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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체포 영장 발부는 전략적 실수"

英 <인디펜던트> "사태 해결에 오히려 악영향"

리비아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와 반군 간의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제 '사법 전쟁'에도 불이 붙었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27일(현지시간) 카다피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부터다.

ICC는 카다피와 그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 압둘라 알세누시 리비아군 정보국장 등 3명에 대해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된 책임이 이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달 16일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수석검사의 영장 청구에 따른 결정이다. 오캄포 검사는 이달 8일에도 "카다피가 성폭행을 결정했다는 정보를 얻었다"면서 리비아 정부가 비아그라 형태의 약품을 군인들에게 지급하며 성폭행을 지시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다피가 이끄는 리비아 정부는 나토(NATO)의 공습에 구실을 주기 위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무하메드 알가무디 리비아 법무장관은 ICC의 결정이 카다피 암살을 기도하고 있는 나토에 구실을 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알가무디 장관은 리비아는 ICC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ICC의 영장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국 <인디펜던트>의 중동 특파원 패트릭 콕번은 26일 칼럼을 통해 "카다피와 그 부하들을 기소한 ICC의 결정은 무책임한 것"이라며 "이로 인해 카다피가 마지막까지 싸우지 않고 쉽게 권력에서 물러날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고 비판했다.


현실적으로 카다피와의 정전협상을 통한 정치적 해결만이 유혈사태를 조속히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지만, 카다피에 대한 기소는 이런 정치적 해결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 <LA타임스>도 27일 기사를 통해 "ICC의 체포영장은 카다피를 권력에서 물러나게 하는 정치적 협상의 전망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가디언> 또한 이날 "ICC가 카다피와 사이프 알이슬람에 대한 영장을 발부함으로써 협상을 통한 사태 해결의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고 논평했다. 신문은 카다피가 물러나도 결국 감옥살이를 하게 될 것을 알게 된다면 결코 자진 망명 등의 형식으로 퇴진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을 전했다.

콕번은 지난 19일자 칼럼과 24일자 기사 등을 통해 '카다피군이 비아그라를 나눠주며 집단 강간을 전쟁무기로 활용했다'는 주장이 허구라는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AI)와 휴먼라이츠워치(HRW)등의 조사 결과를 최초로 보도한 인물이다. (☞관련기사 보기)

그는 "리비아에서 카다피군과 반군 모두는 거짓 선전을 펴고 있다"면서, 전쟁 당사자인 양 측이 흑색선전을 전쟁의 무기로 활용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지만 서구 언론들이 어리숙하게 반군의 주장을 그대로 믿고 받아쓰는 것이야말로 충격적인 일이라고 꼬집었다.

다음은 콕번의 칼럼 주요내용이다. (☞
원문 보기) <편집자>
▲ 27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사법재판소(ICC)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사진 왼쪽부터 실비아 스타이너, 산지 모나겡, 쿠노 타르퓌서 ICC 판사. ⓒAP=연합뉴스

당신이 본 카다피에 관한 모든 뉴스를 믿지 말라

'아랍의 봄'이 일어난 처음 몇 개월 동안 세계 언론은 자신들의 공신력을 활용해 이 지역의 독재자들에 맞선 대중들의 시위를 공론화하고 도움을 주었다. 특히 <알자지라>와 같은 위성방송은 아랍 경찰국가들의 뿌리를 뒤흔들었다. 이들은 국가의 검열을 무력화했고 독재정부의 선전에 성공적으로 맞섰다.

변화에 의해 위협받은 정권들은 이에 대한 응답으로 외신 기자들을 국외로 추방하고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필자도 올해 초 예멘에 입국하려다가 취재 비자를 받지 못했다. 당시 기자들 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입국이 거부됐는데, 이들이 신분을 속인 기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한 예멘 당국이 수도 사나 공항에 내린 관광객들을 그대로 비행기에 태워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바레인 정부는 더 비열한 수단을 썼다. 해외 주재 바레인 대사관에서는 비자를 내주고 정작 비행기에서 내리면 입국 거부를 통보하는 식이었다.

기자들의 취재를 원천봉쇄하는 이같은 조치로 인해 현재 시리아, 예멘, 바레인에 대한 외신 보도는 휴대폰으로 촬영한 시위 영상이나 원거리에서 얻은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식도 [언론이 직접] 확인할 수 없다.

올해 초 필자가 이란 테헤란에 있을 때, 폭동 진압 경찰만이 시내에 깔려 있었을 뿐 도시 중심부에서 어떤 시위가 일어나는 것도 목격하지 못했다. 따라서 2월 27일 이란에서 일어난 시위라면서 인터넷 동영상 웹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고 필자는 경약을 금치 못했다.

그러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영상 속의 시위대는 오직 셔츠만을 입고 있었지만 2월의 테헤란은 춥고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라 다들 재킷을 걸치고 다닌다. 혹시 누군가가 2009년 여름의 시위 영상을 날짜를 수정해 올린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많은 국가에서 입국을 거부당한 기자들은 리비아의 벵가지에 모여들었다. [리비아 반군의 중심 거점인] 벵가지는 이집트 국경을 통해 비자 없이도 입국할 수 있다. 일부 기자들은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로 가기도 했는데, 그곳에서는 기자단에 대한 신중한 검열과 엄격한 감독이 행해졌다.

그런데 기자들의 보도는 이들이 어느 도시에 머무느냐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났다. 트리폴리 발(發) 보도는 나토의 공습에 의한 민간인 피해나 카다피 지지 시위 등 정부가 던져준 기사거리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던지고 있다. 반면 벵가지의 기자단은 반군 지도부나 이들의 지지자들이 제공한, 더 교묘하긴 하지만 자기중심적이라는 면에서는 카다피 정권이 던져준 기사거리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들을 놀라울 만큼 곧이곧대로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리비아에서 봉기가 시작된 2월 15일 이후 외신들은 카다피군이 저지른 잔혹행위를 집중 보도했다. 그러나 저명한 인권단체 앰네스티와 HRW도 카다피군이 잔혹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예를 들어 인권단체들은 카다피가 지시했다는 집단 성폭행에 대해 신뢰할 만한 목격자를 찾지 못했다. 또 [반군 측에서] 기자들에게 보여준, 카다피가 모집했다는 외국인 용병들은 나중에 조용히 풀려났다. 이들은 후에 중‧서부 아프리카 출신의 불법 입국한 이주노동자로 밝혀졌다.

카다피가 저지른 범죄행위 중 증거가 있는 것들은 좀 더 평범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탈출할 길도 없이 [카다피군의 포위공격이 행해진 격전지] 미스라타에 갇힌 민간인들에 대해 포격을 퍼부은 것이나, 시위 초반부에 장례식에 참석한 비무장 시위대에게 총격을 가한 것 등이다. 앰네스티는 시위 발생 이후 벵가지에서 100~110명이, 알베이다에서 59~64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앰네스티는 희생자 중 일부는 카다피 지지자들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리비아 반군들은 시위 초기부터 '언론 플레이'에 능했다. 이로 인해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사망 사건도 카다피군의 책임으로 돌려졌다. 예를 들어 서방 언론에 의해 믿을만한 이야기로 알려진 보도 중에는, 벵가지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발포를 거부한 카다피군 장병 8~10명이 같은 카다피군에 의해 처형당했다는 것이 있었다. 이들의 시체는 TV에도 나왔다.

그러나 앰네스티의 긴급 위기대응 전문가 도나텔라 로베라는 이들이 생포된 모습을 찍은 아마추어 비디오 영상이 있다면서, 이 비디오는 이들을 처형한 것이 반군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언론의 취약점이다. 언론은 증거가 불확실하더라도 일단 잔혹행위는 널리 알리고 본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것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도 그에 대한 언급은 찾기 힘들다.

그러나 잔혹행위에 대한 보도는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게 되며, 근거가 없다는 것이 드러난 이후에도 실제적인, 때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올해 초 필자가 벵가지에서 만난 피난민들은 대개 리비아의 석유수출항 브레가에서 온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의 피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아내나 딸이 외국인 용병들에 의해 강간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들은 위성 TV 뉴스를 통해 이런 위협에 대해 알게 됐다고 했다.

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진 것은 전적으로 앰네스티와 HRW의 덕분이다. 이들은 증거가 발견되기까지는 잔혹행위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들의 책임있는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오캄포 ICC 수석검사는 분별없이도 카다피가 반군들을 처벌하기 위해 성폭행을 전쟁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말을 흘렸다.

카다피와 그 부하들을 기소한 ICC의 결정 또한 무책임한 것이다. 이로 인해 카다피가 마지막까지 싸우지 않고 쉽게 권력에서 물러날 [이른바 협상을 통한 '정치적 해결']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조직적으로 카다피를 악마화하는 것은 그와의 정전협상 또한 어렵게 만든다. 카다피만이 정전협상을 할 수 있는 인물인데도 말이다. (카다피는 잔혹한 독재자일지는 몰라도 사담 후세인과 같은 '괴물'은 아니다.)

벵가지의 반군들이 없는 얘기를 지어낸다거나 카다피의 범죄행위에 대해 수상쩍은 증인을 만들어 내세우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독재자에 맞서 전쟁을 하는 중이다. 이들이 흑색선전을 전쟁의 무기로 활용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외신 기자들이 반군의 입장에 완전히 동조하면서 이들이 던져 주는 카다피의 잔혹행위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쓰고 있는 것은 이들의 천진난만한 어리석음을 보여 주는 일이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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