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특별 발표를 맡은 월레스 그렉슨 전 미 국방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6.15 선언에서 발표했듯, 북한 비핵화 문제는 북한에 대한 상호 신뢰를 이루며 경제 여건을 확대시키고 시민, 문화, 스포츠, 건강, 환경 및 기타 다양한 부문에서 교류하면서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 해병대 중장으로 예편한 그렉슨 전 차관보는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 등 안보 불안 요소를 들어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비교적 보수적인 시각을 보이면서도 6.15 선언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렉슨 전 차관보는 "북한은 인권 침해를 통해 국민을 핍박하고 있고, 법규정과 개인 권리를 존중하는 국제규범을 침해하고 있다"며 "개성공단 지역을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경제 및 인구통제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인도적 지원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이 전면적‧성공적 경제개혁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북한 주민들에게 긴급하고 대대적인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6자회담 참가국도 인류애와 자국의 이익 측면에서 북한에 반드시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한이) 통일하는 방법에는 소위 연착륙에서 경착륙까지 다양한 방법이 있다"며 "우리는 남북한이 연방국가 또는 연합국가 형태로 시작해 점차 성장하는 연착륙 방법을 통해 통일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 7일 오전 인천 송도에서 열린 6.15 선언 11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엄 '서해평화와 동북아협력' 첫 번째 세션 사회를 맡은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운데)가 월레스 그렉슨 전 미 국방부 동아태담당차관보(왼쪽)와 판젠창(潘振强) 중국개혁개방포럼 고문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
美‧中 예비역 장성 한자리서 발표 '눈길'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예비역 장성들이 한 자리에서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그렉슨 차관보에 이어 발표를 맡은 중국 인민해방군 소장 출신의 판젠창(潘振强) 중국개혁개방포럼 고문은 동북아에서의 지역적 협력을 강조하며 그 장애 요인으로 미중 간의 갈등과 북핵 문제를 꼽았다.
판 고문은 한국과 미국 등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라며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데 대해 반론을 펴기도 했다. 그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중국의 관점은 북한 핵 프로그램이 공백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반세기가 넘는 한반도의 적대적 대치관계의 산물"이라는 인식을 보였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 노력이 한반도의 긴장, 의심, 불안의 완화와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북한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안보 문제가 동등하게 논의되는 보다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면서 "분쟁의 당사자인 미국과 남한도 적절한 책임을 다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는 "호랑이 목에 종을 매단 자만이 그것을 풀 수 있다"는 중국 속담을 인용하기도 했다. 즉 북핵은 미북 적대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에 미국이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중국의 역할은 분명 중요하지만 다른 나라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연평도 사태 이후 미 항공모함이 서해에서 벌어진 한국 해군과의 합동 훈련에 참여한 것과 관련해 "이런 식의 군사연습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회의적"이라며 쓴 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은 비합리적인 국가가 아니다. 북한 체제와 지도자는 생존을 위해 고도의 계산이 들어간 행보를 하고 있다"며 "군사연습은 북한의 정책이나 체제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지만 이는 환상에 불과하며 북한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군사연습은 미국의 국익에는 부합하지만 평화적 통일을 이뤄야 하는 남한에는 이득이 되지 않는다"며 군사적 압력을 가하는 것과 '평화 프로세스'는 병행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군사력을 과시한다는 것은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로부터 더욱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렉슨 전 차관보는 "연합 군사작전은 한국과 미국의 군사협력 역량을 강화하고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해상 작전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일어난 지점과는 거리를 두고 진행됐다"고 반박했다. 그렉슨은 이어 "이런 연합 해상작전이 실제적으로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태를 일으킬 만큼의 도발적 작전이었다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 이날 심포지엄에서 격려사를 마친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참석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동원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이희호 이사장, 송영길 인천시장. ⓒ연합뉴스 |
송영길 "남북관계, 노태우 때보다 악화…인천시는 걱정"
이날 심포지엄을 주최한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의 임동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은 인사말에서 "최근 3년 동안 남북관계는 경색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프로세스도 정체됐다"며 "인천의 앞바다 서해에서는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다. 긴장의 바다, 충돌의 바다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드는 것이 긴요하다"고 호소했다.
임 전 장관은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드는 것은 정전상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군사적 억제와 보복이 아닌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동북아의 협력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의 정책 방향을 제시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 한반도 비핵화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며 "서해 문제를 포함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임 전 장관은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이 불거지면서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윌리엄 페리 당시 미 국방부 장관과 자신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일명 '페리 프로세스'의 틀을 마련했던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그는 이에 따라 남북 정상회담과 6.15 선언, 북미 공동 코뮤니케, 북일 정상회담에 이은 평양선언 채택 등의 성과가 이어졌다며 페리 전 장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도 "임동원 장관과 페리 장관은 제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만들고 정상회담을 성사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며 "남편을 대신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해 특별 연설을 가질 예정이었던 페리 전 장관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고, 그렉슨 전 차관보가 페리 전 장관의 메시지를 대신 읽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인사말에서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은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해 주는 계기가 됐다면서, 강화 교동도에 평화산업단지를 설립해야 한다는 구상을 다시 한 번 밝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송영길 시장은 "남북관계가 인천의 발전에 절대절명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며 "수많은 남북관계 변화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남북의 경제적 이익을 기반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에서 남북 화해협력의 미래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송 시장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남북 간 직통전화를 설치하자는 것이 합의돼 있었다"며 "연평도 사태나 천안함 (사건 이후의) 군사훈련 때 상호 정보를 공유했다면 감정 대립과 자존심 싸움으로 인한 우발적 충돌을 방지할 수 있지 않았겠나" 하고 물었다. 그는 "노태우 정부 시절보다 (남북관계가) 악화돼 있어 우려를 금치 못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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