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8일 김양건 노동당 대남 담당 비서의 담화를 통해 '공업지구사업을 잠정중단하며 개성공업지구에서 일하던 우리 종업원들을 전부 철수한다'고 밝혔다. 조선중앙TV 아나운서가 김 비서의 담화를 발표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금 상황의 특징은 남북한과 미국이 '치킨 게임', 즉 '기 싸움'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군사안보 분야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카드들, 즉 핵과 인공위성 로켓 카드를 사용할 때만 해도 일반 국민들은 그동안 한반도 위기고조를 반복적으로 겪어옴으로써 그것에 익숙해 있고, 또 북한의 위협이 남한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에 대한 카드'라는 생각에 큰 경각심을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개성공단 잠정중단'이라는 대남카드를 사용하자, 국민들은 그동안 보여준 소위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를 벗어나 북한에 대한 반감의 증대와 더불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의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북한의 개성공단 카드 사용으로 당장 우리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면서 주가가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외국 투자가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고 우리나라에 대한 투자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정부도 상황의 심각함을 새삼 인식하여 지금은 한국정부의 강경 대북 군사관련 정책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모두 남북한정부의 태도와 정책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항상 그렇듯이, 일이 터진 다음에는 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운 법이다. 예컨대, 우리가 북한의 비핵화를 진정 원한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북한의 핵실험을 막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북한의 핵실험이 성공하면 북한이 핵보유국의 지위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개성공단이 '잠정중단'이라고 하지만 실제 북한 노동자들이 모두 철수하여 모든 공장들이 멈춰선 상황이기 때문에 남북한이 어떤 결정적인 새로운 협력의지를 나타내기 전에는, 현재의 상호불신의 폭과 깊이로 볼 때, 쉽게 원상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참고로, 금강산관광사업이 이렇게 오랫동안 중단될 것으로 어디 상상이나 했었던가.
북한이 경제적 이익 때문에 결국 개성공단을 폐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경제적 논리로 본다면, 금강산관광사업도 북한에 돈이 되는 사업이었다. 따라서 경제적 이득이 그렇게 결정적으로 중요했다면, 북한은 관광재개를 위해 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반 사람들 간의 관계도 그렇지만, 불신관계에 있는 상대방을 대하는 데서는 돈과 경제적 이익이 반드시 최우선적인 고려는 아닌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개성공단에 노동력을 제공하여 외화를 벌고 있지만, 또한 중국 등 다른 나라에 많은 인력수출을 함으로써 큰 외화를 벌고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연 8500만 달러 가량의 돈을 벌고 있지만, 중국에 대한 인력송출로부터 얻는 수입은 연 3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북한이 5만4000명의 북한 노동력을 투입하여 개성공단으로부터 얻는 경제적 이익은 결코 적지 않고, 북한이 개성공단을 완전히 폐쇄할 가능성은 결코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위기가 압도하고 군사안보의 우선순위가 뚜렷한 국면에서 개성공단으로부터의 경제적 이득은 개성공단이 운명을 좌우하는 데서 결정적인 요인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기 싸움'의 틀을 벗어나 군사안보 분야의 위기를 조속히 해소하지 못하면, 그것이 차후의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 한미합동군사훈련기간이 끝난 후에 개성공단이 정상화되고 남북관계가 '신뢰 프로세스'로 잘 출발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 개성공단 진입통제가 일주일째로 접어드는 가운데 10일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국사무소는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
북한은 민족화해와 남북협력의 상징과 희망인 개성공단에 대한 잠정중지 조치를 조속히 해제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 상황은 우리가 출구전략을 마련해 주지 않으면, 북한이 '기 싸움'의 상황에서 물러설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 차원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며, 또 우리 국민 차원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어제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개성공단 잠정중단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자. 박 대통령은 "위기를 조성한 후 타협과 지원, 위기를 조성한 후 또 타협과 지원, 끝없는 여태까지의 악순환을 우리가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그리고 투자에는 예측 가능성과 신뢰가 중요한데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이 국제규범과 약속을 어기고 개성공단 운영을 중단시킨다면 앞으로 북한에 투자할 나라와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 북한은 '그릇된 행동을 멈추고 한민족 전체의 미래에 도움이 되도록 올바른 선택을 하기 바란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반응이 나온 후, 류길재 통일부장관은 정부는 '북한의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할 것'이라면서 '북한이 올바른 선택으로 변화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우리도 국제사회와 모든 노력을 다해 북한을 돕겠다'고 했다.
문제는 위와 같은 우리정부의 반응이, 그동안의 경험을 두고 볼 때, 북한의 협력적인 호응을 끌어내지 못하고 정반대로 부정적으로 작용하면서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이다. 필자는 박근혜정부는 더 이상 '기 싸움'을 할 필요 없이 북한과 소통을 시작하여 해결의 단초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과의 소통은 개성공단의 재개뿐만 아니라 현재 고조되어 있는 전쟁위기를 낮추고 4월 말에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끝난 후 일정한 냉각기를 거친 후 다시 대화와 협상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도 지극히 중요하다. 만일 개성공단까지 무너진다면, 박근혜정부는 소통과 전략 능력의 부재에 대해 국민들로부터 본격적인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처럼 엄중한 상황에서는 차분하고 냉정한 것도 좋지만, 상황의 엄중함과 사태의 전개에 대해 깨어있어야 한다. 개성공단도 자칫 금강산관광처럼 장기간 중단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그리고 안보 위주로 전개되는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경제관련 사업인 개성공단사업이 자칫 경시될 수도 있다. 이것은 좀 다른 문제지만, 설령 개성공단이 정상화된다고 해도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개성공단의 국제화'로 인해 그렇잖아도 중국의 과도한 경제적 영향 하에 놓여 있는 북한경제를 개성공단까지 국제자본에게 내어줌으로써 한민족경제공동체 형성에 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우리국민은 깨어있음으로써 이러한 위험성을 직시하고 정부에 대해 그러한 우려를 해소토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9일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단이 호소문을 발표했다. 호소문은 북한정부, 남한정부, 남한언론에 대해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협력을 촉구했다. 호소문은 '대화를 통한 현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고 중소기업계 대표단을 구성해 북측에 파견할 뜻을 밝혔다. 회장단은 '시간을 끌면 우리 기업들이 회생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와 협의를 거쳐 빠른 시일 내에 대표단을 파견할 수 있도록 노력'할 뜻을 표명했다. 그리고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이제는 한계에 와 있으며,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면서 이번에는 개성공단 기업들이 '주인'이며 주인으로서 '개성공단을 지키자'는 확고한 신념을 표명했다. 개성공단 투자기업들은 '중환자이고, 너무 가혹하고 힘들며 살기 위해서 애절하게 호소한다'고 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이러한 호소는 당장 남북한정부와 언론에 대해 어떤 효과를 내기 어렵겠지만, 그들이 개성공단사업, 남북경협에서 자신들이 '주인'임을 천명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한 대단히 의의가 깊은 일이다. 북한정부와 우리정부가 '기 싸움'의 프레임에 걸려들어 문제해결보다는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과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불안을 느끼고 또 그들의 중요 이익이 보호받지 못한다면, 국민과 입주기업들이 자신들이 주인임을 자각하고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되찾는 노력은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디 남북한정부가 국민들과 개성공단 투자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책무를 소홀히 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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