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노선에 반대하는 소련공산당 강경파들의 쿠데타 실패 20년을 기념해 가진 기자회견에서 "구태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며 "고위 정책결정 과정은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르바초프의 발언을 전한 <파이낸셜타임스>는 오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러시아에서 중요한 정치적 결정들이 '밀실 협상'을 통해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 총리가 다시 차기 대통령이 될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현 대통령이 연임을 할지는 두 사람의 결정에 달려 있을 뿐 당원이나 국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정권이 단지 권력을 강화하려고만 한다면 이는 이미 독재"라며 소련 방식의 정치적 독점은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고르바초프는 그러나 푸틴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옐친 시대의 혼돈으로부터 러시아를 구했다"며 치켜세우기도 했다.
▲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여전히 레닌 존경한다"
또 고르바초프는 러시아 혁명을 이끈 블라디미르 레닌을 여전히 존경하고 있다면서 러시아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 것은 스탈린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가 레닌의 가르침을 따랐다면 지금 다른 상황에 처해 있을 것"이라며 스탈린과 그의 관료 체제가 출현하면서 소련이 잘못된 길을 걷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1991년 극좌 반(反)개방파의 쿠데타 당시 상황에 대해 "여러 사람이 전화를 걸어 쿠데타가 준비되고 있다고 알려줬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유혈 사태는 피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무대응' 조치를 변호했다.
그는 내외신 기자들을 향해 "여러분은 내가 나약하고 무기력한 인물이었다고 비판하지만, 이런 사람이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는 신만이 알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년 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반대한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국가보안위원회(KGB) 위원장과 야나예프 부통령 등 8인은 흑해 연안에서 여름휴가 중이던 고르바초프를 연금하고 쿠데타를 시도했다. 그러나 개혁을 지지하는 모스크바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하면서 '3일 천하'로 끝났다. 이 사건은 소련 붕괴를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르바초프는 기자회견에서 소련은 붕괴돼서는 안 됐으며 단지 민주화됐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표시하고 지금이라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의 옛 소련 국가들과 경제 공동체를 만드는 방식으로 통합의 길을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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