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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적' 오사마 빈 라덴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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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적' 오사마 빈 라덴은 누구인가?

CIA 공격으로 사망하기까지 수십 건 테러

미국 특수부대의 공격으로 생을 마감한 오사마 빈 라덴은 2001년 9.11 테러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수천 명의 인명을 희생시킨 그는 '미국의 적'을 자처하며 '이교도' 미국의 힘에 도전했다.

빈 라덴은 9.11 테러라는 역사적인 규모의 공격을 감행한 후 그의 뜻을 이을 전지구적 규모의 '지하드'(성전)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그의 긴 회색 수염과 수척한 얼굴은 반미 이슬람 극단주의의 상징이 됐다.

빈 라덴을 전세계적 유명인물로 만든 9.11 테러는 민간 항공기를 납치해 건물에 돌진하게 하는 초유의 방법으로 미국 경제력의 상징인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일명 쌍둥이 빌딩을 통째로 붕괴시켰다. 또 미 국방부 건물도 이같은 공격을 받았으며, 비행기 승객 전원을 포함 무려 300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다.

▲ 9.11 테러 당시 붕괴되기 직전 화염에 휩싸인 세계무역센터(WTC)의 모습. ⓒ로이터=뉴시스

한때 미국의 동지 '자유의 전사'

1957년 태어난 빈 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 부호 출신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자로, 16세 때부터 몇몇 이슬람 과격단체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아프간으로 건너가기 전에도 아프간의 이슬람 반군에 돈을 보내기도 했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소련군의 아프간 침공에 맞서 '자유의 전사'로 싸웠으며, 아프간 전선에서 반군 훈련캠프를 차리고 이슬람 전사들을 키워냈다. 1989년 소련군이 철군을 결심할 때까지 계속된 그의 저항 활동은 이슬람 전사로서의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빈 라덴은 사우디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공공연히 반미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1988년 비행기 사고로 활달한 성격의 형제 살렘을 잃은 것이 빈 라덴이 더욱 과격‧급진화되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그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1993년 미국 세계무역센터 폭탄테러는 6명의 사망자를 냈고,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의 위협을 미국에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또 그는 1995년과 1996년 사우디 내에서 발생한 미국 정부인사를 노린 폭탄테러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 1998년 촬영된 빈 라덴의 사진. ⓒ로이터=뉴시스
그는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에 주재한 각각의 미국 대사관 폭탄테러 공격 때부터 미국의 추적을 받았다. 두 차례에 걸친 테러에서는 무려 224명이 죽었다. 또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2000년 10월 미 핵항공모함 콜 호에 가해진 자살폭탄 공격에서도 선원 17명이 숨졌다.

그는 9.11 테러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근거지로 활동했으며 미군의 아프간 침공 이후에는 아프간-파키스탄 접경지대에서 도피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도피 중에도 종종 동영상과 성명서 등을 통해 '지하드'를 촉구하고 몇 건의 테러 활동을 이끌기도 했다.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알려진 2005년 런던 폭탄테러에서는 52명이 사망했다.

그는 미군 특수부대와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등의 추적을 10년째 따돌렸지만 결국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외곽에서 미군에 의해 사살됐다.

재벌 기업가인 아버지 모하메드 빈 라덴의 50여 명의 자식들 중 하나로 태어난 그는 17세 때 첫 결혼한 이후 최소 5명의 아내에게서 23명 이상의 자식을 두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9.11 테러 이전에 가문으로부터도 의절당하고 사우디 시민권도 박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미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상징'

빈 라덴은 아프간에서 소련군에 맞서 싸운 이후 반미 이슬람주의자들의 상징이 됐다. 그는 1996년 아프간에 탈레반 정권이 세워진 이후에는 정권 주요인사들과 교류하며 이슬람교 교리 해석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아프간에 테러리스트 양성소를 세우고, 미국, 이스라엘과 자국의 온건파 이슬람 정부에 불만을 가진 세계 각국 출신의 테러리스트들을 길러냈다. 그는 1996년과 1998년 사이에 미국에 대한 투쟁을 촉구하는 3차례의 교령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무슬림들은 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 미국의 군인과 민간인들을 살해하라고 주장했고 미국인은 즉각 사우디를 떠나지 않으면 죽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는 2003년 9월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방송한 비디오 테이프에서 "적에게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며 9.11 테러를 격찬했다. 또 2004년 12월에도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걸프 지역 일대 산유국을 공격하라고 이슬람 전사들을 독려하고, 사우디 정권에 대중 봉기의 위험을 경고한 바 있다.

2009년에는 연설을 통해 "미국에 대한 증오와 복수의 씨를 뿌리라"고 무슬림들에게 촉구했고, 지난해 3월에도 육성 성명을 통해 9.11 테러 주동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다면 미국인들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그는 미국과 서방에 대한 공격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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