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미국과 영국이 정보 수집 등을 위한 비밀스런 첩보 작전을 리비아에서 벌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와 <AP> 통신 등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미 중앙정보국(CIA)은 반군과의 접촉 임무도 띠고 있다고 전해졌다.
미 정부 당국자는 CIA팀은 공습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리비아 반군과 접촉해 반군 지도부가 누구인지, 이들의 사기는 어떤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파견됐다고 <NYT>에 말했다.
신문은 "이는 소규모 CIA 그룹이 몇 주 전부터 서방의 군사 작전을 위한 '그림자 부대'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이라며 '리비아 국내에는 어떤 미 지상군 병력도 없다'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또 신문은 영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영국의 첩보기관인 MI6와 특수부대 관계자들이 리비아 내에서 활동중이라며 이들은 카다피군의 탱크‧포병 부대 및 미사일의 위치 등 영국 공군의 공습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로이터> 통신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미 몇 주 전 반군에 무기를 지원할 권한을 CIA에 부여하는 비밀문서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30일 반군에 대한 무기 지원에 대해 어떠한 결정도 내려진 바 없다며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 31일 아즈다비야와 브레가 사이의 도로 인근에서 반군 병사들이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美 "반군 무기지원, 결정된 바 없다"지만…
<로이터>의 보도는 반군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가 국제사회와 미국 내부에서조차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우선 영국과 프랑스는 긍정적인 입장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날 "상황에 따라 반군에 무기를 지원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알렝 쥐페 프랑스 외무장관도 전날 '프랑스는 반군 무기 지원 방안에 대해 협의할 준비가 됐다'며 적극성을 보였다.
그러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베이징을 방문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은 국제관계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못 박았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역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973호에는 반군에 무기 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반대했다.
나토의 대(對) 리비아 작전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도 이에 동조했다. 벨기에는 반군에 대한 무기 지원에 대해 "너무 멀리까지 간 조치"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탈리아와 덴마크도 이와 비슷한 입장이다.
미국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공화당 소속의 마이크 로저스 하원 정보위원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반군에 총기와 첨단 무기를 건네주기 앞서 반군의 실체에 관해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실체가 불분명한 리비아 반군에 무기를 제공하는데 반대한다"고 밝혔다.
"반군이 누군지도 모르고 덮어놓고 개입, 제정신인가?"
로저스 의원의 발언에서는 '도대체 리비아 반군의 정체가 뭐냐?'는 미국 정가의 고민이 읽힌다. 섣불리 반군에 무기를 제공했다가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후 이들이 반미 무장투쟁세력으로 돌변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1980년대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받아 소련과 싸웠던 '자유의 전사'들이 지금 탈레반이 되어 반미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런 우려를 부채질한다.
실제로 미국이 리비아 반군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관측이 여러 군데서 나온다. 미국 시사만화가이자 칼럼니스트인 테드 롤은 이날 진보적 웹사이트 '커먼드림스'에 기고한 글(☞원문 보기)에서 "리비아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특정 조직과 개인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29일 발언을 언급했다.
테드 롤은 "클린턴 장관의 발언은 전쟁에 손을 댄 지 1주일도 더 지나서 나온 것"이라며 "미국이 '아무 것도 모르는' 그런 이유를 위해 싸우고, 돈을 내고, 죽고 죽여야 하나?"라고 비판했다. 그는 반군 과도정부 위원회에 대해 "현재 알려진 바로 그들은 왕정복고론자들과 이슬람주의자들 사이에 있는 세속적인 세력으로 보인다"면서도 "문제는 우리가 그들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유엔은 '민간인 보호'를 군사 작전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대공 무기로 무장한 반군을 '민간인'으로 분류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그는 <NYT>가 전한 미 고위당국자의 "리비아에서 알카에다의 존재는 분명한 이슈"라는 발언을 인용하며 "리비아 동부는 오랫동안 이슬람주의자들의 온상이었다"고 말했다.
미 육군 대장인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나토 최고사령관도 29일 상원에 출석한 자리에서 "(리비아 반군 내에) 알카에다와 헤즈볼라(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치조직)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주는 징후들이 언뜻언뜻 비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메드 바니 리비아 반군 대변인은 30일 "리비아에는 그런(알카에다와 연관된) 단체가 없다"며 적극 부인했다. 바니 대변인은 '만약' 세계 각지에서 알카에다와 연계된 활동을 한 경험이 있지만 현재는 리비아에 돌아와 있는 리비아인이 있다면, 이들은 알카에다가 아닌 리비아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무장한 리비아 반군의 모습. 미국 칼럼니스트 테드 롤과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등은 "이들을 과연 민간인으로 봐야 하나?"라고 묻는다. ⓒAP=뉴시스 |
'만약 있을지도 모르는' 그 리비아인은 누구?
바니 대변인이 '만약 있다면'이라는 전제 하에 언급한 리비아인들이 누구인지는 이미 명백하다. 현재 리비아 반군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 압델-하킴 알-하시디는 과거 이라크전에서 반미 무장투쟁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그는 과거 자신과 함께 싸웠던 25명의 전사가 반 카다피 무장 투쟁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캐나다 외교관 출신인 피터 데일 스콧 버클리대 교수는 지난 25일 웹사이트 '글로벌리서치'에 기고한 '리비아 자유의 전사들과 그 후원자들은 누구인가'에서 반군 중에는 과거 아프리카 차드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의해 양성된 게릴라들과 1980년대 아프간 전쟁에 참여했던 무장 이슬람 그룹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스콧 교수는 반군에는 튀니지·이집트 혁명에 고무된 '페이스북 세대'도 포함돼 있지만 무장 투쟁을 이끌고 있는 것은 리비아 이슬람투쟁그룹(LIFG)과 리비아 구조 국민전선(NFSL) 등이라며 언론 보도와 비밀 문서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관련기사 보기)
중동 전문가인 유달승 한국외대 교수도 30일 "아프간 전투에서 귀환한 리비아 전사로 조직된 이슬람순교자운동(Islamic Martyrdom Movement)과 1995년 알카에다 산하에 창설된 리비아 이슬람 투쟁그룹(LIFG)이 무장투쟁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리비아 동부는 사누시파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라며 "1995년 6월 카다피를 반대하는 대규모 저항운동이 일어난 곳도 벵가지"라고 지적했다. 리비아 사태가 단순히 '민주 대 독재'의 구도가 아니라 부족적인 배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리비아 사태에서 다른 아랍 국가들의 경우와는 달리 초기부터 무장 투쟁이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리비아 사태는 초기에는 분명 민주화 운동이었으나, 이후 내전으로 전환됐고, 서방 개입 이후 전쟁으로 확대됐다"고 말했다.
'리비아 공습은 옳았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까닭
유 교수의 분석은 리비아 사태의 성격을 놓고 벌어지는 전세계적인 논쟁과 맞물려 있다. 지난 22일 <NYT>는 '리비아 민주화 투쟁인가, 내전인가'(☞원문 보기)라는 기사에서 리비아 사태가 근본적으로 부족 간의 내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리비아 전문가인 폴 설리반 조지타운대 교수는 "리비아 사태가 민주화 투쟁인가 내전인가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지만 답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카다피가 사라진 후에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반군)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 매우 놀랄지도 모른다"고 신문에 말했다.
신문은 반군 임시정부가 민주주의와 공정성, 인권, 법치주의를 강조하고는 있지만 이들 내부에서도 카다피 정권과 마찬가지로 혈연에 기반한 인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자신들의 선전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전장에서의 승리를 날조하거나 패배 사실을 감추고 카다피군의 만행을 과장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집트의 민주화 시위대는 자신들을 공격한 정치깡패들에게 돌을 던지는 정도의 폭력행위도 '폭력을 사용한 것은 패배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자성하는 등 엄격한 비폭력 윤리를 지켰지만 리비아에서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신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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