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서로의 불신이 극단으로 치닫는 조건에서는 만나봐야 할 말도 없을 듯 하다. 과거에도 그랬다. 김영삼 정부 시절,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의 상호 비방과 쌀 지원을 둘러싼 마찰, 그리고 흡수통일에 대한 상호 적대적 태도 등은 결국 김영삼 정부가 끝나는 날까지 그 어떤 의미 있는 대화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때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았다. 왜? 그때는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이후, 북미간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고 민간단체의 접촉과 사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민간단체의 접촉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하고, 북미 대화는 될듯 말 듯 변죽만 울리고 있다. 오히려 더 답답하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개성공단은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10년 뒤로의 후퇴가 아니라 노태우 정부 시절 '북방정책' 이전으로의 회귀라 할 만했을 것이다. 사실 지금 상황이 '북방정책' 이전으로의 회귀라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 대북 식량 지원을 호소하는 민간단체 대표들 ⓒ뉴시스 |
'통미봉남' 시절에도 민간단체는 움직였다
다시 복기를 해보자. 바둑에서도 승패를 떠나 복기를 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과거를 돌아보자. 그리고 교훈을 몇 가지 도출해보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김영삼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한 뒤, 김대중 정부가 북한과 다시 접촉을 하기 위해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한 과정이 필요했다. 인도적 지원을 위한 비밀접촉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고, 그 와중에 1999년 서해교전이 터지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래도 일관성을 가지고 접촉한 결과 2000년 남북 정상회담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김대중 정부의 일관성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보다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할 점은 (대북정책에) 실패한 정부를 뒤이은 차기 정부가 남북관계를 회복시키는데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현 정부의 뒤를 이을 정부는 그 누가 되든 남북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과 비용의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출발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가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내세우고 북한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2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야 했던 상당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소위 '잃어버린 10년' 동안에도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정부간 대화와 예정되었던 협력 사업이 중단되었다. 2004년에는 대규모 탈북자들의 입국을 이유로 예정되었던 남북 장관급 회담이 북한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한 동안 남북 대화가 중단되었고, 마침 그 당시 미국에서는 북한인권법이 하원을 통과했다. 북한은 인권과 탈북을 매개로 한 '체제 흔들기'라고 인식하고 극도의 경계심을 표하고 있었다.
이 같은 불신의 위기 속에서 대략 1년의 시간이 지난 뒤, 정부는 평양에서 열리는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특사를 파견해 남북관계를 풀어나갔다. 주로 민간단체가 주축이 된 행사에 정부가 참여해 얻어낸 성과였다.
여기서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정부간 대화가 단절되었을 경우, 민간단체가 불신의 벽을 허물고 정부간 대화를 복원시키는데 일정하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간에 특사 교환 등의 특단의 조치가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큰 교훈이라 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전제해야 할 것은, 정부간 대화의 중단에도 불구하고 민간단체의 교류와 협력은 결코 중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떻게 역사에 기록되길 원하나
지금 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접촉의 실패와 극도의 불신, 상호간 양보할 수 없는 전제조건 등 악재만 쌓여있고, 대화의 희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더 큰 악재는 천안함 사건 이후부터 민간단체의 방북과 교류, 협력도 거의 숨통이 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민간은 남북관계를 끌어가는 두 개의 수레바퀴이다. 한쪽 바퀴가 어긋나면 수레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두 개의 바퀴가 다 굴러가지 않는다면?
앞의 교훈을 대입해보자. 먼저, 현 정부는 2007년 마련된 '10.4 정상선언'의 뒤를 이어 집권했다. 남북관계 단절 상황이라는 부담을 가지고 집권했던 김대중 정부와는 판이하게 달랐고, 오히려 '10.4 선언'의 실행을 통해 역사에 이름을 깊게 새길 수 있는 좋은 조건에서 출발한 것이다. 둘째, 민간단체의 교류와 협력도 중단 내지 숨을 헐떡이고 있다. 정부가 채널을 보조해줄 수 있는 아무런 장치도 없다. 그렇다고 비공식 대화 채널이 건재하는가? 북한의 비밀접촉 폭로로 인해 다 날아갔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지금처럼 임기를 마칠 때까지 불신과 대립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것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정부가 나설 수 없는 조건임을 인정하고 민간단체의 교류와 협력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훗날을 도모하는 방법이다.
일단 인도적 지원부터 재개하는 것이 부담도 적다.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나서는 민간단체는 대환영할 것이다. 정부는 뒤로 빠지고 민간단체로부터 시작해 신뢰를 쌓아 나가는 것이 유일한 방법으로 보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금강산 관광 재개를 모색해보자. 마침 북한이 금강산 재산 정리 문제를 협의하자고 한다. 최근 북한은 금강산 관광을 단일한 관광으로가 아니라 러시아, 중국, 북한, 남한, 일본을 잇는 거대한 관광벨트 사업의 거점의 하나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금강산 관광 그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로서는 뭔가 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민간단체의 활성화는 차기 정부의 부담을 그만큼 덜어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경험을 종합해보면, 현 정부는 기존의 대북 정책과 천안함 이후 시작된 '5.24 조치'를 견지할 것이다. 민간단체에 쉽게 길을 열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끝까지 정책의 일관성(?)을 지키는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하나의 선택지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이 역시 역사책에 뚜렷이 기록될 것이다. 지금도 남북관계의 파탄을 회고할 때면 돌이켜보는 김영삼 정부의 그 시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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