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핵 문제는 계속 밀렸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미국은 5년 동안 중유 공급 이외에 관계 정상화를 위한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해 11월 직후 미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클린턴 정부는 두 손을 묶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1999년 페리 프로세스가 가동되면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 조명록 차수가 백악관을 방문하는 등 해결의 조짐이 보였지만, 2000년 대선에서 부시가 당선되면서 이 또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2002년 말 켈리 차관보의 방북으로 제네바합의가 파기되고 마치 전쟁이 날 것처럼 난리였다가 2003년 이라크 침공으로 또 뒷전으로 밀려났다. 오바마정부 때도 마찬가지다. MB정부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미국은 두고 봐라" 하니까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 이라는 압박 정책은 북한의 핵 무장력만 키워주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말았다. 전쟁을 하든 평화적 타결을 하든 미국이 북한을 정책적 우선순위 설정에서 상위에 놓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방치 전략이 미국의 대북정책을 실패로 이끈 것 아닌가.

핵무기개발과 경공업 발전 병진노선, 불가능하다

프레시안 : 북한은 지난 3월 31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무기개발과 경공업 발전을 병진노선으로 채택했다. 북한의 입장이 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나?

문정인 : 기본적으로는 북한 노선은 강성대국이다. 강한 국가는 강한 국방력, 융성한 국가는 경제발전이다. 그런데 북한의 접근이 다른 나라들과 좀 다른 점이 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 때도 부국강병이었고, 한국도 그랬고, 중국도 부강한 국가, 즉 경제적 부가 먼저였다. 그런데 북한은 강한 국가를 먼저 만들어야 경제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과거에 재래식 군사력이 쟁점이 됐을 때는 강성대국이라는 순서가 문제 시 안 되지만 지금처럼 핵을 갖고 있으면 양자가 병립되기 어렵다.

북한은 국내 자본이 없다. 외부에서 자본 유입이 있어야 경제가 움직이는데 핵무기가 있는 상태에서 누가 자본 투입을 하겠나. 자신들은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자가당착이다. 김정은이 핵문제에 대한 양보 없이 외부 자본 유치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지원이라는 것도 죽지 않을 만큼만 감질나게 주는 것이지, 북한 경제가 비약적 발전을 할 정도의 지원은 안 할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북한도 깨달아야 한다. 지금 물론 국내정치적 목적 때문에 핵과 부유한 국가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프레시안 : 경제발전이라는 것이 외부세계와 원활한 관계를 맺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북한이 핵을 고집하는 한 병진노선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말인가?

문정인 : 우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핵무기와 남북관계의 교류협력을 병행 추진한다고 하는데 북한이 핵무장력을 계속 증강시키는데 우리가 어떻게 대규모 경제지원, 교류협력을 할 수 있나. 병행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도 성의를 보여야지. 최소한 더 이상 우라늄, 플루토늄 획득하지 않고(No more), 더 이상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No better), 더 이상 제3국에 핵 유출하지 않고(No export). 이 과정에 협상을 통해 핵시설 검증가능하게 없애고 핵물질 없애고, 핵무기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면 투명성 보장, 즉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히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체제 성격도 좀 바뀔 것이고, 또 그렇게 되면 북한을 위협하는 나라가 없는데 북한이 핵을 계속 가져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프레시안 : 핵무기개발과 경제발전 병진전략이 일리가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던데? 핵무기 개발이 재래식 군비보다는 돈이 덜 들기 때문에 병진노선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논리인데.

문정인 :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이유는 첫째 미국의 위협에 대한 최소한의 억지력을 갖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재래식 무기 전력에서 한국에 뒤지기 때문에 핵무기로 만회하겠다는 것이다. 2010년 기준으로 한국 국방비가 280억 달러였는데 북한의 GDP 총액이 이 정도 됐다. 그러다 보니 북한 재래식 무기가 우리를 따라올 수가 없고 핵무기가 가장 값싼 억지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선군정치 기치 아래서 군부를 포섭하고 국내정치적 정통성을 유지하면서 국제적 위신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네 번째는 미국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목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일부 보수파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팔아 외화벌이를 하려 한다고 본다. 이들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경공업 발전의 병진노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은 핵무기 가져도 경제발전 잘한다고 하는데 북한은 이들 사례와 완전히 다르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의 경우, 미국과 그 동맹에 대한 위협을 가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반면 북한 핵은 미국, 한국, 그리고 일본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데 이를 용인하겠는가. 그 꿈은 깨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한국이 먼저 시동을 걸어야

프레시안 :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오기 어려운 입장이라면 한국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데 박근혜 정부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평가해보면?

문정인 :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하겠다고 하는데 정부가 구체적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말들은 대북 억지력을 강화하고, 북한이 도발하면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것 정도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억지나 도발에 대한 응징 같은 것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국가의 책무이지, 새로운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억지와 도발에 대한 응징을 하지 않는 국가를 어떻게 정상적인 국가라 하겠나.

문제는 박근혜정부에서는 억지, 응징만 이야기하고 이를 넘어서는 신뢰프로세스의 구체적 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야 한다. 북핵과 남북관계를 병행할 것이냐 조건적으로 연계할 것이냐, 북미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오바마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것인가, 중국과는 어떤 식으로 전략적 협의를 해 나갈 것이냐 등등에 대한 방안이 나와야 한다.

현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가 북핵문제에서 주도권을 갖기도 힘들고, 중국의 시진핑도 힘들고. 아베의 일본에는 기대할 것도 없다. 결국 정권 교체가 된 국가들 중에 유일하게 능동적으로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해줄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박 대통령밖에 없다. 또 마침 신뢰 프로세스를 들고 나왔고 최근에 대화를 강조했기 때문에 이미 역사의 방향은 이쪽으로 잡은 것이다. 이를 어떻게 공고화, 구체화 시킬 것인지가 중요하다.

결국 5월 방미 때 박 대통령이 오바마에게 얼마나 제대로 신뢰 프로세스를 설명하고 설득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 협의 하에 북미관계 개선하고 6자회담 하고, 9.19 공동성명에 명시되어 있는 4자회담도 움직여나가는, 이런 큰 그림과 구체적 내용이 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유일한 희망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미국은 나서기 힘들다. 오바마는 북한이 큰 양보하기 전에 행동을 취하기 힘들다. 의회나 언론이 안 도와준다. 오바마가 "동맹국가인 한국에서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라고 설득하고 압력을 넣고 있어서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 된다면 가능하다. 결국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국가는 한국이다. 여기서 미국이 움직여야 중국도 움직이고 북한도 움직이는 것이다. 지금은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된 기계가 정지되어 있는 상태인데 이것을 움직이는 시동의 첫 단추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돼야 한다.

프레시안 : 미국이 한국에 북핵문제를 떠넘기려고 한다는 시각도 있는데?

문정인 : 떠넘겨주면 좋지. 그런데 북한이 안 받아준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전시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는 한, 북한은 우리를 대화의 대상으로 안 본다. 전시작전통제권은 2015년에 갖고 와야 한다. 그래야 북한에 대한 영향력도 커질 수 있다.

프레시안 : 북한 문제 해결에 한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나라도 움직이지 않나?

문정인 : 그럴 것이다. 존 케리 국무장관이 무슨 명분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겠나. 워싱턴은 북한에 대한 비관주의가 창궐하고 있다. 북한과 협상해봐야 소용없다는 분위기가 깔려있다. 북한 외무성 고위관리가 지난해 3월 뉴욕에서 당시 케리 상원의원을 만나 이런 말을 했다. "미국과 수교하지 않은 나라가 4개국 있다. 우선 부탄. 부탄은 그들이 원하지 않았다. 이란과 쿠바는 과거에 수교했다가 단교한 상황이다. 북한만 한 번도 수교해본 적이 없다. 미국이 큰 전쟁을 치르고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독일, 일본과도 수교했는데 북한만 인정 안했다"고 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자 케리 상원의원은 북한과 수교하려면 상원에서 비준을 받아야 하는데, 상원에서 북미수교 인정해줄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말하더라. 결국 북한이 비핵화에 전향적 자세를 보이고 국제 규범에 준하여 행동할 때 자신도 북한과의 국교정상화에 나설 명분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지금 북한이 그런 행동 보이기 쉽지 않다. 그런 행동을 보이게 한국 정부가 나서서 시동을 걸어줘야 한다.

프레시안 : 인터뷰 모두에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운영 재개를 시작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는데, 박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구체적 조언이나 제안을 해준다면?

문정인 : 우선 지금 단계에서 대북 특사는 전혀 안 맞는 해법이다. 북이 받기도 어렵고 북의 압박에 굴복해서 보낸다는 인상도 줄 수 있다. 부담 없이 물밑 접촉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물밑 접촉의 핵심은 핵문제가 아니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재개 문제에 대한 해법 도출에 있어야 한다. 이것은 조건 없이, 그러니까 금강산 관광은 우리가 양보하고 개성공단은 북한이 양보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이것에 대한 밑그림이 북한 문제를 푸는 데 핵심이다. 그리고 오바마와 만나서 조율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식으로 남북관계 현안부터 풀어야 우리가 북한과 신뢰를 구축하고 북에 대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 문정인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돌파구를 만들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최선의 길은 6자회담이라고 본다. 6자회담 내에서 북미 양자회담을 해야 중국이 동의해줄 수 있다. 중국은 현재 한반도 핵문제의 당사국은 북미 양자로 본다. 그러니까 둘이 만나서 얘기하라고 한다. 즉, 북미대화 하라는 것이다.

비핵화와 비확산은 같이 갈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그런데 <프레시안>에 최근 소개한 리언 시걸의 글이나 미국측 인사들의 발언을 보면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보다는 비확산, 그러니까 북한핵이 이란 등 외부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미국과 한국 사이에 정책목표에 차이가 있는 것 아닌가?

문정인 : 비핵화는 이미 물 건너갔고 비확산에 역점을 둔다는데 이게 난센스다. 비핵화가 되면 확산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데. 비핵화 없이 어떻게 비확산이 가능한가?

시걸이 말하는 것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해커 박사가 이야기한 그 세 가지 (No more nuclear materials, No better bombs, No export) 입장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비확산은 비핵화 없이 불가능하다. 비핵화가 안 되면 언제든 확산에 대한 유혹을 갖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비핵화를 위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가시화돼야 한다고 본다.

비핵화 없이 비확산을 어떻게 보장하느냐. 같이 가야 한다. 물론 비확산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이다. 비핵화를 위해서는 우선 핵시설, 핵물질, 핵무기 이 세 가지를 동결하고 핵시설, 핵물질에 대해서는 '검증 가능한 폐기' 해야 한다. 핵시설과 핵물질 없으면 핵탄두 추가 생산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신뢰 프로세스로 관계가 좋아지면 북핵을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적대적 관계가 됐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지. 이에 대해 안정적 관리를 하고, 이 상태에서 북한이 안보의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 북한도 핵무기를 가질 필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북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한 국제사회의 큰 투자나 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북한이 개혁개방하고 시장경제가 들어가면 시민사회와 중산층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 내부의 정치적 변화도 피해 가기 힘들 것이다. 그건 우리가 왈가왈부 할 사항이 아니다. 북의 지도부와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원자력협정 접근 순서가 틀렸다

프레시안 : 5월 초 한미정상회담에서 원자력협정이 주요 의제로 대두될 같다. 한국은 재처리 권한을 요구하지만 개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문정인 : 한미 원자력협정은 40년마다 개정되는 것이다. 이번에 이것을 20년이나 30년 주기로 바꾸는 것도 의제 중 하나로 알고 있다. 우리 정부는 포커스를 두 가지에 맞췄다. 하나는 우라늄 농축이고 다른 하나는 재처리 권한이다. 이를 위해 건식 파이로 프로세싱 방식을 미국과 공동 개발하는 것도 의제로 들어가 있다. 특히 우리 입장은 2016년 되면 원자력 폐기물 시설이 넘쳐나서 더 이상 폐기물 보관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우리가 재처리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한미 원자력협정은 40년 전 우리 원자력 수준이 아주 낙후되었을 때 체결된 것이다. 이제 세계 5위의 원자력 대국으로 그 위상에 맞게 협정을 개정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원자력 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재처리를 통해 핵폐기물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우리의 권한이다. 그러나 최근 독자 핵무장 주장이 나오면서 상황이 어려워진 것 같다. 특히 원자력 원료의 안정적 공급이란 대승적 차원에서 접근 했어야 했는데 재처리라는 후행 주기에 역점을 두면서 미국의 반발을 초래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현지 관측통은 8월까지 미 행정부와 협의해서 개정안을 미 의회에 상정시켜야 내년에 개정이 되는데 3개월 내에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기존 협정을 2~3년 더 연장하는 것으로 가자는 것 같다. 그러나 청와대는 밀어붙여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외교부는 중간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 것 같다. 참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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