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에 걸쳐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간에 이뤄진 회담의 상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양측은 29일 회담 종료 이후 "건설적이고 실무적(businesslike)이었다"는 일치된 평가를 내놨다.
김 부상은 이번 고위급 대화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오찬 회동 이후 기자들에게 "앞으로 계속 연계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며 추가 회담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그는 "보즈워스 선생과 상호 관심사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보즈워스 대표는 "북한이 약속을 지키는 건설적 파트너로서 6자회담 재개를 지지한다는 점을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대화 재개, 미국과의 관계개선, 더 큰 틀의 지역 안정을 향한 길이 열려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다만 보즈워스 대표와 마크 토너 대변인 등 미 국무부 당국자들은 이번 회담이 '탐색적인 대화'였다고 덧붙였다.
한편 29일 회담에는 로버트 킹 국무부 대북인권특사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화 뿐 아니라 관계 정상화, 식량 지원 문제 등 전반적인 북미 현안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뤄진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북미 간의 기류는 한국에 대한 북한의 태도와는 상반된다. 30일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지난 2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이뤄진 남북 비핵화 회담에서 북측이 '냉랭한' 태도를 보였다며 차기 회담 일정도 잡지 못했다고 29일 말했다.
위 본부장은 남측이 이 회동을 북측의 6자회담 참석을 위한 첫 번째 단계로, 북미 대화를 두 번째 단계로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북한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이지(positive)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쉽게 포기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북미회담에 대해서도 "놀라운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애초에 북한과 미국 간의 입장차가 적지 않았던 만큼 단번에 합의에 도달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그동안 중단됐던 북미 대화가 재개됐다는 자체로 이번 회담의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편에서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한국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다음은 북미 회담에 대한 평가 및 한반도 관련 문제 전망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북한의 김계관 외무상 제1부상(왼쪽)이 28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유엔주재 미국대표부 앞에서 스티븐 보스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만나 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
■ 김연철 인제대 교수
이번 북미회담은 미국에서 밝혔듯 '탐색'에 초점을 둔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결과물을 낸다기보다는 서로 입장을 충분히 살폈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었다. 북미 모두 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번 만남으로 물꼬를 튼 것이고 확인된 차이를 줄여나가는 대화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북미간) 대화 국면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서로 간의 입장차도 크고 여러 문제도 있지만 한동안은 대화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제일 중요한 변수는 미국의 북핵문제와 관련된 정책결정 시스템의 변화다. 웬디 셔먼 전 대북정책조정관이 다음달 초 국무부 정무차관 인준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데, 미 국무부의 동북아외교팀이 재정비되면 미국의 구체적 전략이 나올 것이다. 경험이 많은 보즈워스는 실권이 없었고, 실권이 있는 사람들은 경험이 부족했었던 것이 지금까지 미국의 한계였다. 셔먼이 차관으로 오면서부터 체계를 잡고 북핵문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정책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환경도 일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3단계 접근법'의 첫 단계인 남북대화라는 명분이 ARF에서 이뤄졌다. 다만 북미 간에도 한두 번의 후속 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6자회담에서 핵심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라는 것이다. 양국이 향후 프로세스에 대해 입장차를 줄일 수 있다면 6자회담의 성과도 보장될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미국은 북한의 선행 조치를 요구하고, 북한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강조한다는 입장차가 있다. 후속 만남을 통해 이를 좁히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6자회담이 언제 열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입장차를 줄여 성과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회담이 재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백학순 세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이제 막 시작한 것이므로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미국과 북한 모두 서로 협력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 북핵 문제를 우선 해결하려고 하는 미국의 입장과, 평화협정·관계정상화를 먼저 이룩하려는 북한의 입장 사이에서 '다시 한 번' 협상이 시작됐다는데 의미가 있다. 양자 간에 결론이 나야 6자회담을 열어 추인받는 방식으로 북핵 등 한반도 관련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6자회담이 당장 열리고 안 열리고 하는 문제를 떠나 북미 간에 얼마나 조속히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 결론을 낼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이나 중국 같은 6자회담 참여국들 입장에서는 북미 대화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이 제외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6자회담이 조속히 재개되기를 바랄 것이다. 미국도 외교적으로 이들에게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인만큼 가능한 조속히 재개한다는 원칙은 있지만 그건 형식적인 것이다.
문제는 양측이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신 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둘 모두 먼저 양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북핵문제 관련 역사와 기억, 국내정치적 상황, 국제관계에서의 이익 추구 등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북미 간에 딱부러진 결론이 나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우라늄 농축 문제라는 새로운 현안이 등장한만큼 시간이 좀더 걸릴 것이다.
그간 미국의 대북정책 패착으로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디폴트 문제에 달려드는 만큼의 리더십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북핵 문제는 이미 해결됐을 것이다. 지금 미국은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할지 의심하고 있지만, 확산이 너무 쉬운 우라늄이라는 새로운 카드가 등장했기 때문에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상황이다.
미국 측에서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달성해 달라'고 한다면 이는 동시행동적인 태도는 아니다. 북한은 현실적인 힘의 관계 때문에, 또 핵이 자신들의 유일한 카드이기 때문에 '한 번 속아서 끌려들어가면 죽는다, 망한다'는 방어적 심리를 갖고 있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선행조치를 요구하기보다 동시행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 서보혁 이화여대 교수
탐색전이었다. 이후 보즈워스가 평양에 가든지 하면서 탐색적인 대화가 이어질 것이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관건은 우라늄 농축 문제를 6자회담에서 논의한다는 데 북한이 동의하고,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복귀시키고, 추가적인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공약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관련국들도 인도적 지원 등을 통해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6자회담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남북 간 회담도 돼야 한다. 남북대화가 없이 미국이 북미대화만을 밀어붙여 6자회담으로 갈 가능성은 적다. 한미관계 때문에 미국이 부담스러워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북미대화를 따라가기 위해서 한국도 북한과의 대화에 응해야 한다. 남북관계 진전 없이는 6자회담까지 가기 어렵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광복절을 전후로 해서 이명박 정부가 대북관계에 변화를 주지 않을까 한다. 정부가 북미대화 진척에 따라 남북관계도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한다면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병행되면서 가는 구도를 예상할 수 있다. 광복절 전까지 인도적 지원 등의 사안에서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이니셔티브(동기)를 만들어 나갈 필요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또 하나 짚을 것은 미국 국내정치적 요인이다. 부채상한선 협상이나 내년 대선 등 미국 내 문제로 인해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 문제를 관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오히려 국내정치적 사안을 앞두고 북한 문제에 '물려 들어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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