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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다모클레스의 검' 아래서 살아갈텐가?"

고르바초프, 미소 정상회담 25주년 맞아 핵무기 폐기 촉구

지난 11일은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역사상 최초로 미소 정상회담이 열린지 25주년이 되는 날이다.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만난 이 회담은 냉전의 종식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역할을 했다.

당시 세계를 분할했던 양대 강국은 이 회담에서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모든 핵무기의 폐기'라는 대원칙에 공감했다. 이는 1991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과 지난해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새 협정(New START)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핵무기 없는 세계' 비전에도 불구하고 핵의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세계에는 아직도 2만 개가 넘는 핵탄두가 존재한다. 한국과 미국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북한의 핵능력도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지난 3월 일본 후쿠시마(福島) 사태 이후 세계적으로 핵에 대한 공포심과 불안감이 높아졌지만 달라진 것은 사실상 거의 없다.

1986년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의 주역 고르바초프는 회담 25주년을 앞둔 지난 9일 세계 몇몇 언론에 기고한 글 '핵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핵무기를 가능한 빨리 폐기할 것을 촉구했다.

고르바초프는 인류가 더 이상 핵무기를 지속하는 것은 안전의 측면에서나 경제적 비용의 측면에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레이캬비크 회담의 정신에 따라 미국, 러시아는 물론 다른 핵보유국들도 점차적으로 핵 군축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실을 고려한 이행 로드맵을 단계별로 제시하기도 했다.

199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한 고르바초프의 글을 요약 정리했다. (☞원문 보기) <편집자>


핵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Nuclear Arms)


25년 전 10월 나는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과 레이캬비크에서 마주앉아 있었습니다. 레이건과 나는 미국과 소련의 공포스러운 핵무기들을 감축시키고 최종적으로는 2000년까지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레이건과 나는 문명화된 국가들이 야만적인 무기를 안보의 핵심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신념을 공유했습니다. 우리의 높은 열망은 레이캬비크 회담에서는 달성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정상회담은, 나의 회담 상대였던 레이건의 표현을 빌자면 "더 안전한 세계를 위한 주된 전환점"이었습니다. 그 후 몇 해는 세계에서 핵무기를 모두 없애자는 우리의 공유된 꿈이 실현될지를 결정짓는 시기였습니다.

비판가들은 핵무장 해제에 대해 좋게 봐도 비현실적이고, 나쁘게 보면 위험한 유토피아의 꿈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냉전 시기의 '긴 평화'야말로 핵억지력이 큰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임을 증명한다고 지적합니다.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해본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견해에 강력히 반대합니다. 핵억지력은 언제나 어렵고 위태로운 평화의 보증수단입니다. 핵무장 해제를 위한 강제력 있는 계획을 도출하는데 실패함으로써 미국, 러시아와 다른 핵보유국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고 필연적으로 핵무기가 사용되고야 말 미래를 가져오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재앙은 반드시 방지돼야 합니다.

5년 전 나와 조지 슐츠‧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등은 핵보유국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핵억지력은 위험하고 신뢰할 수 없는 개념이 됐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역효과만 낳은 '선제공격 전쟁'이나 불충분한 조치임이 입증된 '효과적 제재'가 아니라, 핵무장 해제를 향한 신실한 발걸음만이 군비통제와 비확산 문제에 대한 강력한 합의의 바탕이 되는 상호 안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레이캬비크에서 쌓인 신뢰와 이해는 두 개의 역사적인 조약으로 가는 다리를 놓았습니다. 1987년 중거리핵무기폐기협정은 당시 유럽의 평화를 위협했던 가공할 신속타격미사일을 폐기했습니다. 그리고 1991년 체결된 START-Ⅰ은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를 10년에 걸쳐 80%까지 줄였습니다.

하지만 핵무장 해제를 위한 신뢰할 만한 노력 없이 군비통제와 비확산이 더 진전될 전망은 어둡습니다. 레이캬비크에서 보낸 이틀[1986년 10월 11~12일] 동안 내가 배운 것은, 군비 철폐를 위한 대화는 힘든 만큼 건설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국제 현안들을 다루며 레이건과 나는 신뢰와 이해를 쌓았고 이는 통제되지 않는 핵무기 경쟁의 완화에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냉전의 종식은 국제사회의 힘이 더 혼란스럽게 재배치되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핵무기 보유국들은 1968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요구에 따라야 하며 신뢰의 기반 위에서 군비 철폐를 위한 협상을 재개해야 합니다. 이는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핵폭탄을 제조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핵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외교관들의 외교적‧도덕적 자원을 증대시켜줄 것입니다.

핵무장 해제를 위한 진지한 전세계적 노력만이, 핵억지력 이론은 사장된 것이라는 국제적 합의에 필요한 확신과 신뢰를 제공할 것입니다. 우리는 핵보유국과 비보유국으로 나뉘는 차별적인 현 체제의 속성을 정치적으로든 재정적으로든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습니다.

레이캬비크 회담은 대담함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1986년 당시의 조건은 군축 협상에는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1985년 내가 소련의 지도자가 되기 전 냉전 양대 강국 사이의 관계는 최악이었습니다. 레이건과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접촉과 면대면 상호작용을 통해 건설적인 정신들을 모아나가는데 성공했습니다.

오늘날의 지도자들에게 부족해 보이는 것은 비핵화를 평화로운 세계질서의 중심으로 재도입하는데 요구되는 신뢰 구축을 위한 대담함과 비전입니다. 경제적인 압박과 체르노빌 사태가 [당시] 우리의 행동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왜 오늘날의 '대침체'와 후쿠시마 원전의 재앙적 멜트다운 사태는 비슷한 결과를 유도해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뉴시스

미국의 첫걸음은 1996년에 체결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비준하는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핵확산을 막고 핵전쟁을 피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인 이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지금은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한 연설['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비전을 밝힌 연설]을 이행해야 합니다. '위대한 소통자'(Great Communicator)로 불린 레이건 대통령의 뒤를 이어 미 상원을 설득하고 CTBT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공식화해야 합니다.

이는 아직도 [CTBT 가입에] 저항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 즉 중국, 이집트, 인도, 인도네시아, 이란, 북한, 파키스탄 등에 CTBT 가입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 세계가 어떤 환경에서도(대기 중이든, 해저든, 대기권 밖이든, 땅 속이든) 핵실험을 하지 못하게 되는 날이 가까워질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미국과 러시아가 체결한 'New START'의 후속 조치로 더 많은 군축, 특히 전술 핵무기와 비축 핵무기의 감축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들 무기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돈만 잡아먹으며 안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 단계는 미사일방어체제(MD)의 제한과도 관계돼 있습니다. MD는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의 성과물]을 위협하는 핵심 이슈 중 하나입니다.

제네바 군축회의에서 오랫동안 정체돼 있는 '무기용 핵분열 물질의 생산금지에 관한 조약'(FMCT)과 내년 한국에서 개최되는 핵안보 정상회의의 성공은 위험한 핵물질로부터의 안전을 확보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대량살상무기(핵, 화학, 생물학무기 등) 확산 방지와 제거를 위한 2002년의 '글로벌 파트너십' 또한 내년 미국 회의에서 개정되고 확장돼야 합니다.

우리의 세계는 너무도 군사화된 채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의 경제적인 조건에서 핵무기는 돈을 낭비하는 지긋지긋한 '구멍'이 됐습니다. 만약 경제 위기가 계속된다면 (아마 그럴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 러시아와 다른 핵보유국들은 다자간 군축을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대화 채널을 만들든, 이미 존재하는 유엔 군축위원회 같은 통로를 활용하든 말입니다. 이런 협의를 통해 더 적은 돈을 들이고도 더 효과적인 안보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재래식 군사 전력 문제도 다뤄져야 합니다. 재래식 무기는 많은 부분 전지구적으로 배치된 막대한 미군 병력에 의해 강화돼 왔습니다. 우리는 유럽재래식무기감축조약(CFE)을 진전시켰듯이 전세계적으로 군사력과 군사 예산의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해야만 합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이미 "모든 남성과 여성, 아이들이 핵무기라는 '다모클레스의 검'[시칠리아 섬의 고대 도시국가 시라쿠사의 다모클레스 왕이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말총 한 가닥에 칼을 매달아 놓고 그 밑에 앉아있는 것과 같다고 한 고사에서 유래됐다] 아래에서 살아간다. 칼을 매단 가느다란 줄은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50년이 넘도록 정치인들이 이 줄을 어떻게 수선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하는 동안 인류는 불안한 눈으로 이 치명적인 진자운동을 지켜봐 왔습니다.

레이캬비크의 사례는 점진적인 방법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5년 전 우리의 노력은 오직 모든 폭탄들이 야만의 박물관에 진열된 과거 노예상인들의 쇠사슬과 세계대전의 독가스 옆에 놓일 때에만 입증될 수 있을 것입니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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