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는 19일(현지시간) 경찰 추산 10만 명 이상이 긴축안 반대 시위를 벌였다. 크레타 섬에서도 2만 명이 모였고, 테살로니키, 볼로스, 라미아, 파트라스 등지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고 경찰은 밝혔다.
정부 청사는 폐쇄됐고 은행, 상점, 약국, 병원 등도 문을 닫았다. 대중교통도 파행 또는 차질을 빚었다. 특히 항공관제사들이 12시간 예정의 파업에 돌입하면서 이날 오전 한때 모든 국내선 및 국제선 항공기의 운항이 중단됐다. 나라 전체가 멈춰선 듯한 모습이었다.
공공부문 노조의 파업으로 우체국, 법원, 세관 등도 업무를 하지 않았다. 공무원노조는 쓰레기 매립지에 대한 봉쇄를 풀지 않았다. 전날 정부가 환경미화 공무원들에 대해 업무복귀 지시를 내리면서 불응시 체포‧기소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놨지만 먹히지 않았다.
총파업을 주도한 것은 민간부문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그리스 노동자총연맹(GSEE)과 공공부문 최대 노조인 공공노조연맹(Adedy)이다.
아테네의 시위대들은 재정긴축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의회 앞으로 진출해 화염병을 던지며 경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GSEE의 고위간부 니코스 키오우초키스는 "만약 의원들에게 인간성, 품위, 그리스에 대한 자부심이라는 것이 남아있다면 그들은 법안을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그리스 정부가 노조와 더 이상의 대화를 통해 대안적인 방법을 찾으려 하지 않는 대신 재정긴축안이 불가피하다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시위대는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구제금융을 빌미로 복지‧노동권 약화를 요구한다며 국제 금융기구에 반감을 표하기도 했다.
스스로 공공부문 노동자라고 밝힌 아키스 파파도풀로스(50)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그런 방법으로는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될 것이며 부자는 더 부유하게 될 뿐이다"라며 "도움은 사양하겠다. 당신들이 나를 '구제'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송은 대규모 시위대 중 폭력 행위에 가담한 사람은 200명 내외의 소수지만 이들에 의해 시위가 '납치'됐다고도 보도했다. 경찰은 최루탄을 동원해 화염병과 돌을 던지는 시위대에 대한 진압에 나섰다. 아테네에 집결한 경찰력은 7000명 이상으로 알려졌다.
▲ 재장긴측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대들이 19일(현지사간) 그리스 의회 의사당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그리스 의회, 재정긴축안 1차 통과…20일 최종표결
하지만 의회는 이날 재정긴축안에 대한 심의를 진행해 법안을 1차 통과시켰다. 긴축안이 입법되면 공무원 급여는 15% 삭감되고 공공부문 노동자 3만 명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세금은 인상되고 연금은 깎이며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도 제한된다.
정원 300명인 그리스 의회에서 여당의원 154명은 모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 여당 의원이 사퇴 의사를 밝히고 다른 여당 의원 두 명도 반대 투표를 공언했지만 말뿐이었다.
의회는 20일 상세 논의를 거쳐 법안에 대한 최종 표결을 진행한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그리스가 재정적자 문제 해결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하며 의회를 압박했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건물을 점령하고 거리를 쓰레기로 뒤덮으며 항만을 마비시킴으로써 나라를 협박했다"고 시위대를 비난하기도 했다.
에반겔로스 베니젤로스 재무장관도 이날 의원들에게 "우리는 최악의 위기를 피하기 위한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투쟁을 하고 있다"면서 "오늘부터 23일까지가 고비중의 고비"라고 말했다.
오는 23일은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열리는 날이다. 이날 EU 국가 지도자들과 금융기관 수장들은 새로운 구제금융 패키지 등 유로존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해 논의한다. 이와 관련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19일 독일을 방문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관계자들을 만났지만 면담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EU 내에서는 그리스가 재정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게 되면 스페인, 이탈리아 등 다른 유로존 국가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리스는 국내총생산(GDP)의 162%에 달하는 정부 재정적자와 3년째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고통받고 있다.
이 때문에 유로존 국가들은 IMF, ECB, EU 3자, 소위 '트로이카' 실사단을 구성해 그리스 상황을 진단하고 구제금융 판단을 하면서 강력한 재정적자 감축 방안을 요구했지만 그리스인들은 '독한 약이 오히려 환자를 죽이고 있다'면서 총파업까지 벌이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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