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는 심포지엄의 의의에 대해 "시민의 관점에서 평화체제를 구상하고, 평화체제로의 전환과 수립을 토론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사회를 맡은 이번 행사는 '새로운 한반도를 위한 상상력, 시민이 제안하는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주제로 열렸다.
평화군축센터 소장인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기조발제를 통해 "우리는 안보가 정권안보로 전락해 온 쓰라린 역사를 경험했다"며 "그런 방식의 안보는 평화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남주 교수는 "안보의 궁긍적 목적은 시민의 안전"이라며 "시민의 안전과 괴리된 국가안보가 시민의 평화로운 삶을 누릴 권리를 위협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가 전쟁을 대외정책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을 막기 위해 평화적 생존권을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안보 논의를 국가가 독점하는 게 아니라 시민의 안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논의되고 소통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면서 "안보정책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를 촉구했다. 그는 정보 공개와 국민의 알 권리 확대, 국방예산의 사용이나 군사기밀 지정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국가기밀 관리체계의 민주적 개선, 관련 국회 상임위의 역할 강화 등을 과제로 꼽았다.
"안보 판단에 대한 국가의 독점부터 깨야"
이대훈 성공회대 교수는 "안보 판단에 대한 독점이 깨지고 시민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며 "삶의 질에 기초한 안보 구축"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안보를 제공한다고 하는 안보 체제가 시민의 안전에 어떤 위협을 초래했는가"라는 질문을 직설적으로 제기했다.
이대훈 교수는 국가안보와 시민의 안전이 충돌한 여러 사례를 들었다. 천안함 사건에서 군과 정부는 주요 정보를 통제하고 다른 의견에 대해선 배제와 위협을 가했다면서 "정부의 일방성을 견제하려는 정당한 시민적 통제 자체가 탄압의 대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북한 위협에 대한 평가가 정권마다 상이하며, 이에 따라 막대한 군사비가 소요된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이대훈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정권 교체 등 강경한 압박이나 공세를 시사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그에 따라 "심각한 군사적 충돌과 핵문제 해법의 상실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세계 15위 안팎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무기 산업과, 플랜트 수출에 '끼워팔기' 의혹이 제기됐던 아랍에미리트(UAE) 파병 등 '상업화된 파병'도 국가안보와 시민의 안전이 불일치된 사례로 지적됐다. 한국인들이 중동에서 보복 살해와 납치 등 테러 위협에 노출되면서 파병으로 인해 오히려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과 경북 왜관 주한미군 기지 내 고엽제 매립 등도 지역 주민들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안보' 체제의 일부로 꼽혔다.
또 이대훈 교수는 "'대한민국은 군대'라는 비판적 여성주의자들의 문제제기처럼, 유아 단계부터 군사주의적 복합체에 의해 인격과 시민성이 형성된다"고 말했다. 그는 폭력적 학교 문화, 해마다 신입생을 살해하는 대학 문화와 해마다 신병들을 살해하는 군 의무 복무, 아동·청소년 병영 체험과 신입사원 수련회 등에서 이뤄지는 군사주의적 훈련 등을 '사회화된 안보주의'의 사례로 들었다.
▲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주최로 14일 서울 종로구 적선동 한국건강연대 건물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체제 심포지엄 '새로운 한반도를 위한 상상력, 시민이 제안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참여연대 |
"평화정착 없는 통일 논의, 비현실‧비도덕적"
한편 이남주 교수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평화체제 논의의 중요성에 대해 그는 "분단체제는 사회적 역량을 공동체의 안전과 삶의 질, 민주적 발전을 위해 사용하기보다는 소모적인 대결과 군비에 낭비하도록 강요해왔다"면서 "한반도에서 항구적이고 지속가능한 평화는 불신과 대결을 바탕으로 하는 남북 분단체제가 존속하는 한 요원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반도 평화체제 하의 통일은 분열된 민족의 재통합이라는 과거회귀적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분단체제 하에서 이질적인 사회체제를 발전시킨 객관적 현실과 평화, 복지, 생태 등의 가치가 구현되어야 한다는 지향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은 동전의 양면이자 서로 동반자 관계에 있다"며 "평화정착 없는 통일 논의가 비현실적이고 비도덕적이듯, 통일을 지향하지 않는 평화체제 논의는 분단체제를 온존시켜 평화와 통일 모두에 역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첫 단계로 '한반도 위기관리 구조의 복원'을 들며,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의 이행과 정례적인 국방 장관급 회담, 공격적 군사계획(작전계획 5029)과 훈련(키 리졸브 및 독수리연습) 폐지, 선제적 군비삭감 등을 과제로 꼽았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과 관련해 정태욱 인하대 교수는 "남과 북이 한반도 수역에서 주장하는 해상군사분계선과 북방한계선(NLL)등 부당한 군사적 선들을 모두 없앨 것을 제안한다"며, 남측에 유리한 서해상의 NLL과 북측에 유리한 동해상의 NLL을 동시적으로 폐기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정 교수는 "NLL이 영해의 경계선이라는 주장은 국제법적 상식으로도 말이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교수는 "우리 배는 해주 직항을 허용받는데, 우리는 북한 배의 직항로를 허용하지 않는다"며 남북 민간 선박들의 자유로운 통행, 직항로를 인정함으로써 남북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재정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에 대해 "공동어업, 경제특구, 해주항 활용, 한강하구 공동이용 및 민간선박 통항 등 경제활동을 위한 '개발'에 치중하고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 지역을 서해평화생태공원으로 만드는 등 '개발주의'를 벗어난 발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한강 하구에서 백령도까지의 이 지역은 사람 접근이 제한돼 환경이 잘 보존된 생태의 보고로 남아 있다. 세계적 희귀종 저어새(멸종위기 1급 종이며, 천연기념물 205호)가 서식하고 있고,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물범(천연기념물 331호)이 살고 있다"며 "분쟁의 바다를 남북이 공히 가꾸는 '생태의 보고'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손가락 한 마디를 들어 보이며 "독도(근해)는 이미 '요만큼'만 빼놓고 한일 어업 공동관리수역"이라며,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이 실현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 붕괴론은 '희망적 사고'…北, 상대적 안정화 단계"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또다른 당사자인 북한 정권에 대한 토론도 벌어졌다. 서보혁 이화여대 연구교수는 국가 붕괴냐, 사회체제 붕괴냐 등 '북한 붕괴와 급변사태'에 대한 정의 자체도 너무나 다양하다면서 개념들이 명확히 구분되지 못하고 뒤섞여 사용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소련 및 동구권에 대한 연구를 보면 경제위기, 지배 정당성의 위기, 시민사회의 저항 등으로 붕괴 요인을 압축할 수 있다면서 "북한에는 경제 위기는 존재하고 (이로 인해) 지배 정당성에도 위기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경제 위기 자체가 지배 정당성을 위기에 빠뜨린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시민사회의 저항이 없다는 점에서 붕괴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 붕괴론은 대북정책 결정의 기본 기준인 타당성과 현실성 양 측면에서 문제를 갖고 있고, 붕괴 가능성에만 초점을 두고 접근하면서 남북관계 관리 및 발전, 한반도 평화정착 등 주요 과제를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은 우려스러운 접근"이라며 "평화통일 원칙은 남북 합의사항이자 우리 헌법에 명시돼 있다는 점에서 북한 붕괴론은 반평화적이고 위헌적인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보수언론들의 북한 붕괴론은 허상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그는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으로 인해 북한 정권 지도부 일부가 물갈이되고 이에 대한 불만으로 체제 혼란이 예상된다는 보도를 들며, "(이같은 보도가 사실이라 해도 이는) 체제 혼란이라기보다는 체제 정비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합리적 근거 없이 붕괴론이 확산되는 것은 "한국 내부의 자기충족적인 담론 구조에서 나타나는 희망적 사고"라며 일침을 놓았다. 이 교수는 "북한 지배체제 내의 균열은 없지 않은가 한다"며 북한은 비상국가 체제에서 당-국가 체제로 정상화되고 있으며, 남측의 평가와는 반대로 상대적 안정화를 향해 가고 있다고 보았다. 이 교수는 "시장의 확산을 당국의 붕괴로 동일시해 온 일천한 인식이 문제"라며 남북관계 경색의 근거를 북한 후계 문제에만 두는 인식도 비판했다. 그는 "세습과 정당성 위기는 동의어가 아니다"라며 북한의 역사적 경험에 비춰 보면 오히려 세습은 안정화와 연관돼 있다고 보았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역시 지난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당시 김정은은 북한 국내에 남아 내치를 담당하며 일종의 '분업'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과거 김일성-김정일이 보여줬던 안정적 모습"이라고 논평했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