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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동북아의 발칸반도가 되길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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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동북아의 발칸반도가 되길 원하나

[한반도 브리핑] 미국의 선택 시간이 없다

1년 사이 세 번이나 이뤄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화제다. 방문 결과에 대한 관심도 크지만, 정작 이번 일이 진행되는 가운데 발견하는 묘한 역설에 주목한다.

2008년 말 검증의정서 채택 문제로 6자회담이 결렬된 이후부터 한미 양국은 동북아 국제정치의 중앙무대에서 점점 주변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한미 양국의 대북 봉쇄정책으로 대북 접촉은 두절되었다. 지난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으로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 서기는 했다. 그러나 당사자이긴 했지만, 역시 주인공은 아니었다.

반대로 북한은 한미 양국의 희망적 사고대로 사과하거나, 또는 망해버리지 않고 오히려 국면을 주도하는 모습이다. 고립된 채 고통 받고 있어야할 텐데 전혀 그런 기미도 없다. 도리어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하면서 미국의 행동을 선제적으로 압박했고, 대화 재개에 대한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단순히 북한의 뻔뻔함이라든가, 도발 후 물타기로만 간주하기는 어딘가 불편하다. 결국 지난 3년간 한미공조를 통한 대북 강경책의 실효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를 타개할 구체적 방안도 없이 진정성 타령으로 자존심 싸움만 하는 가운데 중국과 북한이 국면을 주도하게 된 것이다.

동북아 그랜드 전략 없는 미국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한국과 더불어 미국의 책임도 크다. 미국이 대북정책은 물론이고, 대중국 및 대동북아 정책에 대한 그랜드 전략이 확립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사실 미국 대외정책의 역사를 살펴보면 일관된 거시 전략이 의외로 부족하다. 먼로 독트린이나 트루먼 독트린 등 손에 꼽을 정도만 제외하고 대부분은 큰 그림을 준비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기 보다는 상황마다 대증(對症)적 성격이 강했다.

이러한 경향은 탈냉전 20년간 더 두드러졌다. 이 기간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중국위협론에 기초한 중국 봉쇄와 상호의존론에 의한 대중 협력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탈냉전을 본격적으로 맞이한 클린턴 정부는 다자주의에 입각한 포용정책으로 일단 방향을 잡았고, 중국과 북한에도 적용했다. 경제 분야에서 중국과 일부 갈등이 있었고, 중국 부상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내부에 있었으나, 동북아 안정에 치중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가 제공한 단극 질서는 누가 적인지 확실했던 냉전보다 대외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기가 훨씬 어려웠다. 전직 미 국가정보국(CIA) 국장 제임스 울시(James Woolsey)의 표현처럼 공룡이 사라진 세계에 독사가 들끓는 형국에서, 미국이 세계의 모든 문제에 일일이 개입해야하는 점도 큰 부담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안정 질서는 흔들렸고, 지역 분쟁을 포함한 현상타파적 요소들이 속속 표면화되기 시작했으며, 국제기구와의 공조도 용이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클린턴 2기는 미국의 국익에 대한 보다 단호한 입장으로 선회하게 되었으며, 중국에 대한 경계 심리도 커지게 되었다.

부시 행정부의 출범과 9.11 사태는 적어도 정책적 혼란에 관해서는 극복의 계기를 제공하는 듯 보였다. 반테러를 빌미삼아 패권주의를 밀어붙였고, 중국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준비했으며, 대북 강경책을 밀어붙였다.

네오콘들은 만약 이라크 전쟁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더라면, 곧바로 다음 타깃으로 대중국 봉쇄를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프간과 이라크에서의 끝없는 후유증과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대처 미숙으로 네오콘들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위축되었고, 부시의 임기 말 대외정책은 흔들렸다.

돌아보면 탈냉전 20년간 미국의 대외정책의 혼란은 '균형자(balancer)'와 '패권자(hegemon)' 사이의 쉽지 않은 선택 탓이었다. 전자는 국제질서의 안정을 위해 패권 행사를 자제한 것이라면, 후자는 안정보다 패권에 걸맞은 이익을 적극적으로 챙기는 것이다. 클린턴 8년은 전자, 부시 8년은 후자로 기울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어느 쪽으로도 확고하게 실천되지는 못했다.

그 가운데서도 주목할 것은 역시 중국이다. 중국의 부상에 대해 클린턴과 부시 정부가 가진 경계심의 정도와 정치적 수사는 매우 달랐지만, 둘 모두 정작 대중국 전략은 미흡했다. 특히 부시 정권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중국을 봉쇄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지만, 패권 확장의 시험대인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실패했기에 다음 대상인 중국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탈냉전 20년간, 적어도 동북아에서는 미국이 균형자 역할 그 이상을 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꾸준히 힘을 키울 수 있었고, 보이지 않는 권력변동(power shift)이 계속 진행되어왔던 것이다.

▲ 지난 1월 워싱턴에서 만난 오바마 미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뉴시스

커진 몸을 숨길 수 없게 된 중국

오바마는 부시의 외교 실패를 잘 파고들어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물론 이라크와 아프간 상황을 반전시키겠다는 것이 전면에 등장했지만, 아시아 정책의 변화가 가지는 함의도 매우 중요했다. 후자를 통해 전자의 교착을 타개한다는 복안도 있었으며, 세계질서 재편의 핵심인 중국의 부상이 지닌 잠재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더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를 인식한 오바마는 취임 직후 곧바로 아시아를 중시하는 대외정책을 표방했다. 그러나 과감한 정책 전환이 지연되는 가운데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복원하겠다던 중국과는 오히려 갈등이 더 불거졌다. 도광양회로 대변되는 중국의 조심스런 행보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동북아에서만큼은 중국과 미국의 비등한 경쟁 구도가 부상했다.

미국이 선택해야할 시점이다. 안정과 공존을 위해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본격화해서 우위를 확실히 다질 것인지의 선택이다. 오바마는 '강하고(strong), 번영되고(prosperous), 성공적인(successful) 중국을 미국은 환영한다'는 언급을 반복하며 중국을 G2로 거론한다. 중국은 G2로 거론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며, 운전석에는 여전히 미국이 앉아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협력을 촉구하는 정치 수사들이 난무하지만, 중국과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수렴보다는 갈등 요소가 훨씬 우세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환율 분쟁, 남중국해 영토분쟁, 대만 무기 판매, 티베트 문제, 그리고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갈등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수교 이후 중국이 미국에 대해 이토록 강경한 입장을 내보인 것은 초유의 일이다. 이미 중국과 치열한 경쟁 없이 패권을 유지할 수 없으며, 동북아 안정에 대한 위협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양국의 리더십의 의도를 넘어 국제정치적 권력 배분의 구조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신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중미 충돌의 숙명론을 수용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전략적 선택을 미루는 가운데 미국이 동북아에서 살아남는 방법과 중국이 살아남는 방법이 부딪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미 서로가 동북아에서 휘젓는 팔들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중국은 여전히 최우선의 정책 목표인 경제 발전을 위해 동북아의 안정을 강력하게 원하지만, 커져가는 덩치를 숨길 곳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2년 전 오바마의 베이징 방문에서도, 그리고 올해 초 후진타오의 워싱턴 방문에서도 가시적 합의는 이끌어내지 못하고 원칙론만 나열하는 수준에 머무른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미국이 선택을 미루는 가운데 정작 한반도의 갈등이 계속 커지고 있다. 한미공조의 대북 봉쇄와 북한 도발로 위기 상황이 항구화되고 있으며, 이러다 한반도가 유럽의 발칸반도처럼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지난 2~3년간 북중 협력이 심화되는데 있어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한미 양국 정부다. 북중 협력이 선제적 행동이 아니라 한미공조의 압박에 대한 수동적 대응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지난 1년간 중국을 세 차례 방문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북한의 생존 전략이다.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부터 시작해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이르는 동안 중국의 책임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조금씩 커져왔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는 대전제에서 북한의 개과천선(?)을 위한 지렛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요구와는 달리 북한의 유일한 보호자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그래야 중국이 대북 지렛대를 계속 유지할 수 있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 미국의 선택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고, 신현실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중미 갈등 구조가 미국의 선택을 일방적으로 규정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동북아에서 신냉전적 안보 딜레마가 정말 현실화되기 전에 미국의 정책 변화가 꼭 필요하다. 한국이 입게 될 피해를 생각하면 정부도 더 이상 브레이크 역할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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