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8.15체제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6.25전쟁으로 혹자는 무력에 의한 분단체제의 종식을 기대했었는지 모르지만 오히려 전쟁으로 말미암아 동족상잔의 잔혹한 경험을 해야 했고 분단의 고착화를 심화시켰습니다. 결국 우리 겨레는 국토의 분단뿐만 아니라 의식의 분단과 집단무의식 깊은 곳까지 내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서로 말로는 통하지 않는 거대한 집단적 세력들이 생겨났고 분열의 상처가 해를 거듭할수록 아물기는커녕 새로운 상처로 덧씌워져 '분단의 상처'는 굳어만 갑니다. 정치권만이 아니고 시민사회나 지역사회의 모든 여론 형성에서 가장 큰 장애 요소는 분단체제를 유지하는 국가폭력의 구조화와 분단의 내상입니다. 이로 인해 남북간에는 물론 남남간 소통의 장애가 너무 크게 생겼고 소통의 방법마저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백분백날을 토론한들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토론장애, 상대방의 아픔과 애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소통장애, 남의 행복과 기쁨을 같이 나눌 줄 모르는 감성장애, 자신이 믿는 신념만 옳다고 믿고 확신의 함정에 빠져버린 영혼장애가 만연한 사회입니다. 이렇게 매우 병든 사회에서 잔치나 축제는 해서 무엇 합니까. 놀아도 논 것 같지 않고 기쁨을 나누는 문화가 사라졌는데.
오늘 8.15에 즈음하여 분단체제의 문화적 모순을 생각합니다. 한국은 분단체제 섬나라처럼 대륙과의 연결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서구 해양문화권과는 활발한 교류와 시장개방으로 새로운 문물을 배우고 받아들이며 산업화를 빠르게 이루었으나 대륙문화권과는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징으로 보더라도 우리는 대륙문화와 해양문화 사이에서 골고루 교류를 하고 양대 문화권의 장단점을 모두 이해하고 골라서 섭취하는 역동적 수용능력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분단체제의 한계 안에 갇혀 대륙과 해양 세력의 수문장들처럼 늘 으르렁 거립니다. 근대산업도시의 성장 일변의 교육은 동족과 차별화만 가르치지 동질성은 외면합니다. 국민을 의식의 절름발이 시대에 살게 하였습니다.
▲ '대륙의 영혼'이 숨 쉬는 근대기 조국독립 영웅들 |
북쪽 대륙은 캄캄한 암흑의 미개지이거나, 무자비한 공산독재체제이거나, 잃어버린 우리 겨레의 고토 정도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근원적 동질성이 본래 깊은 것이 동족이거늘 애써 외면합니다. 압록강 두만강 너머 만주와 동북삼성과 몽골과 연해주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가 우리의 앞마당이고 별로 다르지 않은 문화권이고 이웃이었는데 갑자기 단절됩니다.
일국의 검찰총장 취임사 첫마디가 '종북주의와 전쟁'을 선포하고 선거철만 되면 색깔론을 불러들여 수틀리면 종북이라고 잡아 가두려 합니다. 시민의 집회나 분쟁이 있을 때마다 불순세력의 배후조정이 있다고 의심하고 '애국의 확신'에 차서 '배후'를 끝까지 찾겠다는 생각들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분단체제는 외적 강제로 시작했지만 분단문화는 우리 내부에서 확대재생산 시킨 것입니다. 그 결과, 의식의 편견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심적 장애가 아주 깊게 생긴 것입니다. 전쟁과 속도와 강제동원과 성장제일주의로 몰고 가는 폭력의 기재들이 간고해서 치유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폭력의 구조에 서식해 온 거대한 위선문화는 의식의 편견과 무의식의 장애로 굳어져왔습니다. 집단적 트라우마 상태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확신에 찬 폭력이, 소위 배웠다는 지식사회에서, 국가경제와 국가권력을 운영한다는 지도층에서 이렇게 폭력의 문화를 확신에 찬 행동으로 감행 할 수 있을까요. 평화적 반론에 평화적 해결책을 내놓아야지 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정신장애상태입니다. 국가질서란 이름으로 폭력을 일상화하고 경제성장이란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지만 헌법가치부터 무시하는 이상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1년에 수천명이 넘는 산재사망과 수천명의 교통사고 사망자와 1년에 수만의 산재부상자가 생기는 이상한 나라. 대화를 거부하고 사설진압대 뒤에 숨어서 소통 자체를 외면하는, 폭력문화가 정당화 되는, 전쟁 때보다 더 전쟁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이상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위기를 일상적으로 조장하는 분단체제의 폭력적인 규율이 존재합니다.
의식의 상처라면 보다 쉽게 치유할 수도 있습니다만, 무의식의 상처가 깊은 분단의 상처는 그 세대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치유가 아주 어려울 거 같습니다. 특히 분단체제 지도층의 분단장애는 어떻게 해볼 엄두가 안 납니다.
그러나 끝까지 평화적 대안을 찾고 싶습니다. 문화적 편견과 의식의 편향을 고치고 균형감을 찾는 문화치유를 생각합니다. 폭력에 의한 상처와 정신장애를 폭력적 방법으로, 또는 혁명적 방법으로 일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 같은 분단체제 하에서는 악몽입니다. 끝까지 평화적 방법으로 치유하고 균형을 찾는 국민적 평화운동밖에는 별 도리가 없습니다.
종북주의를 처단한다고 전쟁을 불사한다는 호전주의에 말려들어 위기를 조성하는 극우적 발언에 국민이 쉽게 속지 않습니다. 식민지와 국제전과 외전을 다 겪으며 피투성이 진흙탕 개싸움을 겪은 우리가 다시 노골적 권력폭력에 노출된다면 민족 자멸의 길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폭력을 선동하는 극우·극좌 모험주의에 단호히 맞선 시민평화운동 전략이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균형 있는 대안평화문화로 편향적 분단체제문화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양문화 편향에서 해양문화와 대륙문화의 균형 있는 수용과 비판이 필요합니다. 확신의 함정에 빠진 극우극좌 모험주의를 경계하며 평화의 교류와 연대가 중요한 시대 입니다.
한국민, 그중에서 분단장애로까지 말 할 수 있는 지도층의 집단의식으로 볼 적에 특히 부족한 부분은 자연문화와 대륙문화입니다. 이를 학습하고 체험하는 것이 치유의 대안이 될 것입니다. 저 시베리아의 개발과 도시화를 멀리하는 자연문화는 생산력주의와 성장제일주의만을 확신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대도시국가 중심의 선진국 모델을 추종하는 사회 엘리트들과 레드 컴플렉스에 심적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대륙문화를 특히 권하고 싶습니다.
대륙문화 공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내 안에 잃어버린 대륙의 영혼을 찾기를 바랍니다. 단지 근대사에 대립되었던 역사를 확인하거나, 잃어버린 영토회복을 위해 고대국가의 영광을 공부하자는 것만으로는 또 다른 욕망과 폭력의 문화를 키우는 것이 될 것입니다. 부박하고 위험한 동북아근대사를 넘어서는 동아시아의 다양한 인류문화부터 공부가 필요합니다.
슬라브주의와 몽골 징기스칸, 레닌주의의 영토제국에는 거대한 폭력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를 따라잡으려 하는 것도 또 다른 폭력문화의 함정에 빠질 것이고, 고구려 발해의 영토를 되찾자는 켐페인은 한국민의 영광을 되찾기는커녕 세계적인 화약고인 동북아의 국가폭력의 뇌관을 건드리는 반평화주의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화려한 철기시대 도시문명을 자랑하는 기독교 문화를 그곳에 포교하는 것 또한 이미 실패한 것입니다. 러시아정교가 시베리아 토착족에게 수백년 동안 시도하였으나 별로 성공하지 못한 이미 낡은 제국문화 방식입니다.
평화의 공존을 삶의 방식으로 만들어온 동아시아 대륙문화에서 우리의 잃어버린 대륙의 영혼을 찾는 자기 공부부터 필요합니다. 소련의 패망으로 자치주로 독립하자말자 아시아 족들은 중앙아시아족들은 물론이고 치타, 부리야트, 야쿠트 족들은 문화적 독립운동부터 하였습니다. 대륙의 오랜 영혼문화인 샤만과 라마종교문화를 되찾기에 활발하였습니다. 대륙에 가서 제국사의 영광에 찬사만 보내고 오는 관광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대륙문화를 공부하는 것은 시베리아 대륙의 자연과 근대역사 이전의 인류족문화로부터 배우는 공부입니다. 어떻게? 찾아가는 여행체험, 150여 종족의 인류문화와 풍속 읽기와 문화체험으로 대륙을 대륙의 영혼으로 다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정러시아의 슬라브주의가 러시아 정교주의로 영혼을 무장하고 아시아족을 개종 대상으로 보거나, 미개지를 근대화시키겠다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있는 집단무의식 문화인 사만이즘 문화와 우리 무의식에 있는 굿문화가 같은 대륙문화권이라는 사실부터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륙의 영혼으로 대륙을 이해하자는 것이니, 편견에 가득 찬 오리엔탈리즘의 문화적 오해를 넘어서 대륙의 문화를 이해 할 적에 흡사 배은망덕한 자식이 정신적 장애 투성이의 탕아에서 돌아와 내 안에 계신 어머니를 인정하는 것처럼 흔쾌하게 대륙의 원형문화부터 공부가 필요합니다. 대륙의 원형문화를 경험하는 평화순례 길이 대륙문화를 찾는 길입니다.
8.15, 분단체제의 시작인 이날을 맞이하여 우리 안에 깊은 상처가 되어버린 분단장애를 넘어서는 것은 내 안의 오랜 평화의 질서인 대륙적 본성의 질서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대륙의 영혼문화를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은 온갖 편견과 편향에 찌든 분단시대를 뛰어 넘고 진정 서로 다름을 흔쾌히 인정하고 친교하는 '에코 노마드'의 뿌리문화를 내 안에서 되찾는 것입니다. 특히 '모성적 대륙성'을 재창조하는 '평화의 대륙문화' 순례길이 동북아 대륙이기를 바랍니다.
▲ 잃어버린 대륙의 영혼문화를 되찾는 것은 우리 안에 집단무의식으로 남아 있는 원형의 상징이미지부터 확인하는 것이다. 위 상징은 동아시아 대륙의 종족신화가 깃든 상징들이다. 맨 위 왼편부터 시계방향으로 말갈족 곰토템 상징, 팍스몽골족이 공유하는 태양의 빛 상징 삼족오, 퉁구스족의 온고드의 나르는 신인, 연해주 퉁구스 아시아족들 숲의 용- 나르는 네발짐승용, 하늘로 영혼을 싣고 나르는 순록 암각화로 이를 사용한 유라시아평화대장정 마크, 어피족이라 불리는 나나이족의 온고드. ⓒ김봉준 |
"슬라브인들은 이콘에 절하고 브리야트인들은 온고드에 절한다." 바이칼 호수 일대에 사는 팍스 몽골리안 일족인 브리야트족 박물관(알혼섬)의 해설자 말입니다. 온고드는 퉁구스 사만이즘 문화권에서 두루 쓰이는 성물로 탱그리 신등 대륙의 자연신과 조상신과 통하게 하게 하는 문화상징입니다. 우리의 굿 맞이물(굿그림, 신탈, 부작, 부적, 제물)같은 것입니다. 아시아의 영혼에도 신성물(이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지는 도시의 복판에 세우는 성당이 아니고 내 안과 밖의 자연을 위대하게 섬기던 서낭당이 있었습니다. 세속지와 성지를 차별하기보다 보다 신성하고 위대한 자연지를 성소로 여겨 왔습니다. 이것이 '불한'지대 즉 소도입니다.
▲ 퉁구스 족들의 집에 모셔 놓은 온고드, 가신 세벤 ⓒ김봉준 |
서로 소통하는 하나의 세계로 보았고, 그래서 문화도 자연과 인간사회를 대립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서로 소통하는 하나의 문화권으로 보았습니다. 그 소통의 매개가 영혼입니다.
온 생명의 보이지 않는 신성한 힘을 영혼으로 보고 영혼이 소통할 적에 평화의 질서가 온전하다고 보았습니다.
우리의 지금 분단체제를 문화적으로 요약하면 영혼을 잃고 해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혼이 없는 문화예술시대입니다.
▲ 영혼을 싣고 나르는 순록이 새겨진 시베리아 홉스골의 녹석 ⓒ김봉준 |
만일 한국민의 대륙여행이 '유라시아대장정'이란 이름이 예감하듯이 자연과 약소민족의 착취와 지배의 '대장정'을 연습하는 것이 될까봐 매우 걱정입니다. 시베리아는 더 이상 근대산업도시 패러다임에 대상지가 결코 되어서는 안됩니다. 서양모방제국의 길을 걸었던 제정러시아나 소련의 역사로부터 성찰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시베리아를 여행 할 적에 곳곳에 세운 레닌 동상과 스탈린의 흔적과 제정러시아 문화 기념물과 전쟁박물관들이 불편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리도 어느새 분단체제 폭력문화에 익숙하여 제국의 폭력문화에도 관대하게, 오히려 부러워하며 여행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대륙의 잃어버린 영혼은 어설픈 근대도시문명이 불편합니다. 거대한 대도시를 이상사회로 하며 자연에 대한 약탈적 지배를 원치 않는, 인간과 동식물이 모두 소통하는 범신적 영혼문화를 가지고 왔던 아시아 대륙문화를 우리 분단체제 지식인들은 또한 어색해합니다.
▲ 바이칼이나 백두산 천지나 다르지 않다. 동북아시아의 시원문화에는 고원의 맑은 물 호수 이미지가 있다. 모든 생명의 근원성은 '물과 빛'으로 압축 상징된다. 그래서 고대부터 신화의례에는 불과 물을 생명의 원형질로 모셨다. ⓒ김봉준 |
8.15를 맞이하여 잃어버린 대륙문화를 내 안에서 찾는 평화문화운동을 다시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대륙의 문화를 찾아보자고 7월에 한국의 시민들은 100명이 자비를 모았고 시민3개단체-사)동북아평화연대, 사)희망래일, 사)오랜미래문화연구회가 주최하여 동·서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이칼 호수에서 만나 평화문화제를 하였습니다. 우리 스스로 잃어버린 대륙문화를 재창조하고자 준비해 간 결과, 기대한대로 북방 사만문화제와 원리에서 다를 바 없었습니다. 빛과 물 생명 원형의 봉헌과 이진희 무용가의 물마중 춤, 정대호, 남기성 박수의 고수레 소리와 가락, 그리고 샤만의 탈을 쓰고 탱그리신을 부르는 청신춤은 바이칼 알혼섬 지역문화와 우리문화가 근원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였습니다.
▲ 2011유라시아철도 대장정 바이칼평화문화제 알혼섬 불한 바위에서 이진희 무용수의 평화의례 춤 '평화의 물마중' ⓒ김봉준 |
2011유라시아대철도평화장정 준비위원장 한완상 전통일원장관은 바이칼 도착해서 인사말에서 "백두산 천지에 온 것 같은 환상에 젖었다. 백두산 천지나 바이칼이나 우리민족에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구의 지붕 같은 고원지대에서 무수한 종족이 모여들고 교류하였던 대륙의 하늘 호수가 , 대륙의 영혼문화의 성지임을 우리는 잊고 살아 왔던 것입니다.
▲ 2011유라시아철도 대장정 바이칼평화문화제 알혼섬에서 평화의례 설치미술, 김봉준 작 |
우리가 준비한 굿과 사만의례는 본래 하나의 아시아의 영혼의례문화 임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불교는 사만과 융합하였고 우리 굿과 습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대륙의 신성지대 바이칼 호수에 엎드려 절을 올렸습니다. 그 때 올린 시축을 끝으로 올립니다.
우리는 간다.
끊어진 허리 겨레 땅이어
대륙의 영혼 찾아서
우리는 달렸다.
저 드넓은 시베리아 대륙.
나의 태고적 어머니 태가 묻힌 곳,
대지의 어머니가 나를 부르네~
하늘엔 천손조상신화 은하수 길,
땅에는 지손조상신화 토템길.
나, 대륙의 눈물 바이칼에 가면
호수에 머리 풀고 목욕재개하고
정화수 떠다
나의 부끄러운 얼굴 비추리
두고 온 조국산천 부모형제에게
감사의 기도드리고
끊어진 대륙영혼 평화댕기 묶어
이으리 이어보리
아아,
유라시아 대륙의 바람아, 영혼아!
여기 우리 부족한 순례자에게
평화를 다시 가르쳐 다오.
탐욕과 폭력으로 오만한 인류,
나에게 우리에게
평화를 다시 가르쳐 다오
진정 평화를 다시 말해다오.
오늘 유라시아철도평화대장정을 마무리하며
시베리아 바람처럼 가이없게
바이칼 물처럼 깊고 깨끗하게
대륙의 영혼처럼 드넓게 사르리.
대륙의 하늘 우러러, 별밭을 우러러,
'바이골'에 엎드려 감사하나이다.
평화의 댕기 잇고 이어서 다함께
평화의 약속으로 감사하나이다.
아, 대륙의 영혼이여!
* 2011년 7월 15일 바이칼에서 유라시아철도평화대장정 마무리 시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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