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중동 특파원 로버트 피스크는 21일자 칼럼에서 카다피가 '생포'됐다가 곧 숨을 거둔 것이 영국 등 서방 국가들에게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리라고 말했다. 과거 서방과 카다피 간의 관계가 우호적이었을 때 카다피의 반대파 탄압과 고문 등의 행위를 묵인해준 어두운 역사를 겨냥한 것이다.
피스크는 상황에 따라 카다피를 악마라고 비난했다가 신뢰할 만한 지도자로 추켜세우는 등 그때 그때 달랐던 서방의 이중적 태도를 지적했다. 그는 카다피와 서방 간의 뿌리깊은 애증의 역사를 일별하며 그의 사후 리비아가 과거 이탈리아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것과 같이 서방의 석유자본과 금융자본에 의해 지배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또한 제기했다.
다음은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원문 보기) <편집자>
▲ 리비아 제3의 도시이자 반군의 거점 중 하나인 미스라타로 옮겨진 카다피의 시신. ⓒ로이터=뉴시스 |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다고 카다피를 비난할 순 없다
서방은 그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를 증오했다. 중동 특별대사인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그에게 흠뻑 빠졌을 때 우리는 그를 다시 사랑했다. 이어서 우리는 그를 다시 증오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블랙베리' 휴대폰을 통해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매우 좋아했고 우리는 또다시 그를 어느 때보다도 증오했다. 그가 살해되지 않았기를 기도하자. '생포 과정에서 입은 부상으로 사망했다'니 그게 무슨 뜻일까?
그는 마피아 두목 돈 콜레오네와 도널드 덕의 광기어린 조합이었다.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톰 프리드먼이 사담 후세인에 대해 내렸던 평가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사열식을 지켜봐야 했고, 그의 연설을 듣고 입술을 깨물어야 했으며,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리비아군의 탱크와 해병대, 미사일에 대해 기사를 써야만 했다.
우리는 그의 해병대원들이 수도 트리폴리의 녹색광장에서 난리를 치는 것을 액면 그대로 평가하면서 그것이 이스라엘에 실제적인 위협이라도 되는 양 받아들이기도 했다. 블레어 전 총리가 카다피는 대량살상무기(WMD)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우리를 설득하려 한 것도 (성공하진 못했지만) 이와 비슷하다. 리비아는 공중변소도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제 그는 갔다. 이드리스 1세 왕정을 무너뜨리고 외교가의 사랑을 받았던 리비아군 대령이었고 믿을 만하다고 여겨졌던 사람, 그리고 나서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A)에 무기를 대줬다는 이유로 혐오받았던 사람, 그리고 다시 사랑받았던 사람, 그리고, 그리고….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럼 그는 어떻게 죽었나? 저항을 시도하다가 총에 맞아서? 하긴 우리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쳬스크 부부의 죽음도 받아들였는데 왜 카다피라고 그렇게 못하겠나? 왜 독재자가 그런 식으로 죽어야 했나? 이는 흥미로운 질문이다.
NTC에 있는 우리의 친구들이 카다피의 죽음을 알렸나?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나 아니면 악당의 명예로운 최후답게 적들의 손에 죽음을 당했나? 알 수 없다. 재판도 열리지 않고 '위대한 지도자'의 끝없는 연설도 없으며 그의 정권에 대한 변호도 없다는 사실에 서방은 얼마나 안도했겠나. 재판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은 투옥과 고문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우리가 카다피에 대해 비굴하게 굴었던 때는 떠올리지 말자. 30년도 더 전에 트리폴리에서 아일랜드에 플라스틱 폭탄을 보내고 리비아 내 아일랜드 국민들을 보호하던 IRA 관계자를 만났을 때, 리비아인들은 매우 행복해했다.
왜였을까? 카다피는 당시 제3세계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통치방식에 익숙했고 그의 잔혹함에 익숙했다. 우리가 묵인하자 이는 '정상적인' 일이 됐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서라도 그의 사악함에 대한 조사는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카다피 정권에 의해 가해진 고문에 대한 사법적 증거 수집이 끝나는 것은 영국 정부 입장에서는 (물론) 좋은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고문 행위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영국인 여성도 이제는 기소될 위험이 없어지지 않았나? (이름은 밝히지 않겠지만 필자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카다피의 사망 이후 그의 동료들과 잘 지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과거를 잊지는 말자. 카다피는 리비아의 이탈리아 식민통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리비아인이 길을 가다가 이탈리아인을 만나면 옆으로 비켜서서 길을 비켜줘야 했고, 리비아인의 영웅 오마르 무크타르는 공개처형당했고, 리비아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테러리즘'으로 간주됐던 불쾌한 식민지배 말이다.
석유 기업가들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나오신 신사숙녀분들은 곧 이처럼 상전 대우를 받을 것이다. 리비아 국민들은 똑똑한 사람들이다. 카다피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자신이 더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이 부족주의적인 사람들이 갑자기 '세계화'되고 달라질 거라는 생각은 우스꽝스럽다.
카다피는 '미쳤다'는 평가가 딱 들어맞는 아랍 권력자 중 하나였지만 때때로는 멀쩡한 말도 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을 신뢰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이미 아랍에서 너무나 많은 땅을 도둑질했다고 생각했고 (정확하다!) 아랍 세계를 진정으로 신뢰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로 기묘한(odd) 인물이었다.
카다피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는 살해됐나? 그는 '저항'했나? 걱정할 필요 없다. 클린턴 장관은 그가 "살해됐다"는데 대해 매우 기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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