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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어렵게 시작된 대화에서 자충수를 뒀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포커스']

2009년 말-2010년 상반기 미국 대북정책 : "전략적 인내"에서 "전략적 봉쇄"로

미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을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고 처음 부르기 시작한 건 2009년 늦가을 미국과 북한 사이 대화가 재개되리라는 기대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그해 8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에 들어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으며, 구금 중이던 아시아계 미국인 여기자 2명을 데리고 나왔다.

9월과 10월엔 중국 다이빙궈 국무위원과 원자바오 총리가 북한을 방문하여 경제문화사회 분야 교류 협력을 크게 늘리기로 합의하였고, 미국 스티브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을 방문, 강석주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재의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대화 테이블로 달려가는 건 북한 술책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한국 정부의 강력한 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을 존중해 온 미국으로선 2009년 말과 2010년 신년 벽두 서울에서 터져나오는 남북정상회담 관련 정보와 관변 논객들의 적극적인 발언에 당황스러워 했다. 2010년 2월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는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은 "전략적 인내"이며 '남북관계는 6자회담의 속도에 조응해야 한다'는 말로 이명박 정부의 이중성에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2010년 2월 말 한미전략대화를 위해 워싱턴을 찾은 유명환 장관은 6자회담 재개에 속도를 내달라는 게 방미의 주목적이라고 현지 특파원들에게 말했다. 6자회담을 개최하는 경로에 대해 거의 합의가 다 이루어졌었다는 관측이 무성하던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사건이 발생했다. 그 뒤 몇 달간 "전략적 인내"는 "전략적 봉쇄"의 방향을 향해 치달았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제재를 가하여 대화에 나오면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을 이끌어 가고 대화에 나오지 않으면 북한 정권은 경제적 어려움에 급속히 빠져들게 만들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 북한 김정일 정권이 붕괴하면 새롭게 부상하는 정치권력과 대화를 개시하면 된다는 "先압박, 後대화"가 주조를 이루었다.

점증하는 대화 재개의 수요

2010년 3월 천안함 사태 이후 "전략적 인내" 방침을 관둬야 한다는 주장은 거의 표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 내 분위기는 자신감보다는 답답함에 더 가까웠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대북정책 주무부서가 아닌 정책기획국에 '새로운 옵션(fresh option)'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동해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8월 초의 일이었다.

2010년 11월 중순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 11월 하순 연평도 포사격을 경유하며 미국은 이대로 북한을 방치하다간 더 큰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5월 그간 북한과의 접촉을 한사코 만류하던 이명박 정부가 베이징 비밀접촉을 통해 가까운 시일 내 3차례나 정상회담을 연달아 열자고 제안했음을 알고는 더 이상 한국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알고 반드시 중단시켜야겠다는 긴박성을 가지고 있다.

작년 11월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와 존 루이스 교수는 '북한 영변에 가서 목격한 최신식 우라늄 농축시설에 대해 가동 중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보고서를 냈지만 그것은 추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자행하고 그 물질이 농축우라늄이라고 발표한다면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전임 부시행정부보다 형편없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2012년 대선 캠페인을 앞두고 비핵화협상이 오히려 후퇴했고 북한 핵능력은 강화됐다는 비난은 받지 말아야 한다는 정치적 수요가 작용했다. 여기에 남북관계를 이대로 방치하다간 제2의 연평도 포격사태가 날 수 있다는 우려와 무엇보다도 북한이 협상을 할 의지가 있는지 고위급에서 직접 확인해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1년 6월 초 김성환 외교부 장관보다 3-4일 먼저 워싱턴에 도착한 위성락 평화교섭본부장과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은 미측 관계자들을 만나 사전 의견 조율에 나섰다. 이때 김태효 비서관은 미국이 대화 재개에 나서야 할 정치적 수요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조속한 미북고위 접촉 양해 입장을 전달했다. 미측에서 5월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 비밀 접촉 해명 요구를 미리 회피할 요량이었다.

김성환 장관 역시 미측으로부터 이제는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공식 통보받았다. 7월 말 ARF 회의에서 북한과 고위급 접촉을 추진하고 있으니 그 이전에 남북 대화를 갖기 바란다는 권고성 통첩을 받았다. 금년 6월 초 위성락 본부장이 중국을 방문한 것도 이미 미국과 중국이 7월 하순 ARF 발리 회의를 계기로 6자회담으로 향하는 대화가 열려야 한다는 합의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때 중국 우다웨이 부부장은 위성락 본부장에게 수일 내 김계관 부상이 베이징으로 나와 위성락 본부장을 만날 의향이 있음을 통보받았다. 위 본부장은 중국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김계관을 만나게 하려한다는 판단 하에 이 제안을 거부하였다. 이로써 한국은 미북 접촉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마지막 구실을 잃고 만다.

7월 2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남측의 위성락 평화교섭본부장과 북측의 이용호 외무부상을 만난 다음 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박의춘 북한 외상 회담, 그리고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마친 뒤, 힐러리 클린턴 장관이 직접 김계관 제1부상을 뉴욕으로 초청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지난 1년 반 동안 논의되었던 남북대화-미북접촉-6자회담의 3단계 접근법에서 남북대화는 하나의 징검다리도 되지 못한 진행이었다.

▲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왼쪽)이 7월 28일 미국 뉴욕의 유엔주재 미국대표부 앞에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미북 5 대 5 선제조치 제안, 앞으로 가기 위한 출구인가? 새로운 교착인가?

최근 연세대학교 문정인 교수는 <창비주간논평> 기고에서 북측은 "협상을 단순화하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북·미간 최고위급 당국자 회담, 즉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필자도 김계관 부상이 그런 수준의 제안을 했을 것으로 본다. 2000년 10월 북미 공동코뮤니케와 9.19 공동성명에 따른 비핵화, 관계정상화, 평화조약 체결을 언급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상기시켜 빡빡한 회담 분위기를 풀어보기 위한 전술적 발언에 가깝다는 해석이 적절하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2009년 미사일 실험과 핵실험, 여기자 유인, 납치, 우라늄 농축 활동에 해명을 요구하며 북한이 6자회담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1) 미사일 시험발사 모라토리움, (2) 추가 핵실험 금지, (3) 농축우라늄 활동 중단, (4) IAEA 사찰관 복귀, (5) 대남 군사도발 금지 등 5가지를 요구했다. 북한은 앞으로 대화가 지속되기를 강력히 희망하면서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 5가지 선제조치를 계속 강조하자 자신들도 (1) 유엔 제재 해제, (2) 인도적 식량지원, (3) 지속적인 미북 접촉 및 회담, (4) 평화협정 논의 개시, (5) 관계정상화 논의 개시 등 5가지를 내놓았다.

그런데 적어도 필자의 판단으로는 미국의 5가지 요구는 앞으로 회담을 진전시키기보다는 미국이 강한 요구를 내놓았다는 인상을 주는 데 급급한 나머지 별 실효성도 의미도 없는 카드를 던져 북한이 맞대응하기 딱 좋게 만들어버린 우를 범하고 말았다. 미국의 요구는 6자회담 본회담이 열렸을 때 제기했다면 적격이었다. 그보다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시정시키는 행동을 요구했어야 한다.

즉, '당신들이 미사일 실험을 하고 핵실험을 함으로써 2007년 만들어낸 2.13 합의와 10.3 합의를 깼다. 6자회담 재개를 원한다면 그 합의를 원상회복하는 조치, 즉, 모든 핵 활동을 중단하고, 그 시설을 불능화시키며, IAEA 사찰관은 영변에, 국무부 실무 활동반은 평양의 고려호텔로 받아들여라. 북한이 원하는 제재 해제나 식량지원 문제는 6자회담이 재개되어 실질적인 핵 폐기 협상에 따른 구체적인 조치를 실행에 옮길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주장했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여 너무 욕심을 부리다가 그만 스스로 동등한 새로운 단계를 설정하고 만 것이다. 즉, 6자회담 재개 이전에 미북 협상을 통한 5 대 5 선제조치의 합의 및 이행이 그것이다. 미국의 요구를 아무런 조건 없이 북한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과거 잘못에 제한된 구체적인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대신 대단히 펑퍼짐하고 너무도 어벙벙하게 큰 요구를 내놓은 바람에 북한이 되받아칠 기회를 주고 말았다. 잘못된 선제조치(pre-steps) 요구로 미국 주도로 북한을 끌고 갈 기회를 놓치게 만들고 말았다.

이에 대해 "행동 대 행동 동시교환 원칙"을 강조하며 조율에 나선 중국의 미묘한 터치가 작용했다는 불평도 나온다. 미국이 요구한 북한의 조치란 IAEA 사찰관 복귀 하나만 구체적 행동이고 나머진 그저 뭐가 하지 않는다는 부작위에 해당한다. 그 대신 북한이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뭔가 행동에 들어가야 하는 작위에 해당한다. 부작위와 작위의 교환, 당연히 작위를 내주는 쪽이 불리해진다.

물론 앞으로 부분적인 조정은 있을 수 있다. 특히 북한이 우라늄 농축활동을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중단한다면 그 한 가지만으로 미국은 북한의 5가지 요구를 다 들어줘도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왜냐하면 유엔 제재 해제와 식량지원은 앞으로의 협상을 촉진하는 윤활유로 작용하며, 평화협정 논의나 관계정상화 논의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의 수준에 연동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허나 이 역시 6자회담을 개최하여 본격적인 협상단계에서 논의하는 게 훨씬 더 안정적이고 결과를 보장받을 수 있다.

모든 협상은 진화한다. 그리고 역동적이다. 미국과 북한이 5 대 5 선제조치를 주고받으며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밀고 당기기를 벌일 것이다. 미국과 북한이 한국전쟁 기간 중 북한 땅에 남아있는 미군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6자회담 재개와 비핵화 협상으로 들어가기 위한 보완재로 활용할 공산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뭔가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새로운 출구를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화교착의 원인에 해당하는 요구가 아닌 너무도 큰 의제를 주고받으려 함으로써 그것이 오히려 새로운 단계가 되어 협상의 진전보다는 교착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자못 염려스럽다. 8월 24일 북러 정상회담을 마치고 난 다음 날 러시아 매체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핵물질 생산이나 핵실험을 잠정적으로 중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공개적으로 미국의 요구 2가지를 충족시키겠다는 발언이다. 이제 미국은 무얼 더 요구하며 무엇을 내놓겠다고 말해야 하나? 경험 없는 아마추어들의 요구를 워싱턴이 너무 쉽게 받아들인 결과가 아니길 기대할 뿐이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1년 9·10월호(제15호)에 실린 두 번째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발리 비핵화 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입니다.(☞전체보기)

* 원제 : 어렵게 시작된 미-북 대화, 새로운 단계설정의 자충수를 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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