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이산가족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되는 인도적 문제로 생각하고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도 "추석을 계기로 하는 이산가족 상봉을 현재 구체적으로 검토하거나 추진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우선으로 생각은 하는데 추진하지는 않는다는 묘한 말이었다.
한 통일부 당국자는 <연합뉴스>에 "남북관계 상황이 우리가 먼저 북측에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할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현재로서는 북측에 먼저 제의할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천 대변인의 말대로 이산가족이 '인도적 문제'라면, 인도적 사안과 정치적 문제를 연계시키고 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또 한 차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고 금강산 재산권 문제도 난항을 겪고 있는 등 최근 남북관계가 그리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맞은 시기이고, 집권 여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촉구했다. 북측에 먼저 제의해도 큰 무리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부가 즉각 '검토 없다'고 나선 것은 이산가족들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도 부적절했다.
통일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최근 미국이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과 큰 대조를 이룬다.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지난 8일 "(미국에 있는) 한국계 미국인과 북한에 있는 이들의 친지간 재회 가능성과 방식에 대해 미 적십자사와 정기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최근 미국적십자사를 비롯한 여러 공식 경로를 통해 한국계 미국인들의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북한에 제기해 왔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1일 "북미 사이에 적대관계가 지속되고 있지만 미국측이 제기한 이 같은 문제를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대하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이산가족 문제에 미국이 이처럼 적극적인 것은 북한이 '예뻐서' 혹은 북미관계가 좋아서인가?
▲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뉴시스 |
한편에서는 홍준표 대표가 이산가족 상봉을 촉구한 것의 '진정성'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홍 대표는 이날 라디오 연설에서 "복잡하게 얽힌 남북관계의 실마리를 이제는 풀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얼마 남지 않은 추석에 이산가족 상봉을 할 수 있도록 남북 간 협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북측에 제안했다.
그러나 이같은 홍 대표의 발언은 통일부, 대한적십자사 등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나온 것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천해성 대변인은 "구체적인 당정간 협의가 있었던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홍 대표의 발언을 전해 듣고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금년 추석 말이냐"고 되물었을 정도다.
또 추석을 불과 3주 남짓 남겨놓은 시점에서 추석 이산가족 상봉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도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이산가족 상봉에는 최소 한 달 이상의 준비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다만 천 대변인은 준비 기간과 관련해서는 "통상 어떤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한다는 것이 꼭 그 날짜에 맞춰서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그 내외로 어떤 특정 기간에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정 협의도 없이, 시간적인 여유도 없이 그저 북쪽에 대해서만 촉구하는 연설에 얼마만큼의 '진정성'이 담겨 있는지 의심이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은 홍 대표의 연설 직후 "을지 군사훈련으로 긴장이 조성되어 있는 마당에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는 한나라당을 보며 올 추석에 이산가족 상봉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국민은 없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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