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주요증시가 이처럼 폭락한 것은 무엇보다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 수준이 마지노선이라는 7%를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10년만기 국채 수익률이 7%가 넘어선 것은 유로존 출범 이후 사상 최고치일 뿐 아니라, 시장에서는 민간투자자가 더 이상 이탈리아 국채를 사기 꺼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탈리아 국채를 샀다가는 돌려받기 힘들 것이라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 부패와 성추문이 드러나도 버틴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경제 위기로 퇴진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탈리아의 정치판 자체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AP=연합 |
현재 유로존에서 부채위기로 구제금융을 받게 된 나라들은 모두 국채금리가 7%를 넘은 뒤 한달 전후로 구제금융을 받은 공통점이 있다. 구제 금융을 받기 직전 그리스와 포르투갈, 아일랜드의 국채 수익률 역시 모두 7% 대였다.
7%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높은 것인가는 유로존 안전채권의 기준이 되는 독일의 국채 금리가 1.73%로 이른바 두 채권의 금리차인 스프레드가 5%가 넘었다는 점에서 실감할 수 있다.
사실 이날 이탈리아의 국채 금리가 치솟은 직접적 원인도 유럽의 대표적인 채권 청산 기관인 LCH 클리어넷(Clearnet)이 이탈리아 국채에 대해 더 많은 위험 담보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막을 수도 없다는 공포감
경제위기에 정치적 무능을 드러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것이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오히려 시장의 불안감이 더 커진 이유는 이탈리아의 문제가 총리 하나 물러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우려가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정당이 난립해 정치적 리더십이 고질적으로 취약하다. 단독 과반수가 가능한 정당이 없어 어떤 형태로든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런 만큼 강도높은 긴축 재정 개혁을 관철하기 어렵다.
이탈리아의 부채는 우리 돈으로 무려 3000조 원에 달하기 때문에 사실 문제가 생기면 구제금융으로 막을 수도 없다. 현재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에 유로존 4위인 스페인의 부채를 다 합친 것과 맞먹기 때문에 "구제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빚더미다.
게다가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 미국 등 유로존 이외의 국가들도 이탈리아 국채를 대거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틀어막을 수 있다고 보는 그리스와 달리 이탈리아의 부채위기는 '불확실한 공포감'을 글로벌 경제에 투사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이날 "일부 논객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시대'가 찾아올 수 있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라가르드 총재는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금융포럼(IFF) 기조연설에서 "선진국 경제, 특히 유럽과 미국 경제에 먹구름이 끼어 있다"면서 "세계 각국이 함께 힘을 모아 과감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금융 불안정과 잠재적인 수요 붕괴를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등 아시아, 유럽의 자금 회수에 취약
유로존 위기에 아시아 시장에서 자금이 급속히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유럽의 대형은행 HSBC 최고경영자(CEO) 스튜어트 걸리버는 유럽을 뒤흔드는 재정위기로 부실 우려가 커진 유럽 은행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자금을 대거 회수, 아시아 지역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걸리버 CEO는 "아시아 은행들이 유럽 은행을 중심으로 한 외국 은행에 자금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어 신용 경색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자금난에 시달리는 유럽 은행들이 자본 조달비용을 높이거나 급격히 자금을 회수하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싱가포르, 홍콩의 은행이 유럽 은행의 자금에 가장 많이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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