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야 티마코바 러시아 대통령 대변인은 24일(현지시간) 정상회담 종료 후 "김 위원장은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6자 회담에 복귀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밝혔다"며 "그러면 6자 회담 과정에서 북한이 핵물질 생산 및 핵실험을 잠정중단(모라토리엄)할 준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전제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라는 북한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한국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 등의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북한은 이에 반대하며 우선 6자회담을 재개해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러시아 또한 지난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북한과 접촉을 가진 이후 상대적으로 북한 쪽에 기울어진 입장을 밝혔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달 22일 박의춘 북한 외무상과의 회동 이후 "러시아는 사전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는 북한의 확인된 입장을 환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북러 정상회담이라는 계기를 빌어 한국과 미국 등에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지난달 말 뉴욕에서 열린 북미 대화에서 서로 의견 교환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며 "이런 상황에서 북러 정상회담이라는 형식을 빌어 미국측의 요구에 대한 화답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근식 교수는 북한이 한‧미의 요구조건 중 하나인 농축우라늄 문제는 쉽게 포기할 수 없겠지만 이 정도의 성의는 보일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면서 "북핵 협상의 진전을 위한 계기가 됐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도 "현재 시점에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의 태도변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북한은 이미 (6자회담이 열리면) 나오겠다고 밝힌 상태"라며 "북미관계가 잘 진행되면 그 정도는 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북러 정상회담 계기에 밝힌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러시아가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이번 정상회담을 바라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북한의 입장이 변화했다고 볼 여지가 없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아직 언론 보도만 나온 상황이기에 북한의 입장을 분명하게 알 수는 없다"면서도 "(6자)회담 '과정'에서 모라토리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것이 6자회담의) '사전조치'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도 <연합뉴스>에 "북한은 대량살상무기(WMD) 실험의 잠정 중단을 사전조치의 일환이 아닌 협상 대상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올해 3월 러시아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알렉세이 보로다브킨 외무차관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거론됐던 내용이다. 결국 새로운 이야기는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6자회담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비핵화 사전조치의 핵심인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문제에 대해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러시아 울란우데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6자회담 재개와 경제협력 등 문제를 논의했다. ⓒAP=연합뉴스 |
"남-북-러 잇는 가스관 프로젝트 특별위원회 구성하겠다"
한편 이날 정상회담에서는 남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프로젝트 등 경제관련 사안도 다뤄졌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들에게 북한이 자국을 거쳐 남한까지 이어지는 천연가스 수송관 건설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였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밝혔다.
메드베데프는 정상회담 결과와 관련해 "긍정적인 느낌으로 충만한 상태"라며 "가스 협력 분야에서 성과가 있었다. 특히 북한을 거쳐 남한으로 가스를 공급하기 위한 특별 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특별위원회는 한국을 포함시켜 3자 위원회로 구성된다는 전망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북한은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두고 있고 이를 위해 약 1100km의 가스관을 건설할 계획"이라며 "이 가스관을 통해 매년 100억㎥의 천연가스를 수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일 수요가 있으면 이 수송능력을 더 늘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연철 교수는 이와 관련해 "남북한과 러시아 3자 간의 사업이기 때문에 (북러 양자 합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당장 실현되기는 어려워도 의미가 있는 구상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그 외에도 북한 노동력이나 라진항을 활용하는 문제 등 북러 양자 간의 경협사업들이 논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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