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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 문제 해결책은 정치적 타협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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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 문제 해결책은 정치적 타협뿐"

[월러스틴의 '논평'] 국민국가 시대의 종말…대세는 '더 많은 자치'

쟈코뱅주의의 끝? 소수자와 국가, 그리고 폭력
(The End of Jacobinism? Minorities, States, and Violence)

지금의 세계에서 '소수자'가 없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국가에나 인종, 지역, 언어, 민족(ethnicity) 또는 이런 특성들의 결합으로 인해 구분되는 집단이 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집단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집단도 있다.

'소수자'들은 언제나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권리가 적다. 이런 기초적인 면에서 이들은 억압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보통 이들은 이런 저런 방법을 통해 국가의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동등한 지위를 획득하려고 노력한다. 소수자란 수적인 개념이 아니다. 국민 대다수가 '소수자'인 경우도 종종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사례들이 있다. 터키의 쿠르드족, 영국 얼스터 지방의 천주교도들, 스페인의 바스크족, 남미 안데스 산맥 지역의 원주민들, 미국의 흑인들, 인도의 불가촉천민, 중국의 티벳 사람들, 수단의 남부지방 주민들, 모로코의 사하라 부족민들 등. 끝도 없다.

그러나 더 나은 직장을 가질 권리,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고 고유의 종교를 믿을 권리, 입법부에 적절한 대표를 내보낼 권리, 자율적인 단체를 설립할 권리 등 더 많은 권리를 얻기 위한 소수자들의 노력은 많은 경우 (특히 지난 40년간) 좌절됐고, 그러자 그들은 폭력적으로 변했다. [이런 경우] 만약 소수자들이 특정 지역을 근거로 모여 있다면 때때로 이들은 분리독립을 추구했다.

▲ 지난 2005년 스페인 경찰이 바스크독립당 '바타수나' 지지자들의 시위를 제지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정부는 보통 '소수자'들의 집단적 권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쟈코뱅주의를 따르고 있다. [쟈코뱅주의란 나라의 모든 시민들이 국민(nation)으로, 이미 그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주장이라고 월러스틴 교수는 정의한다. (☞관련 글 : 월러스틴 1월 15일자 논평)] 국가는 각 개인들과 직접 소통할 도덕적인 권리를 주장하며 매개 집단이나 기관을 거쳐가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무장 봉기를 통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정치적으로 조직된 소수자들과 직면했을 때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처음에 국가는 무력을 사용해 봉기를 진압하려 한다. 보통 이런 방식은 먹힌다. 국가는 대체로 그들을 진압하기 위한 충분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고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경우에는 봉기를 지속할 수 있을 만큼 잘 조직돼 있는 집단도 있다. 이런 경우 매우 오랫동안 지속되는 내전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정치적인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하느냐 마느냐 선택은 국가의 몫이다. 정치적 해결이란 타협을 의미한다.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소수자'들을 [국가 내로] 재통합하는 대신 지역 내 자치권을 허용하는 등 충분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타협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군사적인 정체 상태, 소수자들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일정 수준 이상의 국제정치적 지지, 그리고 양쪽 모두가 지쳐 있을 것 등 몇 가지 요소들이 충족돼야 한다. 이러한 타협은 영국의 얼스터 지방에서 일어났고, 터키와 스페인에서 [장차]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수단 정부는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는 바람에 타협에 실패]했고 결국 남수단은 독립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티벳에서]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막고 있는 그런 사태다.

어디에서나 정치적 상황은 다르지만, 더 많은 권리를 위한 '소수자'들의 주장이 이 세계체제의 지문화[geoculture.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상의 개념이며 체제의 작동원리 중 정치·사회문화적 부분으로 세계체제 내의 공통된 기제]에서 보편적으로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쟈코뱅주의는 이미 쇠퇴했다. 국가들은 정치적 '타협'을 위해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 <월러스틴의 '논평'>은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매달 1일과 15일 발표하는 국제문제 칼럼을 전문번역한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글을 배급하는 <에이전스글로벌>과 협약을 맺고 월러스틴 교수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9월 1일 논평 원문보기)

* 저작권 관련 알림: 이 글의 저작권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에게 있으며, 배포권은 <에이전스 글로벌>에 있습니다. 번역과 비영리사이트 게재 등에 필요한 권리와 승인을 받으려면 rights@agenceglobal.com으로 연락하십시오. 승인을 받으면 다운로드하거나 전자 문서로 전달하거나 이메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단 글을 수정해서는 안 되며 저작권 표시를 해야 합니다. 저자의 연락처는 immanuel.wallerstein@yale.edu입니다. 월러스틴은 매월 2회 발행되는 논평을 통해 당대의 국제 문제를 단기적인 시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합니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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