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코스피는 전 장보다 63.77포인트(3.52%) 하락한 1749.16으로 거래를 마쳤다. 1800선은 물론 1750선마저 무너진 것이다. 원.달러 환율도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급등, 1100원선을 넘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 장보다 30.5원 오른 1107.8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현재 유럽은 그리스가 사실상 디폴트에 빠져도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그리스의 1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90%가 넘고, 2년짜리는 70%, 10년짜리도 20%가 넘어 시장에서는 이미 디폴트로 간주하고 있다.
▲ 유로존 부채위기가 신뢰의 위기까지 겹쳐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신뢰의 위기를 차단하려면 유로존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적극적인 자금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은 지난 9일 금리 동결을 선택한 장 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 ⓒ로이터=뉴시스 |
문제는 그리스에 대해 유로존 등이 1차로 구제금융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2차 구제금융을 해주기로 합의했는데 디폴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 됐다는 점이다. 구제금융은 근본대책이 아니라 부도를 간신히 넘기는 미봉책일 뿐,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 게 된 것이다.
그리스뿐 아니라, 그리스처럼 상대적으로 경제규모가 적은 나라들인 포르투갈, 아일랜드도 비슷한 상황이며, 이제는 훨씬 규모가 큰 유로존 중심국들도 흔들리고 있다. "유럽에 부채위기라는 흑사병이 돌고 있다"고 중국 언론들의 표현이 지나치지 않게 느껴질 정도다.
국내외 금융시장에서도 3년전 미국의 대형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며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15일을 앞두고 또다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임박했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3년전에는 미국이 진원지였다면, 지금은 유럽이 진원지가 된 것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럽 내에서는 위기를 극복할 기금을 주도할 곳이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밖에 없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은 올해 들어 모든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있다. 우리 살기도 힘든데 왜 그리스 같은 나라를 앞장서 돕느냐는 국민의 불만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로존 차원에서 돈이 들어가는 해법이 있다고 해도, 독일 내부에서조차 정치적으로 합의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다가는 모두가 함께 망하는 벼랑끝에 와있다는 것이 국민의 눈에도 훤히 보일 정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특단의 합의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치러야 할 대가는 더욱 커진 뒤가 된다.
위기의 선진국들, 중국에 매달리는 신세
그러다보니 이탈리아 등 부도 위기에 몰린 유로존 나라들은 현재 세계에서 가용자금이 가장 풍부한 중국에 아쉬운 눈길을 보내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정부부채만 우리돈으로 2000조원이나 되기 때문에 중국이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면 이탈리아 국채를 최소한 몇 조원은 사줘야 한다. 하지만 립서비스 수준은 몰라도 중국이 실제로 그 정도의 돈을 투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3조 20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자랑하는 중국이지만 안전한 투자가 제1의 원칙이라는 점에서 부도위기에 몰린 국채를 대량 매입하는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급기야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유로존 위기가 곪아 터지기 직전으로 악화되고 있다"면서 "1~2년 뒤에 올 위기 정도가 아니라, 며칠 내에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위기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번 위기가 터지면 전세계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면서 이제 유로존 위기는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유럽중앙은행(ECB)에 달렸다는 시각을 보였다.
크루그먼 교수는 "ECB가 중앙은행으로서 자금을 공급하고 금리를 낮추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인지, 아니면 유럽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살기 위해 돈풀기에 주저할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크루그먼 교수가 이처럼 ECB의 역할을 강조한 이유는 유로존 위기가 부채 위기 이전에 '신뢰의 위기'로 인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크루그먼 교수에 따르면, 부채는 많지만 재정은 비교적 양호한 이탈리아까지 부도위기에 몰리는 것은 신뢰의 위기에 따른 '자기충족적인 악순환'에 빠졌기 때문이다. 일종의 '뱅크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과 이탈리아의 차이
크루그먼 교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로존의 중심국들마저 부도 위기에 몰린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투자자들이 일단 한 나라가 부도가 날 것으로 우려하게 되면, 이 나라의 채권 매입을 꺼려하게 되고, 매입하려면 이자를 보다 많이 줘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이 나라의 재정상황은 실제로 더욱 나빠지며 부도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렇게 신뢰의 위기는 자기충족적인 예언이 된다는 것이다.
나라의 부도 위기는 금융위기로 전환된다. 통상 그 나라의 은행은 국채를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 국가들의 위기가 터지면 금융위기 형태가 될 것으로 보는 것도 이런 이유다.
같은 유럽 국가면서도 영국처럼 독자적인 화폐를 갖고 있는 경우는 이런 과정을 차단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국채를 매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런 조치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이미 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때는 인플레 가능성도 의문이 있지만).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부도로 뻔히 가는 상황보다는 인플레 위협이 차라리 낫다"고 말한다.
반면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유로존에 가입해 영국처럼 손을 쓸 수 없다. 이런 나라들은 자기충족적인 위기에 빠지면 대처하기 쉽지 않다. 이것이 재정상황이 상대적으로 더 나쁘다고 볼 수 있는 영국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금리가 두 배나 높아진 이유다.
이때문에 크루그먼 교수는 "ECB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독자적인 화폐를 가졌을 때 할 일을 대신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CB, 최후의 구원투수로 나설 수 있을까
사실 ECB는 몇주전에 이런 조치를 취해 일시적이나마 시장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ECB는 방만한 재정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들을 구제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정치적 압력에 시달렸다. 이런 압력 때문에 ECB가 더 이상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를 매입해줄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자 시장은 다시 얼어붙었다.
게다가 ECB는 물가안정을 최우선하는 전통이 강하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인플레이션 위협을 피하겠다면서 함부로 돈을 풀 수 없다는 입장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렇게 흠잡힐 일 없는 정책만 고집하겠다는 태도 때문에 유로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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