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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꽃놀이패, 한국은 현금지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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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꽃놀이패, 한국은 현금지급기?

[정욱식의 북핵이야기]<12>고조되는 '북핵위협론'과 미국의 '분할판매'

분할통치(divide and rule). 구한말 강대국들의 쟁탈전과 미-소 양대 강대국들에 의해 분단을 경험한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이다. 한반도를 분단시킨 두 나라는 냉전 종식을 선언한 지 24년이 지났지만, 한반도는 냉전과 탈냉전을 오가다가 오늘날에는 열전의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코리아 냉전의 또 다른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북한 사이의 근친증오(近親憎惡) 현상도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해지면서 분할통치의 내적 토대가 되고 있다.

분할판매(divide and sell). 최근 남북한과 미국 사이의 관계를 보면서 떠올려본 표현이다. 한반도 냉전, 특히 북미간의 적대 관계 청산이 지연되면서 '북한위협론'은 미국 군산복합체의 더없이 좋은 꽃놀이패가 되고 있다. 때로는 미국이 북한 위협을 과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북한이 그 구실을 제공하기도 한다.

반면 한국의 국력 신장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이중적 결과를 낳고 있다. 하나는 한국의 정책 자율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국의 경제력 신장이 미국 군산복합체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F-15 판매 위해 북한 위협 부풀렸던 부시 행정부

부시 행정부 때 이런 일이 있었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 때 북미 관계 정상화 일보 직전까지 갔던 흐름을 일거에 뒤집어버린 부시 행정부는 2001년 6월 대북정책을 내놓았다.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과 함께 "재래식 군사력 태세의 위협 감소(a less threatening conventional military posture)"에도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핵문제 해결은 북한이 하루빨리 미신고 시설에 대한 사찰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사일 문제를 파탄시킨 장본인은 부시 행정부였다. 이를 두고 미국의 대북 정보원 출신 전문가는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강화된 것은 미국의 자업자득"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더욱 생뚱맞은 요구는 재래식 위협 감소였다. 북한이 대규모의 재래식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미연합군에 비해 북한의 군사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 미국의 평가였다. 클린턴 행정부 1기 때 국방장관을 지냈고 2기 때는 대북정책 조정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의 1999년 10월 12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서의 발언이다. "한반도에서의 군사력 상태는 1994년 위기 당시보다 훨씬 한미동맹에 유리한 상황이고, 나는 북한이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따라서 북한이 핵무기, 특히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를 보유하지 않는 한, 대북 억제력은 강력하다."

그렇다면 부시 행정부는 왜 느닷없이 북한의 재래식 군사 위협을 대북정책의 핵심 의제로 들고 나왔던 것일까? 의문은 당시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으로 풀린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F-15 판매를 위해 전방위적 로비를 전개했던 부시 행정부에 가장 효과적인 카드는 '북한위협론' 제기였다. 이는 두 가지 효과를 수반했다. 하나는 '북한위협론' 자체가 한국의 군비증강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당시 김대중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카드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는 '정책적 고려'를 앞세워 F-X 사업 기종으로 미국 보잉사의 F-15를 선택했다. 전형적이 미국의 '분할판매' 전략이라고 할 법하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했는지, F-15 판매 성사 이후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재래식 군사 위협을 거의 거론하지 않았다. 2002년 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했을 때에도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오히려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는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이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미국의 분할판매 전략은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례로 1980-90년대 초 파키스탄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가 쏟아져 나왔지만, 아버지 부시 행정부는 사실상 눈을 감았다. 왜 그랬을까?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는 딕 체니 당시 국방장관 등이 파키스탄에 무기를 판매하기 위해 핵 개발을 방관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오늘날 인도와 파키스탄은 대표적인 미국 무기 수입국들이다.

F-35와 펜타곤의 이중 플레이

2013년 3월 말에는 미국 국방부가 록히드마틴사의 F-35 60대나 보잉사의 F-15SE(Silent Eagle) 60대를 한국에 판매할 수 있다고 미국 의회에 통보했다. 이와 관련해 록히드마틴사는 108억 달러(약 12조636억 원), 보잉사는 24억 달러(2조6천897억 원)를 판매가로 제시했다고 펜타곤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이 전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6월까지 차세대 전투기 기종 선정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 미 록히드마틴사가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제안한 후보기종 F-35 ⓒ록히드마틴=뉴시스

그런데 주목할 것이 있다. F-15 전투기의 '스텔스 버전'인 F-15SE은 F-35가 성능과 비용의 문제를 드러내자 '저가용 스텔스' 전투기로 보잉사가 내놓은 제품이다. 그런데 미국 공군을 포함해 아직까지 구매자가 없다고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지인 <포린폴리시>는 전한다. 이 매체의 군사 전문기자인 조 리드는 "F-15SE가 기존의 F-15와 달리 스텔스 기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부터 스텔스 전투기로 설계된 전투기에 비해서는 그 성능이 뛰어나지 않다"고 지적했다.

더욱 주목할 것은 F-35에 대한 펜타곤의 이중 플레이이다. 3월 6일 자 <워싱턴타임즈> 등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공군용 F-35는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국방부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F-35 조종석 시야 확보는 다른 전투기에 비해 떨어진다"며 작전 중 격추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조종석의 머리받이(head rest)가 너무 커서 교전 시 후방 시야 확보 및 생존성에 장애를 조성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펜타곤 자체적으로도 F-35의 치명적인 결함을 '추가로'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이 무기의 판매를 타진하고 있다.

펜타곤은 이전에도 F-35의 결함을 발견했었다. 2010년 국방부의 작전 실험 평가국(Director of Operational Test and Evaluation)에 따르면, F-35 전투기는 "조종기기, 항공전자기기, 제트 엔진 재연소 장치, 헬멧장착영상표시기(HMD)에서 이전에 발견되지 않은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제트 엔진 재연소 장치에서 발생하는 굉음이 기체의 흔들림 현상을 유발해 엔진이 최고 출력을 발휘하는데 장애 조성 ▲헬멧장착영상표시기(HMD)의 성능 불확실 ▲중간 수준의 받음각(전투기의 익현(翼弦)과 기류의 방향으로 생기는 각도) 실험에서 예상보다 옆으로 미끄러지는 현상 발견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처럼 F-35의 결함은 속속 발견되고 있지만, 개발·생산 비용은 폭등하고 있다. 2002년 약 7000만 달러로 추정됐던 F-35 1기당 가격이 현재에는 1억 5000만 달러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추가적으로 결함이 발견되고 생산 규모도 크게 줄어들 것이 확실시되고 있어, 추가적인 비용 상승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가 이 기종을 선택할 경우 60기 도입 가격만도 10조 원을 훌쩍 넘어서게 되고, 여기에 도입가의 3배 안팎에 달하는 운영유지비까지 포함할 경우 이 사업의 전체 예산 규모는 40조 원 안팎에 달할 것이다.

북핵 문제 정곡 찌른 미국 정보기관, 그런데 펜타곤은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정보기관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의 핵심적인 배경은 한미연합군에 대한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핵보유로 만회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을 한결같이 내놓고 있다. 북핵 문제의 원인과 해법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분석이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을 대표적인 무기 판매 시장으로 삼아왔다. 미국 스스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증강의 원인 가운데 하나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 될 경우 북핵 문제의 해결은 더더욱 요원해질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흔히 '미국이 한반도에서 원하는 것은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니다'라고 한다. 최근 미국의 행태도 이러한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미국은 3월까지만 해도 북한의 호전적인 언행에 맞서 B-52, B-2, F-22, 핵잠수함, 이지스함 등을 동원해 공개적인 무력시위에 나섰다. 그러나 전쟁 위기가 고조되자, 4월 들어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연기하는 등 위기관리 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정전상태'는 미국 군산복합체 및 이와 결탁한 세력에게는 '블루오션'이 되고 있다. '핵의 위력'에 의지해 정전체제를 무력화하려는 북한은 이들에게 꽃놀이패가 되고 평화체제의 비전을 상실한 한국은 현금자동지급기(ATM)가 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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