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불리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에 노동 분야 전문가 앨런 크루그 프린스턴대 교수를 지명한 것도 그만큼 미국의 고용실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공식 실업자만 노동인구 10명 중 1명 꼴이며, 상근직처럼 변변한 일자리를 기준으로 보면 6명 중 1명 꼴로 '사실상 실업자'로 분류되고 있다.
▲ 버락 오마바 대통령이 8월31일(현지시간) 의회에 일자리 창출을 위한 도로 건설 예산을 의회가 조속히 통과시켜줄 것을 촉구하면서 멋진 제스처를 취해보였다. 9월8일에 일자리 창출을 위한 야심찬 대책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실제 효과보다 정치적 쇼가 아니냐는 따가운 지적도 나오고 있다.ⓒAP=연합 |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공식 실업자 중 거의 절반이 6개월 이상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장기실업자들이라는 점이다. 장기실업자 비율이 이렇게 높은 적은 미국에서 대공황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이처럼 심각한 실업사태를 해소하지 않고는 어떤 경기부양책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크루거 교수가 상원 인준 청문회를 통과하면 장기실업자 구제와 일자리 창출에 역점을 두고 자문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현재 금융시장에서는 미국의 노동절(5일)이 낀 8일 오후 8시(우리 시간으로 9일 10시) 오바마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을 포함한 야심찬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는 기대가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 형식으로 경기부양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오바마가 발표할 경제대책은 고용 창출을 하는 기업에 대한 세제혜택과 산업지원 등 기업들의 돈이 나오게끔 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고용 확대 방안과 함께 도로와 학교 등 사회기반시설 확충, 그리고 특히 미국의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주택압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지원책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벌써부터 공화당은 새로운 재정지출이나 증세를 수반하는 경기부양안은 반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사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집권 후반기에 일자리 창출에 역점을 두겠다는 오바마의 의중 자체가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고 보고 있다.
오바마는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노동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노동계 쪽에서 가장 불만이 큰 실업문제 해소에 좀 더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정치적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식 발표를 앞두고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핵심 인프라 프로젝트를 통해 100만여명의 실업자들이 직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는 이번에 발표될 방안들도 기대한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번에 나올 대책은 어느 때보다 기업이 고용과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제 미국에서 실물시장에 풀 돈이 있는 곳은 기업뿐이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대책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경기부양을 하느라 빚더미에 올랐고, 중산층과 서민 역시 빚과 일자리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경제의 3대 주체 중 정부와 가계는 이제 쓸 돈이 없는 상황에서 돈 나올 것은 기업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자리 상실 두려움, 2년전 수준으로 회귀
하지만 진보진영에서는 그동안 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이 부족해서 고용와 투자에 인색한 게 아니라고 반박한다. 투자 대비 수익이 어느 정도 되는 사업 발굴이나 확장을 할 전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때문에 정부가 정말 일자리 창출을 원한다면, 기업에게 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일자리 나누기 등 실업자를 고용시장에 빨리 끌어들이는 과감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1일 <뉴욕타임스>도 미국의 고용불안이 기업에게 맡겨서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2년 여 동안 미국의 고용시장을 위축시킨 문제는 바로 기업이 '보수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업들이 한꺼번에 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단 해고된 노동자는 신규 채용을 하려는 기업을 찾기는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용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불안에 떨고 있다. USA투데이가 갤럽에 의뢰한 최근 여론조사는 이런 실태를 잘 보여준다.
"기업이 고용불안 원인인데, 기업에게 고용 창출 기대라니.."
지난 8월 중순 489명의 상근 또는 시간제 성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이 조사에서 응답자 30%는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을 우려한다"고 답했다. 경제위기가 고조됐던 2009년 8월 같은 설문에 31%가 이같은 응답을 했고, 지난해 중반 26%로 줄어들었다가 다시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한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극단적으로 이뤄지고, 사회보장의 많은 부분을 기업이 담당하는 미국 고용시장의 특성 때문에 노동자들은 해고뿐 아니라 노동시간, 임금, 후생복지 축소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다. 특히 후생복지가 축소될까봐 우려하는 사람들은 44%나 됐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일자리 자체를 잃을까봐 걱정이 더 많았다.
연소득 5만 달러 미만과 연소득 7만5000달러 이상의 노동자 가구들을 비교하면 거의 두 배나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해고와 노동시간 단축, 공장의 해외이전 등에 대해 우려했다.
<뉴욕타임스>는 "기업이 일부러 해고를 늘리려는 것도 아닌데, 노동자들이 쓸데없이 걱정한다고 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 씀씀이를 줄이면, 기업들의 매출도 감소해 결국 고용을 줄이기 시작하는 '자기충족적인 악순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오는 20, 21일 예정된 미국의 중앙은행 연준(Fed) 이사회에서 백악관이 주도하는 경기부양책을 뒷받침하는 통화정책이 나와 절묘한 정책조합을 이룬다면, 지난달 패닉 현상를 보인 우리 증시 등 세계 주요 증시를 상승세로 돌려놓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는 사업 영역을 찾지 못하는 한 '보수적 경영'을 지속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노동자의 고용불안'이 기업의 해고로 이어지는 '실업사태의 고질화'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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