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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핵개발 포기 사례, 북핵 해법에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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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핵개발 포기 사례, 북핵 해법에 '실마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한반도포커스'] 동북아 핵의 국제정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발간하는 <한반도포커스> 13호(2011년 5·6월호)를 전재합니다.

<한반도포커스>는 극동문제연구소의 교수진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문제 관련 정책소식지입니다. 이번 13호는 '북핵 문제, 다시 보기'를 주제로 6편의 글이 실렸습니다. 5월 첫째 주 동안 영문 논문을 제외하고 매일 1편씩 소개됩니다.(☞제13호 전체 내려받기)

1972년 설립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북한·통일 문제에 관한 연구와 정책 제안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최고의 민간 연구기관입니다. <편집자>


▲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장면 ⓒ뉴시스

동북아 '핵의 국제정치'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20년간 동북아 안보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북핵문제였다. 동북아 냉전체제를 대체할 안보 레짐의 모색은 결국 핵비확산(nuclear non-proliferation)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1994년 미·북 합의와 2000년대 6자회담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각국은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저지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핵폭발'이라는 즉각적인 위협에 더하여,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의 대재앙은 장기적이지만 더욱 지속적이고 파장이 클 수 있는 '핵오염'이라는 새로운 핵위협의 신호탄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북한의 핵개발 뿐 아니라, 핵산업의 안전마저 우려하게 된 것이다.

2002년 시작된 '제2의 북핵위기'는 이제 10년째로 접어들었다. 그 동안 6자회담을 중심으로 전개된 부시 행정부의 채찍 정책,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당근 정책, 그리고 중국의 온건한 압박정책 모두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한편 북한의 비핵화를 안보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한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 '의지의 대결'을 벌여왔다. 그 결과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가 크게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북핵문제를 단초로 하여 전개된 동북아 국제정치는 미·중의 복합적인 협력·갈등관계와 중·일 갈등이라는 보다 구조적인 힘의 관계에 의해 더욱 복잡다기해졌다. 그러나 먼저 북핵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하여 우리는 대증요법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북한이 핵무장을 추구한 것은 1950년대 후반 미국이 남한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했던 시기였지만, 적극적으로 핵무장에 나선 결정적 계기는 탈냉전과 1990년 한·소 수교였다. 냉전체제의 와해와 더불어 사회주의권이 해체되고 동구권과 소련방이 '너무도 허무하게' 붕괴한 가운데 북한은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처지가 되었다.

북한은 남북한 체제대결에서 경제건설 경쟁과 외교경쟁 그리고 군비경쟁을 전개해 왔다. 북한은 1980년 중후반 소련의 군사원조에 힘입어 공군력과 방공능력을 개선하고 꾸준히 병력을 증강하는 등 질적·양적 군비증강을 시도했으나, 압도적인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군사력 현대화에 필적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북한은 독일통일을 목도하면서 흡수통일을 우려하여 남북대화를 통해 1991년 기본합의서를 작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핵개발에 박차를 가하였던 것이다.

소련방의 일원으로서 역내에 핵무기를 배치했던 카자흐스탄·우크라이나·벨라루시 등이 핵무장을 비교적 쉽게 포기했던 것과 달리, 북한의 행적은 절박한 안보상의 이유로 핵무장을 추진한 나라들에 비견된다. UN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 외에 핵무기를 개발했던 나라들은 이스라엘·남아프리카공화국(이후 핵무장 포기)·인도·파키스탄이며, 이들의 공통점은 절박한 안보위협 인식에 있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숙명적인 종교·영토갈등을 벌이고 있고, 이스라엘과 남아공은 각기 아랍세계와 검은 대륙에 남은 이질적인 존재로서 절박한 피(被)포위의식을 가졌다.

북한의 안보위기는 객관적으로나 북한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남북한 '힘의 전이'(power transition)가 일어났고, 동북아 힘의 균형이 와해되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소련은 1990년 한국과 수교를 결정하고 조·소동맹을 사실상 무효화했다. 중국 역시 1992년 한·중수교에 앞서 한국과 경제협력 및 사회문화교류에 적극적이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냉전체제의 해체라는 국제정치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한국외교의 승리였다. 한국은 또한 북한과 UN 동시 가입을 제안하고 결국 성사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대소·대중 수교에 상응하는 북한의 대미·대일 수교가 성사되지 못했다.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한 4강의 '남북한 교차승인'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북방정책은 남북한 대치의 기존상황(status quo ante)을 흔드는 수정주의 정책이었다. 이 정책은 한국의 지위를 높이고 국민들의 자신감을 고취하고 안보 불안감을 덜어주었다. 그러나 북방정책이 흡수통일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결과적으로 한·미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실기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북방정책은 한반도의 힘의 균형에 심대한 변화를 가져옴과 동시에 북한을 고립시킴으로써 결국 북핵위기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 볼 때 남북한은 쌍방간의 힘의 대결에 열중했을 뿐만 아니라, 동맹국의 지원에 대하여도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1960년대 초 북한은 소련의 안보공약에 불안을 느껴 '국방의 자위' 및 '4대 군사로선'에 착수했다. 한국도 1970년대 미국의 안보공약에 불안을 느껴 '자주국방'에 착수했다. 한국이 사회주의 양대 세력이자 북한의 오랜 동맹국인 소련 및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는 것은 동맹의 효력에 대한 불신과는 차원이 다른 '동맹의 상실'이라는 실로 중대한 북한 국가안보의 위기였던 것이다.

한국도 1970년대 핵무장을 적극 추진했던 바 있다. 박정희 정부는 1975년 미국의 압력 때문에 공식적으로 핵개발을 포기했지만 비밀리에 계속 추진하다가, 결국 전두환 정부 들어서 포기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기이하게도 북한의 핵개발 경과에 대한 국내외 연구보다 한국의 핵개발정책에 대한 문건은 물론 폭로성 증언마저 태부족이다. 이 점은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는 것뿐만 아니라, 북한 핵무장 포기의 해법을 찾는 데 중요한 교훈이 될 수 있기에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수많은 정책제언 및 방안이 나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상당수는 핵개발이나 보유 이유가 북한과 판이한 독립국가연합(CIS) 구성국, 즉 카자흐스탄·우크라이나·벨라루시의 사례를 참고로 하였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선례인 한국의 개발 포기와 남아공의 폐기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나 이를 바탕으로 한 북한 비핵화방안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1)

2011년 현재 북한이 실전용 핵무기를 개발·배치했다고 평가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는 미·중의 정책이 비핵화보다 핵확산 방지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동북아는 이른바 4강 가운데 미·중·러와 북한이라는 4대 핵보유국과 한·일·몽골·대만의 4대 비핵국가 체제로 귀결되었다. 이 가운데 몽골을 제외한 3국은 핵무기 개발의 능력이나 의사를 갖고 있으며, 대만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만 한·일이 잠재적 핵보유국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핵능력의 비대칭 구도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며, 현실주의 이론가 월츠(Kenneth Waltz)의 논리를 따를 때 동북아 안보체제는 장기적으로 한·일이 핵보유국이 된 이후에 보다 안정적일 수도 있다. 논리적으로 타당할지 모르며, 또 한·일의 핵개발 추진세력의 힘이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그러나 한·일의 핵보유과정은 막대한 비용과 국내외 안보불안 및 갈등을 낳게 되며, 또한 그 결과도 대단히 불안할 것이다. 다자간 핵균형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이루어지는지 모르기 때문에 각국은 위협인식과 무장수준이 강화되어 새로운 군비경쟁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물론 핵보유 3강은 한·일의 핵무장 혹은 그 과정에서 나타날 불안정을 방지하기 위하여, 핵비확산은 물론 자국의 비핵화에 대한 진실성 있는 정책과 일정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미·러가 핵무기감축에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감축보다 철폐를 목표로 제시하여 비핵화에 대한 구체성 있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다른 핵보유국들, 역내 비핵국인 한·일 그리고 핵개발을 꿈꾸는 국가들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핵보유 3강과 한·일은 또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충분한 안보·경제적 보상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핵개발을 응징하는 것도 방안이지만, 이미 기정사실이 된 북한의 핵보유를 원점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보상을, 그것도 단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안으로 남는다.

한편 비핵화와 더불어 핵안전이 동북아 핵의 국제정치에서 주요의제로 등장하였다. 금년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초토화되고 극심한 방사능오염이 진행 중인 비극적 사태는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대응을 필요로 한다. 한·일·중의 수많은 원자력발전소와 핵관련 시설 및 북한의 불안전한 핵시설의 안전문제는 이제 남의 일도, 미래의 문제도 아님을 우리는 자각하게 되었다. 흔히 핵무기라는 '핵의 군사적 이용'에 비하여 에너지 부문을 중심으로 한 민수용 핵산업은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핵에너지 산업은 핵무기개발에서 파생되었으며, 이 두 부문은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 사실 핵의 '평화적 이용'보다 '상업적 이용'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핵의 상업적 이용을 예찬하는 이들은 공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청정 에너지'로 강변하며, 또 화석연료나 재생가능 에너지에 비해 채산성이 매우 높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의 비극은 핵에너지가 전혀 안전하지도 청정하지 않으며, 그 비용도 엄청나게 높다는 사실을 25년 전 체르노빌 원전의 사고에 이어 다시금 극적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원전의 경제성 주장은 단기적인 '발전단가' 비교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 비용은 시설 및 사용 후 핵연료 및 방사능물질의 처리 및 폐기, 그리고 원자로를 포함한 시설의 폐기 내지 밀폐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원전의 경제적·정치사회적 비용은 대단히 높다. 경제성 운운하는 것은 현 세대가 이득을 누리고 그 비용은 차세대가 짊어진다는 뜻이다. 목전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핵의 '상업적 이용'인 것이다.

또한 원전의 안전성이란 시공이나 관리·운영의 실수나 과오를 차치하더라도, 예컨대 지진 강도 얼마, 해일 수위 얼마 하는 설계 스펙의 파라미터 내에서만 보장될 뿐이다. 예상하지 않은 유형이나 수준의 위협에는 속수무책일 뿐이며, 수명연장은 또한 그 위험성을 기하학적으로 증폭시킨다. 핵무기를 실제 전쟁에서 사용하게 될 확률은 매우 낮지만 가공할 피해 때문에 우리가 그토록 염려하듯이, 원전의 사고도 역시 확률이 낮다고 하지만 일단 발생한다면 방사능오염의 피해와 비용은 천문학적인 것이다.

한국은 일본보다도 인구밀도가 높고, 사실 원전시설과 주거지역을 격리할 만한 공간도 없다. 원전의 불안한 안전성을 고려할 때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나아가 후세들에게 안전한 금수강산을 물려주기 위하여 핵의 군사적 이용은 물론 상업적 이용도 마땅히 자제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일본 다음으로 핵무기 피해자가 많은 나라다. 전쟁에 강제 동원된 수많은 우리 동포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숨지거나 평생 지우지 못할 몸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우리는 핵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신성한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핵피해국으로서, 그리고 동북아의 비핵국으로서 비핵화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관철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과거사 및 영토문제 등의 폐쇄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 하고, 한국 또한 일본과 북한에 대하여 협력안보를 위한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며, 북한은 한반도 체제의 안정화를 당당하게 주장하면서 비핵화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내년 한국에서 개최될 핵안전정상회담에서 핵비확산 못지않게 핵산업의 안전문제가 주요의제로 될 것을 기대한다.

<주석>

1) 최근의 연구는 다음과 같다. 한인택, "핵페기 사례연구: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례의 함의와 한계," <한국과 국제정치>, 27권 1호 (핵의 국제정치 특집), 2011, pp. 83-108.

* 원제 - 동북아 핵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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