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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리 마타이는 현실에 뿌리 둔 환경운동가였다"

아프리카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 암으로 별세

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케냐의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가 25일 밤 나이로비의 한 병원에서 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마타이는 1977년 환경단체 '그린벨트 운동'을 창설해 케냐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의 나무심기 운동을 이끌었고, 이 공로로 200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정치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인물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 왕가리 마타이 2006년 모습 ⓒAP=연합뉴스

마타이는 무분별한 벌목으로 훼손된 아프리카의 밀림을 되살리는 한편, 가난한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주자는 목적으로 그린벨트 운동을 시작했다. 나무심기 운동은 1986년 범아프리카 그린벨트 네트워크로 확대됐고, 우간다·말라위·탄자니아·에티오피아 등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이 운동을 통해 2003년까지 아프리카 각지에 심은 나무가 3000만 그루에 달한다.

마타이에게 환경운동은 개발 이권을 독점해 민생을 피폐시킨 정권에 맞서는 민주화 운동이자 여성 인권운동이었다. 24년간 케냐를 지배했던 모이(Daniel Arap Moi) 독재 정권은 마타이를 수차례에 걸쳐 체포했다.

아울러 마타이는 케냐 전국여성위원회 위원, 국제연합 사무총장 군축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1998년에는 '2000년 연대'를 결성해 아프리카 빈국의 이행 불가능한 채무를 2000년까지 탕감하고, 서구 자본으로부터 아프리카 삼림이 강탈당하는 것을 막자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한 후 2002년 98%의 압도적 지지율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듬해에는 케냐 환경·천연자원·야생생물부 차관으로 임명되었다.

다음은 언론인 출신으로 현재는 국제 구호단체 해외개발가톨릭기구(CAFOD)의 나이로비지사에서 일하는 조지프 카비루가 26일 <가디언>에 쓴 추모의 글이다.

왕가리 마타이는 나의 영웅

나는 동아프리카의 최대 삼림 지대인 케냐의 마우(Mau) 지역에서 자랐다. 내 고향 마을에서 시작한 몰로 강은 [아프리카 최대의] 빅토리아 호수로 흘러들었다. 식민지 시대의 잔재인 '샴바'(shamba. 대농원) 체제는 우리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삼림 지대 안에서 곡식을 경작하게 하는 대신 그 숲에 나무를 심고 가꾸도록 했다.

이론적으로 볼 때 샴바는 땅이 없는 이들이 식량을 얻을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숲도 보존하는 윈-윈 시스템이었다. 우리 가족도 샴바를 통해 곡식, 땔감, 식수를 얻었다.

그러나 왕가리 마타이는 샴바 체제를 강력히 반대했다. 삼림 지대 안에서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하면 새로 나무를 아무리 많이 심어도 오랜 세월 형성된 생태계를 서서히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타이는 2005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반대 논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환경을 보전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지속가능한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에 대한 의무다."

그가 그린벨트 운동을 창설했던 1977년만 해도 지속가능성(environmental sustainability)과 생태계 보호라는 개념은 케냐의 시골 마을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생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경고는 정확했던 것으로 판명됐다. 마우 삼림 지대는 점점 줄어들었고 마우 숲에서 발원하는 많은 강들은 말라갔다.

그러나 마타이는 끈기 있게 노력했다. 또한 그의 운동은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식량, 물]을 얻어야 하는 빈민들이 [샴바 체제를 부정함으로써] 직면한 딜레마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복잡한 환경 문제들이 어떻게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하는데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자신의 운동에 동참하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마타이는 삼림 지대 밖에 있는 토지, 땔감, 식수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농촌 지역의 커뮤니티들과 힘을 모았다. '더 이상은 안 된다'(Enough is enough) 캠페인을 시작해 마우 삼림 지대에서 발원하는 강이 말라가면 케냐의 호수와 골짜기 주변의 농업과 관광 산업이 어떤 피해를 입게 될지를 정부 당국에 제시했다.

나는 정부가 벌목을 철저히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목재 산업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마타이는 "제재소가 문을 닫고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생기는 고통을 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물이 필요하고 이 숲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타이는 부패 문제에도 두려움 없이 맞섰다. 남성들이 지배하는 케냐 당국자들에게 그는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마타이를 "저 여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지도자들이 기후변화 문제에 늑장을 부릴 때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금년 말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릴 예정인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참석자들은 그의 공헌을 그리워할 것이다. 마타이는 참석할 수 없게 됐지만 그들은 마타이가 남겨 놓은 유산을 진척시키고 구축할 커다란 동력을 얻었다.

구호단체에서 일하는 나는 이미 마타이의 진정한 유산을 목격하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브라질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 농촌 지역의 보통 사람들은 마타이의 뜻에 따라 벌목 기업과 싸우고 그 기업들과 당국의 결탁과 부패를 고발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숲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마타이는 복합한 환경 문제를 설명할 때에도 진성성 있는 웃음을 잃지 않았던 사람, 내 고향의 숲을 보호하기 위해 단호했던 사람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우리 가족은 처음에는 그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방식을 통해 마타이는 우리의 삶을 지켜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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