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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북한 탓만 하나…먹고 살게는 해달라"

[고성르포·下] "평화도 경제도 삶도 모두 잃어버렸다"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고(故) 박왕자 씨가 북한 경비병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유족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충격과 비통에 빠졌고 금강산 관광은 바로 중단됐다.

강원도 고성군에서 '명파식당'을 운영하는 홍길선(69) 씨에게도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일이었다. 홍 씨의 식당은 당시 불과 한 달 전 문을 열었다.

고성군 북쪽의 현내면, 그 중에서도 최북단 명파리에 있는 홍 씨의 식당은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에서 겨우 5분 거리다. '금강산 가는 길'이 아니라면 이런 최전방지대에 식당을 낼 이유가 없다.

▲ 명파식당 사장 홍길선 씨는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프레시안(곽재훈)

홍 씨는 지난 7일 기자에게 "손님이 많으니까 인수했는데, 한 달 장사하고 바로 빚지고 있다. 한 달만에 집세도 못 내게 됐다"며 "5~6개 있던 식당도 두 집밖에 안 남았다"고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했다. 개업 후 한 달 동안 일일 50~60만원 정도의 매상을 족히 올렸다는 그의 식당은 현재 하루에 어쩌다가 한 두 팀, 그것도 가족 단위 서너 명이 고작이다.

그는 "이 식당은 우리 집도 아닌데 장사가 안 된다고 전기세 집세 안 줄 수도 없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나마 원래 50만 원이던 집세도 집주인과 얘기해 40만 원으로 깎았다고 했다.

▲ 명파리 마을의 모습. 평양면옥, 금강산슈퍼, 함흥민박 등 북한 지명을 딴 가게들이 보인다. 그러나 손님이 든 곳은 없다. ⓒ프레시안(곽재훈)

"돈 없으면 자연 눈 부릅뜨게 돼있다"

홍 씨는 "관광객이 없으니 수입이 줄고, 벌이가 없으니 동네가 삭막해졌다"며 "벌이가 없으면 자연적으로 눈이 부릅떠지게 돼 있다. 동네 인심도 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홍 씨가 살던 마을은 금강산 관광과 함께 변화의 물결을 맞았다. 주민 일부는 농사를 못 짓게 되자 마을을 떠났지만 일부는 농사 대신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했다. 마을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는 "서울이나 타지에서 부동산 투자 목적으로 이 동네에 땅이나 집을 사기도 했다"며 "이 시골에 있는 논밭이 한 평에 몇십만 원씩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한 강연에서 "'이제 평화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그것이 돈이 되는구나, 그것이 경제구나, 삶이구나'라고 구체적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라며 "변방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가진 계기가 됐다"고 금강산 관광이 강원도에 주는 의미를 풀이했다.

그러나 3년 전부터 명파리 주민들은 '평화'도 '돈'도 '경제'도 잃어버렸다. 홍 씨는 "금강산 관광 갔다오는 사람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관광객이 많으면 꼭 금강산을 안 가더라도 그 쪽 지역으로 한 번 가보자고 하는 것이 사람 심리가 아니겠나"라며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너무 안 와 걱정"이라고 한숨지었다.

▲ 이 지역에서 '금강산슈퍼'는 흔한 상호다. 하지만 이중 일부는 가게 문을 닫았다. ⓒ프레시안(곽재훈)

"생활과 직결된 문제…왜 북한 탓만 하고 있나?"

홍 씨는 "연평도 때도 비상 걸려서 군부대가 길을 통제했다"며 "여기는 천안함·연평도 사태 같은 것이 생활과 다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평화가 돈'이라던 최문순 지사의 강연 내용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강연 당시 최 지사는 "(금강산 관광 재개는) 강원도민들의 가장 큰 현안 중 하나"라며 남북관계가 바로 강원도민들의 삶의 문제라고 역설했다. "평화가 있을 때 돈이 잘 벌리고 수입이 된다는 것을 느낀 것이고, (이런 인식이)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 금강산 관광"이라는 것이다.

강원도에 따르면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발생한 경제적 손실은 986억 원. 최 지사가 지난 5월 청와대에 관광 즉각 재개를 건의할 만도 하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지역 주민들도 남북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망설임없이 털어놓았다. 홍 씨는 "관광 재개만을 바라고는 있지만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며 "남이나 북이나 자존심이 강해서 그렇다"고 지적했다.

홍 씨는 "(정부가 북한에) 대놓고 좋게 말하면 풀릴 것인데, 어디 바꾸기가 쉽겠나"라고 한탄하고, "북한도 '잘못했습니다' 하고 수그리고 들면 될 텐데 그러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만의 소박한 남북관계론을 폈다.

건어물 가게를 하는 이종복(55) 씨는 불만을 좀더 강하게 토로했다. 마당에 서면 바로 민통선이 보이는 이 씨의 가게는 관광 중단 불과 두어 달 전에 문을 열었다고 했다.

이 씨는 "북한에 먼저 손을 내밀 수도 있는데 왜 북한 탓만 하고 있나"며 "여기 사람들은 불만이 많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얘기하면서 거듭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 이종복 씨의 가게 너머로 저 멀리 '여기서부터 민통선입니다'라는 표지가 보인다. ⓒ프레시안(곽재훈)

정문헌 전 MB통일비서관도 관광 재개 필요성에 공감, 이유는?

이런 민심은 여당인 한나라당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정문헌 한나라당 속초·고성·양양 당협위원장은 <프레시안>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고성 주민들은 박왕자 씨나,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인한 희생 모두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고 북한의 도발에 분개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당장 금강산 관광 중단에 의한 경제적 피해로 말미암아 금강산 관광 부분에서는 재개를 희망하고 있다"고 지역 민심을 전했다.

정 위원장은 "강원도와 고성군의 지역경제를 생각하면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는 것이 좋겠지만 고(故) 박왕자 씨와 같은 제2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며 "우리 국민의 안전조치 확보를 전제로 한 관광 재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정치, 군사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남북의 대화와 교류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금강산 관광 문제의 경우 국익과 지역의 이익이 충돌하고 있는데, 반드시 조정돼야 할 문제"라며 "정부가 피해 중소상인들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최근 최문순 지사가 금강산 관광의 즉각 재개를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관광 재개 문제가 지역경제와도 직결되는 이상, 초당적 협력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금강산 관광이 더 '제대로 된 국익'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성숙되고 발전된 남북관계가 정립돼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는 "현 남북관계의 경색 상황은 정상화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며 "북한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일정 보조를 맞추는 '변화'를 보이고, 우리 정부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의 이같은 입장 표명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이 지역구 국회의원 출신으로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역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총선을 9개월여 남겨둔 시점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바라는 지역구 주민들을 못본 체 할 수는 없지만, 바로 자신이 통일비서관으로서 관여한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날을 세우기도 힘든 난처한 처지가 엿보인다.

▲ 오징어 등이 널려 있어야 할 건어물 건조대는 텅텅 비어 있었다. 건어물 가게도 문을 닫았다. ⓒ프레시안(곽재훈)

"관광 재개 학수고대…먹고살게는 해줘야지 않나"

그러나 최 지사가 주장하는 '관광 즉각 재개'도 정 위원장이 정부에 촉구한 '피해상인 대책 마련'도 명파리 사람들에게 아직은 너무나 멀기만 한 얘기다. 이들에게는 하루하루, 한달 한달이 힘겹다.

이종복 씨는 "육로관광이 열렸을 때는 하루에 100만 원씩 매출을 올렸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0원이다, 0원"이라며 "나는 물론 거진항 쪽까지 사람들은 전부 관광 재개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씨는 지금의 심정에 대해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큰딸이 이번에 대학에 가는데 등록금도 걱정된다"면서 "국민들이 먹고 사는 일인데 생업이 되게 해야 하지 않겠나?"고 절박하게 되물었다.

딱히 건넬 말이 없어 평창 동계올림픽도 유치됐으니 사정이 좀 나아지지 않겠냐며 위로를 건넸지만 이 씨는 고개를 저었다.

"평창? 여기서 2시간 걸리는데 무슨 상관이에요? 서울에서 평창 간 것만큼 더 와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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