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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주의-민주주의 결합 '터키 모델' 전성 시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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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주의-민주주의 결합 '터키 모델' 전성 시대 왔다

터키 총선서 여당 '정의개발당' 압승…에르도안 총리 3선 성공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이끄는 터키 여당 정의개발당(AKP)이 12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에서 압승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3선을 보장받았다.

터키 언론에 따르면 정의개발당은 50.1%를 득표했으며, 다음은 야당인 공화인민당(25.8%), 민족주의행동당(13%) 순이다. 이에 따라 의석 배분은 정의개발당 326석, 공화인민당이 135석, 민족주의행동당 54석, 무소속 35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쿠르드족이 다수인 터키 남부를 대변해 온 평화민주당 성향의 후보들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5.8%를 얻었다. 이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유는 터키 선거제도에서 정당이 의회에 의석을 갖기 위해서는 최소 10%의 득표를 해야 하지만 무소속 후보들에 대해서는 이런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처음으로 그간 사용돼 온 나무 투표함이 아니라 투명한 플라스틱 투표함이 도입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부정행위 방지를 위한 것이었다.

단독 개헌선 확보에는 실패

그러나 정의개발당은 당초 목표로 했던 단독 개헌선 330석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정의개발당은 개헌을 추진해 왔지만, 이를 위해서는 야당과의 협력이 불가피하게 됐다.

에르도안 총리는 이날 밤 정의개발당 당사에서 발표한 당선사례를 통해 "터키 민주주의가 또다시 이겼다"며 "국민은 합의와 협상을 통해 새 헌법을 만들라는 메시지를 줬다. 야권과 개헌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모두 (선거) 결과를 존중해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의개발당은 1982년 군사정부 시절에 작성된 현 헌법을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들은 터키를 더 민주적으로 만들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야당은 개헌이 에르도안 총리의 권력 독점욕에서 나온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는 유세 기간 중 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의 전환을 시사하기도 했는데, 야당은 에르도안 자신이 대통령직에 앉으려는 것이라며 이를 집중 겨냥했다.

▲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12일(현지사간) 치러진 총선 승리 후 정의개발당 당사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터키에서도 역시 "문제는 경제"

그러나 야당의 공세는 정의개발당이 제시한 '경제 성적표' 앞에서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세속주의(이슬람주의에 상대되는 의미) 중도 좌파 성향으로 알려진 공화인민당은 에르도안 정권이 터키를 '경찰 국가'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터키의 민주주의적 개혁을 주요 선거 캠페인으로 들고 나왔지만 제1야당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케말 클르츠다로울루 공화인민당 당수는 "우리 당은 이번 총선에서 유일하게 의석수를 늘린 정당"이라고 강조하고, "정의개발당은 더욱 강해진 공화인민당을 잊어선 안 된다"며 야당을 존중하는 협력정치를 펼 것을 촉구했다.

여당의 압승은 경제성장의 결과로 풀이된다. 역시 '문제는 경제'였던 셈이다. 2003년 에르도안이 처음 집권한 이후 터키는 연평균 5%에 달하는 고성장을 이뤘다. 세계 경제위기 와중인 2010년에도 터키 경제는 무려 8.9% 성장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유세 기간 중 에르도안은 오는 2023년까지 터키 경제를 세계 10위권으로 진입시키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의개발당 집권 동안 급속도로 성장한 터키 경제야말로 에르도안의 3선을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이슬람주의+민주주의 결합 모델로 '국격' 상승

경제성장 뿐 아니라 최근 터키의 국제적인 위상이 또한 급격히 높아진 것도 여당의 승리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슬람권 국가 중 유일한 나토 회원국인 터키는 올해 초 튀니지‧이집트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아랍의 봄'을 겪으며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이슬람주의와 서구식 민주주의를 결합한 '터키식 모델'이 중동‧북아프리카 국가들에 매력적인 대안으로 제시되며 터키의 '국격' 상승에 기여했다는 평이다.

터키 헌법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고 정의개발당 역시 이런 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사실상 이슬람주의 정당으로 평가받는다.

터키 전문가인 이희수 한양대 교수는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아랍 민주화에 좋은 선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정의개발당이 이슬람교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유지하면서도 서구와 공존‧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줬다"는 점을 승리 요인으로 꼽았다. 이 교수는 "이슬람권 민주주의에 순기능을 미칠 수 있는 엄청난 결과"라고 평했다.

이 교수는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중세적 이념 논쟁에서 삶의 질로 무게중심이 옮겨져 있는 상황에서 종래처럼 극단적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은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슬람을 재해석하면 서구와 공존 협력하지 않으면 뿌리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랍 민주화 과정에서 이슬람식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하는 고민이 있었고, 서구와 이슬람이 반대 측으로 보였지만 이런 구분을 터키가 무너뜨린 것"이라며 "이슬람은 급진적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대중의 지지로부터 떨어져 있었지만 오히려 더 과감하게 진보와 개혁을 앞세우고 서구와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정책을 펴 경제성장과 국가위상 제고라는 결과를 보여줬다"며 높이 평가했다.

그는 에르도안 총리가 당선 소감에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 이는 과거 3번의 쿠데타를 일으키는 등 정치와 과도하게 관여해 왔던 군부와, 이에 결탁한 세속주의 정치세력들이 강하게 저항해 왔지만 끝내 승리했다며 "(정의개발당 정권은) 88년 간의 군부 권위주의 체제에서 시민사회로의 진정한 전환이라는 문명사적 의미"라고 분석했다.

그는 "터키 공화국 성립 이후 정권은 연정 형태였고 한 정당이 두 번 집권한 적도 없었는데, 3연임이라는 것은 전무후무한 대기록"이라며 "이같은 국민의 지지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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