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에서 보수세력과 한나라당은 남북관계 분야에서 이전 두 정부를 싸잡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선정적 구호를 내세워 선거에 임했다. 이전 두 정부가 펼쳤던 대북 포용정책을 친북좌파정책으로 규정하고 여론몰이를 했다. 북한에 '퍼주기'로 일관하면서 변화는 고사하고 북한의 버릇만 잘못 들였다면서 자신들이 집권하면 북한의 버릇을 고쳐 놓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심지어 퍼주기의 결과 핵무기 개발을 도왔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전적으로 이 논리 탓은 아니겠지만 한나라당은 집권에 성공했고,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다.
MB 정부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비핵·개방·3000'이라는 그럴싸한 대북정책을 제시했다. '비핵'을 앞세운 MB 정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이라는 전제를 달아 북한을 다루고 외교를 펼쳤다. 그 동안의 정책 성과는 너무나 초라해서 심각한 논의의 대상이 되는지 의문이 갈 정도다. 한반도 평화는 사라지고, 북방경제가 위축되고, 남북간 군사적 긴장은 한껏 고조되어 있다. 게다가 정부 출범 4년차에 들어선 지금 MB 정부는 그렇게 강조했던 '비핵'이라는 목표에서 한 발짝의 진도를 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기다린다'는 모호한 기조를 취한 나머지 북핵 시계를 거꾸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대북 강경정책을 채택하면서 출범부터 남북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는 요구만 있었을 뿐, '비핵' 외교는 일보도 진전되지 못했다. 2008년 부시 행정부 말기에 미국이 '불능화' 단계를 마무리하겠다는 의지가 있었을 때 한국 정부의 강경정책과 소극적 태도로 말미암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 즈음 MB 정부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에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 나머지 6자회담에 매우 소극적으로 임했다. 그러다가 2008년 12월 어렵사리 열린 베이징 6자회담에서 한국과 미국이 검증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하고 나섬으로써 회담 결렬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왔던 것이다. 회담 결렬에는 북한의 강경한 자세도 한 몫을 했다.
이후 6자회담은 2년 반이라는 긴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고, 여러 차례 재개의 모멘텀이 없지 않았으나 핵심 당사국들인 북한, 미국, 한국의 유연하지 못한 태도 인해 재개되지 못했다. 비핵화의 유일한 대화틀인 6자회담이 왜 열리지 못하고 장기 개점휴업 상태로 빠졌는가를 따지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현실적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북핵 문제의 현주소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따지는 일이다.
북한은 2008년 12월 6자회담의 결렬 이후 그들의 핵 시계를 돌리기 시작했다. 2009년 5월에 제2차 핵실험이 있었다. 이 실험은 1차 핵실험과 달리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비핵'을 내세운 정부라면 이때부터 북핵 문제의 심각성과 복잡성을 재평가해 적극적 개입정책으로 전환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반대로 국제사회를 동원해 북한 제재 정책에 에너지를 쏟았다. 급변사태의 유혹에 빠진 MB 정부는 이후부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유엔으로 달려가 대북 제재외교에 진력했다. 그 제재의 효과가 거의 없거나 미미하다는데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지적한 바 있다.
2009년부터 북한 외무성은 여러 차례 우라늄 농축 작업에 대한 성명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한국과 미국의 태도가 뜨악하자 2010년 11월 우라늄 농축 시설들을 미국 전문가들에게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입으로만 '비핵'을 말할 뿐 비핵화를 위한 체계적 외교가 부재한 가운데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북한의 핵능력은 강화되었던 것이다.
흐름이 이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비핵'을 내세운 현 정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북핵 문제에 임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뿐만 아니라 심지어 김정일 위원장이 수차에 걸쳐 6자회담에 나오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진정성'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무시하는 자세를 보였다. 의장국 중국이 북한과의 중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 뛰어 다녔을 뿐 한국을 비롯한 나머지 당사국들은 미온적인 자세로 일관해왔다.
북핵 문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 안정에 결정적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암과 같은 존재다. 이 문제의 해법은 단순하게 보면 둘이다. 하나는 적극적인 개입정책이며, 다른 하나는 현상 유지 혹은 방치 정책이다. 한국 정부는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선택해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이 과정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인내하면서 걸어가야 한다. 이는 남북간 대화를 통한 관계의 개선이 전제되어야 하고, 6자회담을 재개해 적극적인 비핵 외교를 펼쳐는 노력이 포함된다. 아직도 시간이 있는 만큼 MB 정부는 시급하게 이 프로세스를 재가동해야 한다.
현상 유지나 방치 정책은 정책이랄 것도 없이 북한을 '핵국가'로 나아가도록 하는 패착이다. 그것은 정부에 관한 한 직무유기에 해당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 시각에도 북핵 프로그램은 진행중이며, 비핵화는 엄청난 외교적 수단과 노력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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